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법령 통해 모든 공공기관 위탁 가능성 열어둬…의료계 “비급여까지 통제하나”

 

보건복지부가 정부 주도로 비급여 진료비용의 항목, 기준 및 금액 등에 관한 현황을 조사·분석하도록 하는 의료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 지난 4일부터 입법예고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해온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새롭게 비급여 진료비 관리 업무를 하고자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위탁 경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심평원은 임시조직이었던 ‘의료정보표준화사업단’을 새롭게 구성해 진료비 정보 공개 업무 등을 수행할 수 있다고, 또 건보공단은 요양기관의 원가자료를 수집하는 기반을 가졌다며, 양쪽 모두 자신이 비급여 진료비 관련 업무 수행에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복지부, 비급여 실태조사 예고
복지부는 비급여 진료비용을 조사·분석해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하자 지난 4일 하위법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국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이 오는 9월 30일 시행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비급여 진료비 조사 대상 ▲비급여 진료비 조사 기관 및 결과 공개 범위 ▲비급여 진료비용의 범위 등이 담겼다.

복지부는 “비급여는 고지 의무는 있지만 의료기관에 따라 그 금액의 차이가 있음에도 이를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나 적정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는 없는 실정”이라며 “이를 전문기관에 위탁해 빈도, 가격 등을 고려해 대상 항목을 결정하고, 현황을 조사·분석해 결과를 공개, 환자의 실질적인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 및 가계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려 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복지부는 먼저 비급여 진료비용의 범위는 비급여 진료비 일체와 제증명수수료, 선택진료비용 등이다. 이 같은 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하는 의료기관의 범위는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현황조사 결과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했는데, 이 경우 인터넷 초기화면의 찾기 쉬운 곳에 게시하고, 배너를 이용할 때에는 비급여 진료비용을 게시한 화면으로 직접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비급여 관리 업무 위탁, 경쟁 신호탄
특히 복지부는 입법 예고한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비급여 진료비 관련 업무를 수행할 위탁기관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업무위탁 경쟁에 신호탄을 쐈다.

실제로 복지부의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용의 항목, 기준 및 금액 등에 관한 현황 조사·분석, 그 결과의 공개에 대한 사항은 ▲공공기관 ▲의사회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인력·조직·전문성을 갖춘 법인·단체 중 복지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도록 했다.

즉, 비급여 진료비용에 대한 현황조사와 결과 공개 등 실무 작업은 그동안 비급여 진료비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왔던 심평원과 이에 대한 업무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건보공단 등 비급여 진료비 관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공공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열어 놓은 것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한 관계자는 “사실 그동안의 업무 프로세스를 보면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해 왔던 심평원이 업무를 위탁받는 게 당연해 보인다”면서도 “다만 복지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이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은 데는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경쟁 구도를 갖고 있는 만큼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융통성을 발휘한 것 같다”고 전했다.

공단·심평원 “내가 적임자”
이처럼 복지부가 비급여 진료비용 관리 업무를 할 수 있는 기관을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공공기관’으로 열어두면서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서로 앞다퉈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심평원은 비급여 진료비 관련 업무 위탁을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

심평원 이성원 개발상임이사는 출입기자협의회와의 간담회에서 “심평원은 현재 국민이 부담을 크게 느끼는 비급여 진료비를 진료비 민원제도를 통해 적정부담 여부에 대해 확인해주고 있다”며 “의료법 입법 취지는 단순히 가격조사 및 공개뿐 아니라 급여로의 보장성 확대, 심사기준 개선, 급여 적용시 수가결정 자료로의 활용 등 심평원이 그동안, 그리고 현재 해오고 있은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심평원 측은 현재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며, 현재까지 해왔던 비급여 진료비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앞서 심평원은 2013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43개 상급종합병원 및 300병상 초과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52개 비급여 진료비 항목을 공개하고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그동안 우리가 해오던 일을 수행하는 정도”라며 “비급여 진료비 관련 업무 위탁 기관이 결정될 때까지는 본래 해오던 업무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건보공단 측은 병원계와의 협의체를 구성, 비급여 진료비용에 대한 원가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아울러 전국의 조직망을 갖추고 있는 만큼 기반구조가 유리하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건보공단 김필권 기획이사는 “비급여 진료비 조사·분석 업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인 비급여 원가만 수집된다면 이를 통한 계산과 분석은 금방 이뤄질 것”이라며 “올해는 비급여 원가 자료 수집을 위해 요양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기획이사는 “특히 건보공단은 전국 시군구에 지사가 있는 만큼 인적·물적 인프라를 통해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원가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유리한 기반을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의료계 “이제는 비급여까지 통제하나”
반면 의료계는 정부가 비급여까지 통제하려한다며 제도 시행 자체에 반감을 표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비급여 진료비용은 환자의 상태와 치료방식, 치료 경과 등에 따라 의료기관별로 다르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며 “이를 무시한 채 단순한 가격비교 식의 자료 공개는 의료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하는 것은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단순히 가격적인 면만 부각시켜 강조하는 것은 결국 저질 의료의 상품화로 연결될 것”이라며 “비급여 가격이 높게 나온 병원은 비싼 진료만 하는 병원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의료에서 중요한 것은 값이 아니라 질”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 기관이 이익단체처럼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몸집 키우기에 몰두한 모습”이라며 “결국 자신들의 업무범위를 더 넓히기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법 개정안 하위법령 마련이 본격화되자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자신들이 적임자라고 이야기하며 경쟁하는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면서 “그보다는 자신들이 얼마나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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