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 도입 4년째...학계서 개선 목소리

알레르기 천식은 매년 약 2000명의 사망자를 내는 무서운 질환이다.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뿐 아니라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데, 동일한 질환이라도 증상의 정도와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별 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천식이 감기와 같은 경증 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다면? 

천식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기가 찰 노릇이지만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이다.

2011년 경증질환으로 분류...중증 환자도 본인부담금 50%

문제의 발단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가 시행됐던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고혈압, 당뇨병 등 50여 개 질환과 함께 천식을 의원역점질환, 즉 경증으로 분류했다.

그에 따라 약물치료를 받는 천식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이 의원급 기관의 경우 30% 그대로 유지됐지만,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는 각각 40%와 50%로 올랐다. 천식치료에서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그만큼 강화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학계 관계자들은 "진료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도입한 제도"라면서 "천식 질환의 재분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체 천식 환자의 3분의 2가량이 중증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1차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진단 및 치료를 받을 수 없으므로 대학병원에서 개원가로 옮겨가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 정책적 효과는 얻지 못한 채 환자의 경제적 부담만 늘어나게 된 셈이다.

실제 임상에서 진료하다보면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수준이지만 비용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환자들이 상당하다.

가격이 비싸 치료를 못 받겠다고 불평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1주일치만 처방해 달라고 한 다음에 개원가에서 똑같은 약물을 처방받는 꼼수도 등장했다.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악화되는 사례를 보면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조상헌 차기이사장(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은 "우리나라의 질병분류코드는 천식지속상태(status asthmaticus)를 의미하는 J46을 제외하면 경증부터 중증까지 모든 천식 환자를 J45로 일괄 분류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분류체계부터 정비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J46의 천식지속상태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극단적 상태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일반 천식 환자들은 질환 자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음에도 J45라는 하나의 코드로 분류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또 있다. 개원가에서는 종종 충분한 검사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경증 천식이나 일반 감기 환자들을 J45 코드로 입력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로 인해 J45 입력건수가 늘다보니 천식이 1차 의료기관에서 관리 가능한 경증 질환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대학병원에서는 천식 환자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숨참, 기침 같은 코드로 바꾸어 입력하기도 하는 상황이어서 질병 역학 자체가 제대로 관리될 수 없다.

학회 윤호주 교수(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는 "우리나라에서 천식 유병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최근의 데이터를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함은 물론, 질병 유병률까지 왜곡시키는 현재의 제도를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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