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진료비 수집·분석 업무…의료계 “현장 의견 적극 반영해야”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 고시가 의무화됐지만 실효성 논란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환자권리옴부즈만에 따르면 서울 소재 병원 절반은 비급여 진료비용을 정부 지침에 따라 인터넷에 고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와중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비급여 진료비 수집·분석기관으로 위탁받으면서 그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심평원은 복지부의 고시 제정안에 따라 비급여 진료비용 등에 대한 자료조사, 분석, 공개,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를 두고 의료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보다 나은 방향의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효성 논란과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비급여 진료비 관리자’라는 감투를 쓰게 된 심평원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무용지물 비급여 진료비 고시정책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시행 중인 비급여 진료비 고시지침 의무화. 하지만 현장에서의 정책 수용성은 한 마디로 ‘무용지물’이었다. 

복지부의 비급여 진료비용 고시지침에 따라 비급여 진료비 관련 안내 내용은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화면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시돼야 하며, 배너를 이용할 때는 되도록 비급여 진료비용 등이 게시된 화면에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구축해야 하지만, 이 같은 지침을 준수하는 의료기관은 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일 열린 제1회 환자권리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선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이를 지적하고 나섰다. 

유 교수는 “비급여 진료비용 고시가 시행됐지만 현장에서 얼마나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모니터링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소재 병원급 의료기관 중 비급여 진료비 안내에 대한 배너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찾기 쉬운 곳에 위치한 기관은 상급종합병원 54%, 종합병원 48%, 병원 42%에 불과했다. 

게다가 53%의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비 안내 배너가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없었을뿐더러 병원의 18%만 모바일 홈페이지에 비급여 진료비를 고시했을 뿐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유 교수는 “비급여 진료비 정보 공개를 병원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유인한다면 환자의 안전 및 서비스 질 향상과 함께 환자의 신뢰도도 높일 수 있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며 “10여년 전부터 제기된 비급여 진료비 정보공개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발전방향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비급여 관리자 감투 쓴 심평원
정부의 비급여 진료비 고시지침이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 비급여 관리자라는 감투를 쓰게 된 심평원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복지부가 행정예고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 제정안’에 따르면 심평원은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52개 진료비용, 제증명수수료 항목에 대해 
의료기관별, 금액  등의 현황을 조사 및 분석해 그 결과를 공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 개설자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제출한 자료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보완자료를 요청하거나 의료기관에 방문해 현지확인을 실시할 수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의료법 개정을 통해 심평원이 수행 중인 비급여 진료비 공개 업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며 “복지부의 이번 행정예고를 통해 비급여 자료 미제출 기관에 대한 현지확인이 부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비급여 자료 미제출 기관에 공문을 보내고 일정을 협의한 후 제도를 설명하는 등 방문 상담을 진행해 온 심평원 입장에서는 막강한 감투를 쓰게 된 셈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비급여 진료비 고시지침의 실효성 논란과 더불어 심평원이 비급여 관리 위탁 기관으로 선정된 것으로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심평원의 부담은 가중된 상황이다.

의료계 “전문가 의견 수렴 필수”
이처럼 심평원이 비급여 진료비 관리를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의료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심평원이 관련 업무를 위탁하게 된 만큼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선 의료계는 비급여 수집·관리 업무가 비급여 통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과 실손보험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비급여 진료비 수집·관리의 진짜 문제는 비급여에 대한 코드 표준화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달랐던 비급여 명칭과 분류가 표준화된 정보로 집적될 경우 실손보험사들이 이를 보험 가입이나 갱신 거절 사유로 사용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의료계는 심평원의 비급여 진료비 수집·관리 업무가 국민의 알권리 강화 차원에서 진행되는 만큼 그 취지에 맞게 제도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비급여 의료행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의해야 하며, 세부적인 정의를 위해서는 의료 전문가의 의견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며 “공공기관이 수집·관리에 나서기 보다는 대한의사협회 등 전문가 단체에서 행위 정의부터 정확하게 진행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직접적인 영향권에 위치한 병원계는 심평원이 비급여 진료비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끝까지 반대하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대한병원협회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비급여 가격 통제를 추진해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제는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라며 "협회에서는 급여를 관리하는 심평원이 비급여 관리까지 맡는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협력과 타협은 없을 것이라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센티브와 행정벌 강화 언급도 
일각에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유인책을 활용하는 방안과 행정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비급여 진료비용과 관련한 세부지침을 어디까지 둬야할지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라면서도 “만일 세부지침이 만들어지고 나면 의료기관과 전문가들이 세부지침을 지킬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과 함께 인센티브 제공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는 환자들이 원하는 정보제공이 핵심”이라며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에 대한 의료기관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많은 의료기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법무법인 우성 이인재 변호사는 “비급여 진료비용 고지에 대한 의무는 있지만, 이를 위반할 경우 행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황”이라며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형사벌이나 행정벌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과태료 수준의 행정벌 도입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향후에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영업정지, 면허정지 수준까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심평원 “아직까지 확답 불가”
한편, 심평원 측은 복지부의 고시 제정안은 아직까지 행정 예고 기간인 만큼 내용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심평원 의료정보표준화사업단 관계자는 “우리 측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복지부의 고시에서 명시된 업무를 위탁받게 됐다는 것 뿐”이라며 “현재 행정 예고 기간이고 그 기간 동안 여러 의견을 들어야 함은 물론, 보다 세부적인 내용은 복지부와의 협의가 필요한 만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열린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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