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위, 강제조정 대상 '중상해' 기준 대통령령 위임...의료계-환자단체 '엇갈린 시선'

의료분쟁조정 강제개시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신해철-예강이법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벌써부터 그 파급효과를 놓고 기대와 우려 섞인 관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법안의 영향력을 결정할 핵심 열쇠는, 법안이 대통령령으로 위임한 '중상해'의 범위.

중상해로 인정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개정안의 영향력은 세지고, 반대로 좁아질수록 예외가 많아지는 상황이어서, 향후 이를 둘러싼 이해당사자간 치열한 샅바싸움이 예고되고 있다.

사망-중상해 사건, 피신청인 동의 없어도 분쟁조정 자동개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7일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분쟁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법 개정까지는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 등 2개의 절차만 남겨둔 상태로, 총선정국과 여론을 감안할 때 2월 임시국회 통과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개정안은 의료분쟁조정 신청이 제기된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즉각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에는 환자나 의사 중 한쪽이 분쟁조정을 신청해도 다른 한쪽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쟁조정이 시작되지 않는 체계다.

복지위는 분쟁조정신청의 난립 등 그 파급효과를 고려해 사망과 중상해 사건에 한해서만 강제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정하며, 구체적인 중상해 사건의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해 정부가 정하도록 했다.

다수 모호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향후 정해질 이 '중상해'의 범위에 따라 강제개시가 가능해지는 사건의 범위가 무한정 늘어날 수도, 반대로 상당히 좁아질수도 있게 됐다.

복지위 관계자는 "법안심의 과정에서 중상해의 범위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 일단 하위법령에 포괄 위임시키는 방식을 택했다"며 "자동개시를 적용받는 범위는 향후 논의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환자단체 "형법상 중상해 기준 준용...실효성 확보해야"

환자단체는 형법상 중상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자동조정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형법은 중상해의 기준을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거나, 신체의 상해로 인해 불구 또는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로 다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별도로 대검찰청은 자체 가이드라인을 통해 가해자가 처벌대상이 되는 중상해 범위를 판단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2009년 마련한 교통사고 처벌 관련, 가해자 중상해 기준은 ▲생명유지에 불가결한 뇌 또는 주요 장기의 중대한 손상 ▲중요 부분의 상실이나 변형 ▲시각·청각·언어·생식 기능의 영구적 상실 ▲후유증으로 인한 중증의 정신장애, 하반신 마비 등 완치 가능성이 없는 질병 등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회장은 "법률상 이미 중상해 규정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의료분쟁조정법도 이를 준용해 야 한다"며 "원칙적으로는 경상해를 제외한 부분은 모두 중상해에 해당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안 회장은 "의료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데는 동의한다"면서 "대검찰청 가이드라인과 같은 일종의 원칙을 하위법령에 명시해야 하되, 의료계와 환자가 함께 논의해 그 내용을 확정해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16일 열린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 복지위는 16~17일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의료분쟁조정절차 자동개시를 골자로 하는 '신해철-예강이법'을 심의, 의결했다.

의협 "의사가 형사범인가? 형법 준용은 말도 안돼"

의료계는 형사사건과 의료분쟁은 그 특성이 명확히 다른 만큼 형법상 중상해 기준을 분쟁조정법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의사가 범인이 아니고, 의료분쟁이 형사사건이 아닌데 어떻게 형법상의 판단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느냐"며 "이는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인지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단서없이 규정된 '사망사고 분쟁조정 자동개시' 규정 또한 의료분쟁에 적용하기에는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의 논리와 체계를 다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부회장은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대로라면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망, 즉 질병력에 의해 자연사한 경우도 환자 측에서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조정절차에 들어가게 된다"며 "사망사건을 규정하려거든 '치료과정 중 기저질환과 별개로 발생한 사건' 등으로 그 범위를 제한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같이 기초적인 것조차 감안되지 않은 채 처리된 법안을 의료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의료계는 이 같은 졸속입법에 동의할 수 없다. 개정안이 이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포퓰리즘 입법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익 의원 등 "형법상 '중상해' 개념과 달라...제한적 운영" 주문

법안소위 논의과정에서도 의료분쟁조정법상 중상해의 범위를 형법상의 중상해와 같이 폭넓게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바 있다. 무분별한 조정 신청과 그로 인한 진료위축을 우려한 조치다.

김용익 의원은 16일 법안소위에서 "자동개시가 적용되는 사건의 범위를 사망사고로 한정해 경험을 축적하는 방식도 있겠으나, 사망 못지않게 억울한 중상해 사건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고집할 수는 없겠다"며 "(우려점이 존재하는 만큼) 중상해를 포함하는 경우에는 그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기준을 명확히 해서 논쟁의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 의원은 "형법상 중상해는 법률에 더해 판사의 판단에 따라 기준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런식으로 하면 곤란하다"며 "의학적으로 의사들과 협의해 다툼의 소지가 없을 정도록 명확히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조정이 가능한 중상해의 범위를 무한정 확장할 수 없다는 데는 복지부도 공감을 표했다.

복지부는 16일 법안소위에 출석해 "자동개시 절차가 필요하다는데는 동의하나, 무분별한 조정신청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법률 적용대상이 되는 중상해의 범위를 규정해달라는 국회의 요구에는 '의식불명 상태가 1개월 이상인 경우',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경우' 등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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