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국회-정부-의료계 전문병원 설립 놓고 갑론을박..."국가 감염병 관리체계 구축" 설립 취지 어디로?

메르스 사태가 진정세로 접어들면서, 메르스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대책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메르스 피해의료기관 손실보상과 함께 의료계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이슈 중 하나는 '감염병 전문병원'의 설립. 감염병 예방·치료를 전담하는 진료·교육기관이 부재, 감염병에 대한 체계적인 대처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이를 전담할 별도의 기관을 마련하자는 것이 골자다.

정부와 국회·의료계 모두 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는 상황. 다만 이 과정에서 각계의 '입장'이 개입되면서, 감염병 재발방지라는 취지 대신 각자의 '성과'를 쫓는 방식으로 논의가 퇴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제2 메르스 막자"…국회, 메르스 후속입법 봇물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안을 먼저 제안한 곳은 국회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제2 메르스 방지를 위한 후속 입법안들이 봇물을 이뤘고,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근거를 담은 개정안들도 잇달아 국회에 제출됐다.

대표적인 것이 양승조, 이명수, 김용익 의원의 안으로 이들은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전문인력과 격리시설 부족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며 감염병 전문병원의 설립을 통해 감염병 유입 초기에 이를 신속히 관리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승조 의원이 내놓은 안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감염병 전문병원의 설립·운영, 그에 따른 예산지원의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명수 의원안은 감염병 환자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진료를 위해 국립감염병원을 설립하고 출연금을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김용익 의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전국 단위의 감염병 관리망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김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국가로 하여금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200병상 규모의 음압병상 등의 시설을 갖춘 감염병 전문병원과, 시도에 400병상 규모의 병상을 갖춘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운영하며, 그에 따른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국가적 관리체계 구축 입법 취지 무색...국회, 감염병 공공병원 설립 '올인' 

국가 감염병 관리체계 구축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국회는 감염병 전문병원의 '신설'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그 배경에는 지난 6월 7일 있었던 '여야 4+4' 회담이 있다. 메르스가 맹위를 떨쳐 국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 소집됐던 회담에서 여야대표단은 메르스 대응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당시 합의사항 중 하나로 포함된 것이 '신종 감염병 환자 진료 등을 위한 공공병원 설립'. 여야대표단은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공공의료체계의 중요성이 확인됐다며, 감염병 전문병원의 설립과 격리대상자 수용을 위한 자원확보 등 후속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겠다고 공언했다.

공공병원 형태의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이, 국회가 해내야 할 국민과의 약속이 된 순간이다. 이후 국회는 약속의 이행을 위해 관련 법 개정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이의 실현을 위해 연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국가 감염병 관리체계 구축을 목표로 했던 법 개정 논의 초기와는 달리, 논의가 길어지면서 "단 한 곳이라도 새 병원을 만들라"는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실제 6월 25일 있었던 복지위 전체회의에서는 다수의 의원들이 공공의료체계의 부재와 그에 따른 대안으로서 감염병 전문병원의 문제를 다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공공병원의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며 "단순히 전문병원 하나를 세우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주요 권역별로 거점을 만들어 국가 감염병 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당 김성주 의원 또한 "졸속으로 추진할 일이 아니다. 여야가 공히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만큼,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의가 길어지면서 최근에는 국회가 "하나라도 지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가장 최근 열린 6일 소위에서는 감염병 전문병원 신설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일었을 뿐, 권역별 거점병원 운영 등의 문제는 아예 논제에서 빠졌다.

 

정부, 감염병 전문병원 신설 의무 난색…문제는 '돈'

이 같은 기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정부의 '입장'이었다.

정부는 그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근거마련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규정을 강제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법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만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복지부 장옥주 차관은 법안소위에 출석해 여러 차례 "정부의 의견은 관련 조문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감염병의 연구·예방·치료를 위해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운영할 수 있다'고 정리하고, 구체적인 부분은 추가로 검토해서 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이다.

정부 측의 대략적인 추계에 따르면 200개 규모의 음압병상을 포함한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시 설립비용으로 1500억원, 병원 운영비로 연간 200억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수천억원 규모의 메르스 예산에 더해,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까지 추진할 경우 비용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정부 내부의 의견이 있었고, 복지부가 정부를 대표해 이를 막아내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 내부의 방침이 감염병 병원의 신설이 아닌 기존 병원들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결정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포스트 메르스'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이를 대비하는 모양새를 취하되, 예산 지출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복지부는 6일 열린 법안소위에서 "감염병 전문병원을 신설할 수도, 기존의 병원을 활용할 수 있다"며 "전문가 공청회와 연구용역을 통해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원계, 발빠른 준비태세…국립중앙의료원 주목

기존 병원들의 활용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병원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국립중앙의료원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세월호 사태 이후 재난의료의 컨트롤타워로 지목받은 바 있으며, 2018년 원지동 이전을 앞두고 대규모 신축이 계획돼 있는 상태다.

일부 재난의료전문가는 감염병을 대비하고 진료하는 목적만으로 전문병원을 설립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국립중앙의료원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감염병 전문센터로서의 기능을 추가해 원지동 이전 시 관련 시설을 확장,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비용·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국립중앙의료원 안명옥 원장은 6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내용 상당수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원지동으로 이전하게 되면 별도 공간에서 신종감염병을 진료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권용진 기획조정실장은 "그간 메르스 거점의료기관으로 전국 전담기관과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국가적인 진료역량을 집중해 왔다"며 "화학·바이오테러·방사선·핵 등 각각의 재난에 대한 대응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어떤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국립중앙의료원이 그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논란이 확산되는데 대해, 국회 일각에서는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법 개정의 취지는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어, 평시에는 신종감염병의 국내유입에 대비한 계획과 준비·교육·훈련·연구를 하도록 하고, 유사시에는 그 전문인력을 동원해 신속하게 환자를 관리·치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단순히 병원에 음압병실을 몇 곳 더 설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기관 하나를 만들고, 역할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감염병 컨트롤 타워를 바로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단순히 사태를 마무리했다는 티, 성과를 내기 위해 움직여선 안 된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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