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유전학 통해 가난한 아동일 수록 우울증 등의 발병 위험이 높다는 근거 확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정신건강질환 위험도가 높아진다면 믿겠는가? 최근 미국 연구진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미국 듀크대학 Ahmad Hariri 교수팀이 Molecular Psychiatry 5월 24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아동이 정신건강질환 발병 위험이 높았는데, 이는 DNA 구조가 후천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연구팀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낮은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우울증은 물론 인지문제(cognitive problem)를 동반할 가능성도 증가했다.관련 위험을 보인 아동 가운데 일부는 출생 전부터 이미 뇌 구조에서 정신건강질환 등에 걸린 위험이 명확히 드러났는데, 출생 전에 노출된 흡연, 영양결핍 등을 포함한 스트레스 요인이 정신건강질환 발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아동 183명으로 알아봤더니, 차이 확연히 들어나실제로 미국 듀크 대학 Ahmad Hariri 교수팀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 위험 요인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아동은 후천적으로 DNA가 변형돼 질환 발병 위험이 상승했다.
 

연구팀이 화학적 표지(chemical tag)를 대상으로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를 연구한 결과를 통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동이 유독 정신건강질환이 높은 이유가 후성유전학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흡연, 스트레스 등을 비롯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자녀의 DNA 구조가 변형됐다는 것이다.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 자체에는 변화가 없으나 세포가 분열되는 동안 DNA 염기의 부속 구조 또는 크로마틴의 변형을 통해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변해 표현형의 변화가 생기며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후성유전학의 대표기전으로 알려진  DNA 메틸화 (DNA methylation)는 DNA 메틸 전이 효소에 의해 DNA의 사이토신 염기에 메틸기가 전이되는 정상 효소 반응으로 발생과 발달, X 염색체 비활성화, 외부 기생 유전체의 발현 억제 등 정상 세포의 기능에 아주 중요한 기전이다.

연구팀은 가난한 아동에서 우울증이 증가하는지 좀 더 명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SLC6A4 유전자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SLC6A4 유전자는 뇌에서 세로틴 화학 물질이 전달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전부터 이 유전자에 결함이 생기면 불안증이나 우울증 발병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02년 미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SLC6A4 유전자에 결함이 생기면 불안장애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데 이는 유전자 결함으로 불안장애를 판별하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더해 Hariri 교수팀은 11~15세 백인 아동 183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이들의 혈액 샘플을 채취해, 우울증 검사를 실시했다. 또 대상군에게 위협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자가공명영상(MRI)를 통해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연구에 사용된 사진에 다소 위협감을 느끼거나 민감한 반응을 보인 아동은 그렇지 않은 이보다 대뇌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인 편도체(amygdala)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편도체는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에 대한 학습 및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3년동안 반복적으로 시험을 진행한 결과,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동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이와 비교했을 때 DNA 메틸화가 더욱 많이 일어났다.

연구팀은 "메틸화를 통해 세로토닌 수송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고 세로토닌의 가용성(availability)을 감소시켜 우울증 위험을 그만큼 증가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울증 가족력이 있는 아동일 수록 위험도는 더욱 높았다는 게 연구팀 부연이다.

전문가들 반응 부정적…결과 명확하지 않아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위스콘신 대학 Seth Pollak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만으로는 가난이 정신건강질환을 유발시키거나, 인지능력을 저하시킨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연구가 후성유전학으로 접근한 만큼 경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실제로 유전자에 결함이 생겨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어느정도 열어줬다고 볼 수 있다"고 평했다.

Pollak 교수는 이어 "하지만 대상군이 100여명으로 제한적인만큼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풀어내기에는 다소 역부족이다.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명확한 근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에 Hariri 교수는 현재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1000여명을 대상으로 DNA 메틸화 패턴을 분석할 계획이며, 1972년부터 지속적으로 이들의 건강상태를 추적·관찰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좀 더 명확한 근거를 도출해내기 위해 연구를 설계했다. 새로운 연구결과를 통해 뇌 활동 및 신체적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DNA 표지를 찾아낼 수 있다면 이들 유전자가 우울증 치료제 효능을 검증하는데 도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3월에는 독일 연구진이 후성유전학으로 인해 비만과 당뇨병도 향후 태어난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부모의 당뇨병 위험을 높이는 식습관이 정자와 난자에 그 정보가 담겨 태어난 자녀 역시 나쁜 식습관은 물론 질환 역시 대물림 된다는 것이다.

독일환경보건연구센터 Peter Huypens 박사팀은 Nature Genetics 3월 1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쥐를 대상으로한 실험에서 이같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탐에 따르면 고지방 식단을 섭취한 쥐에서 체지방이 급격히 증가해 비만은 물론 제2형 당뇨병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포도당 불내성이 발생했다.

연구결과를 두고 Huypens 박사는 후성유전학의 정의를 인용해  "다양한 환경적 요인과 생활습관에 영향받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녀 역시 부모와 동일한 습관 또는 질환을 가질 수 있다"면서 "다만 100% 맞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후성유전학에 추가 데이터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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