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관련 전문의사들, 기존 공공의료기관 활용해야

정치권·의료계 한편에서 근본적인 대처방안으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는 '감염병전문병원'이나 '재난병원'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감염병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 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제 치료에 대한 충분한 검토, 시설·인력장비에 대한 논의가 뒤따라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을 비롯 공공의료기관들이 있는데 같은 개념의 또다른 병원이 설립되는 것은 기능의 중복과 예산의 낭비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

감염병전문병원 대안될 수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제기되고 있는 대안중 하나는 감염병전문병원의 설립이다. 이 주장은 모 대학 총장까지 나서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재난대처라는 원칙론에서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평소 음압병상 등 위기에 대응하는 준비를 갖춘후 일반적인 진료를 하다가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병원 체제로 전환해 운영토록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게다가 잘못된 정보에 대한 통제도 가능할 것이란 부수적 이점도 있다.

그러나 반대목소리도 크다.

우선 재난의학전문가들은 1000억원을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국가 지정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한 계획'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스(2004년), 신종플루(2009년)를 보면 4~5년마다 발생했고, 국제화 시대로 더 빠른 시기에 유입된다고 하더라도 전문병원을 만들어 감염병 유입을 기다리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난의학전문의들에 따르면 감염병 대처 경험이 없는 곳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공공기관이나 삼성서울병원같은 대학병원이 허둥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의료기관은 질병관리본부 산하 기관이라고 해도 일반진료는 통제밖이고 구조적으로 예외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NIH가 병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안된다는 반론이다.

대한재난의학회 소속 한 전문의는 "재난병원 설립후 평상시에 일반환자를 보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다"고 지적하고 "특히 의료진은 계속 환자를 진료하면서 교육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같은 기본적인 시스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 지방의료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응급의학 전문의는 "지금도 경영 적자라는 이유로 지방의료원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며, "감염병전문병원이 되면 운영예산은 물먹는 하마가 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기관에 감염병 의사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신종감염병이 발생했을 경우 관련되지 않은 타과 의사들은 할일이 없어지는 일도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공공의료기관 활용이 효과적
이비인후과전문의로 공공의료기관에서 재난 관련 업무를 하는 한 전문의는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국립중앙의료원 활용을 제안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중앙응급의료센터, 외상센터가 있고, 에이즈 등의 특정질환 치료 경험도 있기에 이번 메르스대처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배경이 됐기에 신종감염병 재난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안명옥 원장이 6일 국립중앙의료원의 메르스 대책 조직체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안명옥 원장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내용 상당수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원지동으로 이전하게 되면 별도 공간에서 신종감염병을 진료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으며 이는 최종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당장 내일 어떤일이 있을 지 모르기에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되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재난의학회 한 전문의는 "국립중앙의료원과 권역응급의료센터가 구축돼 있어 이곳에 감염병 관리 시스템을 이식,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엔 국립중앙의료원도 환영한다.

국립중앙의료원 권용진 기획조정실장도 "메르스 거점의료기관으로 전국 전담기관과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국가적인 진료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24시간 비상체계로 움직이는 상황실 내에 기획반·의료반·행정반을 구성 운영하고 있다"며, "화학, 바이오테러, 방사선, 핵 등 각각의 재난에 대한 대응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어떤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국립중앙의료원이 그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중앙의료원은 그동안 메르스 누적환자 확진 30명, 의심환자 10명(아산충무병원 간호사 7명, 투석환자 의심환자 3명) 등 40명을 격리 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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