2025년도 의료 정상화는 불가능, 최악의 상황만 막아야 돼
전공의들, 개인의 행복만 생각하고 희생할 생각 없다
수련 당시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신기할 정도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지난 해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의 일방적 추진으로 인해 의정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내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메디칼업저버는 2025년 을사년(乙巳年) 시작과 함께 지난 한 해 의대정원 증원 사태로 인한 의료인들의 번아웃과 우울감, 허탈감, 좌절감 등 목소리를 가감없이 익명으로 지상중계(紙上中繼)한다.

의대정원 증원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뭣이중헌디

의료계와 교감이 없없던 것이 가장 문제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발표 전까지 여러차례 의료계와 증원 문제를 논의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증원 규모에 대해 의료계와 교감이 없었다. 의료계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교감이 이뤄졌을지는 의문이다. 

니나해라 증원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없다고 전체 의사 수를 늘리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지 않는 정부가 무조건 의사 수만 늘리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다. 오진 해 놓고, 약만 잔뜩 처방하는 꼴이다. 약물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환자 뿐이다.

전공의가 봉이가?

의대증원을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려면 진짜 과학이 필요하다. 몇 년간 통계 및 면밀한 고찰이 이뤄진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를 전체 의사 수 부족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약이다. 낮은 의료수가, 과실없음에도 배상책임, 의사 본인이 과로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근무환경이 필수의료 분야 의사 수를 부족하게 만든 것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의료계가 망가졌는데, 잘 모르는 국민들을 선동해 이를 의사 탓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의대증원 사태로 인한 의료현장의 현실은?

죽을 것 같다

너무 힘든 상황이다. 환자를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지만, 올해는 전임의도 거의 없어 상황은 더 악화될 것 같다.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려는 정부 태도가 너무 기분 나쁘다. 상급종합병원은 초고중증도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 현실이 억울하고 답답하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이 상황이 지속되면 진짜 상급종합병원에서 초고중증도 환자 진료를 받지 못해 먼 곳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하다.

암은 어쩌라고

중환자를 보는 파트에서 보면 외래, 응급실, 중환자실 당직까지 모두 근무하면서 육체적으로 번아웃이 오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우울감은 말도 못한다.

그만두고 싶다

계속된 당직과 동의서 취득, 의무기록 작성, 소독과 진료 등 모든 부분을 직접하고 있다. 번아웃이 심화되고 있다. 주변 동료들이 집단 우울증에 걸려 있다. 병원에 남아 있는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지경이다. 올해 펠로우 모집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여 이 현상은 더 심화될 것 같다. 의과대학 연구 기능도 위축돼 있다. 학생을 가르친다는 보람과 어려운 환자를 케어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의식 속에 습관적으로 환자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매일 동료 교수들의 사직 소식을 들을 때마다 ‘지금 나도 나갈 때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 남아 있을까?’하는 자괴감만 느끼고 있다.

 

멍청한 정부

급조된 PA와 남은 전임의, 촉탁의로 대형병원이 돌아가는 것은 역부족이다. 특히 당직이 가장 큰 부담이다. 상황은 병원별, 진료과별 차이가 있지만 우리 병원은 내과계가 정말 힘들어 하고 있다.

탈출 113

얼마전에도 동료 교수가 그만뒀다. 인원이 많지 않은 진료과는 교수가 사직하면 과 자체가 붕괴돼 운영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심장내과 교수가 사직해 당장 당직 설 인원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 병원은 60대 이상 교수를 제외하고 모든 교수가 당직을 서고 있다. 나이든 교수들은 체력적으로 죽을 맛이다. 방법을 찾으려고 내과통합당직제를 시도했지만, 이미 분과돼 타과 환자를 얼마나 잘 볼 수 있겠나? 타과 의료기기는 잘 다루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교수들의 목소리가 잠잠한 것은 현 상황에 적응돼서가 아니라 더 이상 목소리를 내도 답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 동료 교수들이 이제는 지쳐서 조용히 사직하고 있다. 의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나도 전공의

현재 의료현장에 돌아간 동료 전공의들은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선택한 진료과에 대한 자부심과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뿌듯함으로 버텨왔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자괴감만 드는 것이 복귀한 전공의들의 생각이다. 다행히 나는 검진센터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졸업 이후 인턴부터 계속 수련만 받아왔다. 이렇게 편하게 일하면서 전공의 때 받던 월급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받고 있다. 새삼 전공의 때 로딩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다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너무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좀 쉬면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계획이다. 사실 USMLE(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 미국의사면허시험)을 보거나 일본 또는 베트남에서 의사로서 정착하는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있다. 같은 과 친구들이 이미 USMLE 스터디 모임을 하고 있어 나가볼까 생각 중이다. 의대 재학 중 장학금을 못받아 부모님이 등록금을 마련한다고 고생이 많으셨다. 그런데 왜 내가 공공재가 돼야 하고, 정부 정책의 장기말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내가 해낸 성과가 우수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상식 아닌가? 정부에게 공짜로 돈 받아 공부하지 않았다. 지방에서 일하든 수도권에서 일하든 외국으로 나가든 내 선택이다. 이제는 나 개인의 행복만 바라보고 살고 싶다. 선배 의사들처럼 이 일을 내가 아니면 누가해라는 생각으로 희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세대간 갈등

당직으로 인해 주니어와 시니어 간 갈등이 생기고 있다. 시니어가 좀 편한 당직을 서고 주니어들이 아무래도 힘든 당직을 서고 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을 이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왜 나만 힘들고 저 사람은 편해야 해?’하는 생각을 하는 주니어들이 생기고 있다. 게다가 연구하고 논문쓰고 학회활동을 하는데 당직도 서면서 시간이 없어진 데다 2차병원 의사들과 비교하면 월급 차이가 커서 감정적인 문제도 생기고 있다.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어 사직하고 있다. 그나마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은 인력이 빠져 나가도 다른 곳에서 충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지방병원은 그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100% 망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도 힘들다

전공의들은 올해도 복귀하지 않는다. 복귀하더라도 간호인력들과 업무 재분장이 이뤄져 예전같은 전공의 업무는 아닐 것이다. 진료지원인력들이 기존 업무를 거의 다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당직 정도만 할 것이다. 점점 간호사에 대한 요구 업무가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야간 당직도 서달라는고 한다.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다. 처방 지원은 대부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무분장에 따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참에 판 다시 짜자

의대 증원에 대한 정부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방법론에서 무리한 추진이 문제다. 전담간호사는 일반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그 사이에 있다. 전담간호사는 의사인력이 부족해 생겨난 직군이다. 의사업무에 대해 일정 부분 교육을 받고 대행하고 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의정사태가 지속되면서 처방업무, 의사 의무기록 업무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보호가 없어 신분이 매우 불안정하다. 간호사가 의사 ID로 처방하는 병원도 있다. 불법적인 일이지만, 모두 쉬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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