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동맥경화학회 새 지침, 美와 다른 길 선택

 

한국은 결국 지질 목표치를 고수했다. 1차선택인 스타틴의 병용 파트너로서 비스타틴계 전략의 가치 또한 인정했다.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며 스타틴의 스타틴에 의한 스타틴을 위한 치료를 주창했던 미국과는 다른 길.
한국인 이상지질혈증의 임상특성을 십분 고려한 결과로,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지질치료 지침을 선보인 것이다. 이상지질혈증 치료와 심혈관질환 예방에 있어 LDL 콜레스테롤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LDL 이론’에도 새롭게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지질 목표치 차등 유지”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이사장 박경수)는 최근 ‘2015년 이상지질혈증 치료지침 제3판’을 공개, “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도에 따라 LDL 콜레스테롤 목표치를 차등 설정하는 틀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지질이상 환자와 대면하는 임상의들에게 심혈관질환 위험도와 LDL 콜레스테롤 수치에 따라 목표치, 즉 조절 기준을 정해 놓고 치료에 임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2003년 치료지침 제2판과 2009년 2판 수정보완판에 이어 상당한 시일을 두고 새롭게 완성된 개정판이 나온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를 따를 경우 심혈관질환 초고위험군, 고위험군, 중등도위험군, 저위험군의 이상지질혈증 환자에게 LDL 콜레스테롤 70mg/dL에서 160mg/dL 미만에 이르는 목표치를 적용하게 된다.②

美 “지질 목표치 근거 없다”
국내 임상의들이 지질동맥경화학회의 새 지침, 구체적으로는 지질치료 기준에 대한 결정을 기다려 왔던 것은 미국이 앞서 내놓은 가이드 때문이다.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지난 2013년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 예방을 위한 콜레스테롤 가이드라인’을 통해 큰 변화를 시도하며 논쟁을 촉발했다.

기존의 LDL 콜레스테롤 목표치를 배제하고, 위험도에 따라 고강도 스타틴(LDL 콜레스테롤 50% 이상 감소) 또는 중강도 스타틴(30~49% 감소)으로 치료하도록 권고한 것. 지질이상 환자의 심혈관사건 예방과 관련해 스타틴의 임상혜택을 유일하게 인정하는 ‘스타틴 이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중심의학’의 영향력이 최고로 발휘된 결과였다.

ACC와 AHA 측은 임의로 설정된 목표치 조절과 심혈관질환 예방의 연관성에 대한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RCT)가 없고, 지질조절에 따른 심혈관질환 예방효과는 스타틴만이 유일하게 풍족한 근거를 갖고 있다며 스타틴 강도를 기준으로 치료할 것을 권고했다.

가이드라인, 그것도 백인 중심의 미국사회에 온전히 맞춰진 권고안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 세계 심장학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ACC와 AHA가 지질 목표치 무용설을 들고 나왔다는 것 만으로도 임상의들로서는 기존 치료의 틀을 유지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인 이상지질혈증 치료기준에 대한 가이드 또는 컨센서스가 지속적으로 요구돼 온 이유다.

“지역·인종 따른 스타틴 이점 근거 쌓아야”
미국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 ASCVD 환자 △ LDL 콜레스테롤 190mg/dL 이상 △ LDL 콜레스테롤 70~189mg/dL인 당뇨병 환자 △ ASCVD 또는 당뇨병이 없으나 LDL 콜레스테롤 70~189mg/dL이면서 10년내 ASCVD 발생위험 7.5% 이상의 그룹에게 중강도 이상의 스타틴을 적용해야 한다. 지질동맥경화학회는 이와 관련해 새 지침에서 “기존의 목표치를 없애고 중등도 이상 용량의 스타틴을 일괄적으로 투약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스타틴의 효과는 일관되지만) 투약 강도에 따른 지질강하 정도는 환자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말이다.

적어도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 이상지질혈증의 임상특성을 고려할 때 스타틴 고강도 치료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지침의 설명이다. 학회는 “미국 가이드라인이 아시아인 대상의 연구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중강도 이상 고강도 스타틴 요법의 이점 및 부작용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지역과 인종에 따른 스타틴 요법의 임상혜택과 부작용 위험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스타틴 지질강하율 한국인에서 더 커”
새 지침에 인용된 국내 연구자료에 따르면, 동일 스타틴 용량을 놓고도 외국인에 비해 한국인의 LDL 콜레스테롤 강하율이 더 높은 경향이 관찰된다. 아토르바스타틴 10mg과 로수바스타틴 5mg으로 얻을 수 있는 LDL 콜레스테롤 강하율이 39~44%와 40~49%에 이른다. 20mg과 10mg 요법은 각각 41~50%와 42~50%의 약물 유효성을 보인다. 40mg과 20mg 요법을 보면 지질조절 유효성이 52~59%와 50~60%에 달한다(J Lipid Atheroscler 2014;3:21-28).

미국 가이드라인에서 기저치 대비 50% 이상의 LDL 콜레스테롤 조절이 가능하다고 강조한 고강도 스타틴 요법은 아토르바스타틴 40~80mg과 로수바스타틴 20~40mg을 지칭한다. 여기에 국내 데이터를 대입해 보면 보다 낮은 용량으로도 50%대의 LDL 콜레스테롤 감소가 가능해진다. 고용량으로 갈수록 당뇨병 증가 등 부작용 위험이 동반 상승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인에서 상대적으로 저용량 또는 표준용량 스타틴의 효용도가 높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LDL 콜레스테롤 강하에 초점
지질동맥경화학회 지침은 이상의 근거를 토대로 스타틴 강도에 따른 일괄치료보다는 지질 목표치를 기준으로 한 맞춤치료에 무게를 실었다. 지질치료의 수단인 스타틴(스타틴 이론)보다는 목표인 LDL 콜레스테롤 강하(LDL 이론)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다.

우선 관상동맥질환, 허혈성 뇌졸중, 일과성뇌허혈발작(TIA), 말초혈관질환에 해당하는 심혈관질환 초고위험군에게는 LDL 콜레스테롤 70mg/dL 미만 또는 기저치 대비 50% 이상의 감소를 권고했다. 다음으로 당뇨병, 경동맥질환, 복부대동맥류에 해당하는 고위험군에게는 100mg/dL 미만으로의 조절이 권고됐다. LDL 콜레스테롤을 제외한 주요 위험인자가 2개 이상인 중등도위험군은 130mg/dL 미만, 위험인자가 1개 이하인 저위험군은 160mg/dL 미만으로 조절하는 것이 좋다.

스타틴 1차선택은 불변의 가치
약물치료의 경우 고콜레스테롤혈증·고중성지방혈증·저HDL콜레스테롤혈증 등 이상지질혈증에 스타틴이 여전히 1차선택으로 불변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지침은 “약물치료의 1차목표는 LDL 콜레스테롤을 목표치 이하로 조절하는 것”이라며 고콜레스테롤혈증의 1차선택으로 스타틴을 강하게 권고했다.

고중성지방혈증과 저HDL콜레스테롤혈증 역시 치료의 1차목표는 LDL 콜레스테롤을 목표치 밑으로 강하시키는 것이다. 스타틴에 대해서는 “비교적 부작용이 적고, LDL 콜레스테롤을 낮춤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심혈관질환 예방효과가 뚜렷하다”고 언급됐다.

비스타틴계 전략의 회생
지질동맥경화학회의 새 지침은 스타틴으로도 LDL 콜레스테롤 목표치 도달이 어려운 경우에 에제티미브·니코틴산·담즙산결합수지 등을 추가적인 병용선택으로 권고하고 있다. 심혈관질환 임상혜택과 관련한 RCT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비스타틴계 전략 자체를 배제한 미국 가이드라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경우 에제티미브가 Class IIa / Level B로 니코틴산·담즙산결합수지(IIb / C)에 비해 높은 권고등급을 받았다. 스타틴과의 병용선택에 에제티미브를 가장 먼저 써볼 수 있겠다는 것이다. 스타틴 단독 대비 스타틴 + 에제티미브 병용의 심혈관질환 임상혜택을 입증한 IMPROVE-IT 연구결과가 반영된 결과다. 특히 지침에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 환자의 경우 LDL 콜레스테롤 농도를 54mg/dL까지 낮췄을 때 추가적으로 임상적인 예후개선을 보였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참고할 만하다”는 언급이 있는데, IMPROVE-IT 연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외에도 새 지침은 고콜레스테롤혈증에만 국한하지 않고 고중성지방혈증과 저HDL콜레스롤혈증의 관리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높은 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에 낮은 HDL 콜레스테롤이 겹치면서 심혈관질환 위험을 가중시키는 복합형 이상지질혈증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절한 대처방향이다. 고중성지방혈증 치료에는 피브린산유도체(I / B)·니코틴산(IIa / B)·오메가-3지방산(IIa / B)이, 저HDL콜레스테롤혈증에 니코틴산(IIa / A)과 피브린산유도체(IIb / B)가 권고됐다.

특수집단의 이상지질혈증
이 외에도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의 새 개정판은 뇌졸중, 만성 신장질환, 당뇨병, 노인 환자 등에서 이상지질혈증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뇌졸중과 당뇨병 환자의 경우 스타틴 치료의 임상혜택이, 신장질환 환자에서는 스타틴 또는 스타틴 + 에제티미브 복합제 치료가 강조됐다.⑦ 노인 이상지질혈증 환자에 대해서는 “스타틴의 심혈관질환 1·2차예방 효과를 보여주는 근거가 많고, 특히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이 많은 노인에서 젊은 성인에 비해 스타틴 사용에 따른 비용효과가 크다”며 보편적인 스타틴 치료를 주문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