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데이터 축적…'포스트 와파린' 꼬리표 떼나

 

 

 리바록사반, VKA 대비 카테터절제술 후 합병증 낮춰
-HRS 2015서 VENTURE-AF 연구 공개

 

일명 '포스트 와파린'으로 불리며 수년 전 임상현장에 상륙한 신규 경구용 항응고제(NOAC)가 와파린의 아성을 넘보며 끊임없이 저변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심장부정맥학회 제36차 연례학술대회(HRS 2015)에서는 리바록사반(상품명 자렐토)이 카테터절제술(catheter ablation)을 받은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던 VENTURE-AF 연구 결과가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같은 날 유럽심장저널(Eur Heart J 5월 14일자 온라인판)에도 카테터절제술 후 리바록사반을 투여했을 때 기존 표준 치료법인 비타민 K 길항제(VKA)보다 출혈 및 혈전색전성 사건 발생을 감소시킨 것으로 보고됐다.

VENTURE-AF 연구의 공동책임을 맡은 리카르도 카파토 박사는 "이번 결과로 카테터절제술을 받은 심방세동 환자의 임상적 관리에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됐다"면서 "카테터절제술은 심방세동 환자에게 빈번히 시행되는 시술인 만큼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혈전 생성을 예방하기 위해 경구용 항응고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VENTURE-AF 연구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5개국 37개 의료기관 심방세동 환자 24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전향적, 무작위대조 방식의 3b 임상이다. 카테터절제술을 받은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에서 최초로 리바록사반과 비타민K 길항제의 유지요법을 비교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심방세동 환자의 심장박동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시행되는 카테터절제술은 시술 과정에서 흔히 출혈, 혈전색전증과 같은 합병증이 동반된다.

유럽심장학회(Eur Heart J 2012;33:2719-2747)와 캐나다심혈관학회(Can J Cardiol 2014;30:1114-1130), 유럽부정맥협회(Europace 2013;15:625-651) 등 주요 가이드라인에서는 카테터절제술 전후, 그리고 시술 중 경구용 항응고제를 지속 복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사건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연구팀은 카테터절제술이 예정된 심방세동 환자 248명(평균연령  59.5±10세, 71% 남성)을 리바록사반 20mg 1일 1회 투여군과 비타민K 길항제 투여군으로 1:1 무작위 배정한 뒤 4주간 약물요법 유지했다.

참여 환자들의 평균 CHA2DS2-VASc 점수는 1.6점으로 74%가 발작성 심방세동을 동반하고 있었고, 비타민K 길항제군은 INR 수치 2.0~3.0을 목표로 용량을 조절했다.

1차 종료점은 카테터절제술 후 발생한 주요 출혈로 정했으며 2차 종료점에는 뇌졸중, 전신색전증, 심근경색 및 혈관계 사망과 같은 혈전색전성 사건과 기타 출혈 또는 시술관련 사건이 포함됐다.

연구에서는 전반적으로 종료점 발생률이 낮았는데, 리바록사반군에서는 혈전색전성 사건 및 주요 출혈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비타민K 길항제군에서는 주요 출혈이 1건(0.4%), 허혈성 뇌졸중과 혈관계 사망이 각각 1건으로 총 2건(0.8%)의 혈전색전성 사건이 보고됐다.

기타 출혈(21건 vs. 18건) 및 시술 관련 이벤트(5건 vs. 5건) 역시 발생률이 낮았으며 두 군 간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 최기준 울산의대 교수

바이엘 헬스케어 집행위원회 위원 겸 의학부 대표인 마이클 데보이 박사는 "VENTURE-AF 연구는 다양한 환경에서 정맥 및 동맥 혈전의 위험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리바록사반의 광범위한 연구 중 하나"라면서 "ROCKET-AF 연구에 이어 혈전관리를 위한 임상적 유용성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됐다"고 밝혔다.

울산의대 최기준 교수(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는 "기존에도 시술 전후 환자들에게 와파린 대신 NOAC을 처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며 "리바록사반군이 와파린군과 비교해 큰 차이를 내진 못 했지만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전향적인 연구 결과가 처음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NOAC이 사용상 와파린보다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근거자료를 확보한다면 임상현장에서의 적용이 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와파린 단점 보완...적응증 확대는 숙제로 남아

현재 국내 환자들에게 적용 가능한 NOAC 제품으로는 리바록사반 외에도 다비가트란(상품명 프라닥사), 아픽사반(상품명 엘리퀴스)을 들 수 있다.

60여 년간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경구용 항응고제로서 군림해 온 와파린의 대체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약물 자체가 지닌 몇 가지 제한점과 관련이 깊다. 

약물투여 후 효과가 발현되기까지의 시간이 72~96시간 정도로 느리고, 반감기(약 36시간)가 길어 수술 또는 시술을 앞둔 환자들이 수일간 복용을 중지해야 한다는 불편이 존재했던 것.

약물대사와 관련된 CYP2C9과 비타민K 대사에 관련된 VKORC1 유전자의 다형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별 용량 차이가 크게 나타나 치료반응을 예측하기 어렵고(Circulation 2007;116:2563-2570),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범위(INR 2.0~3.0)가 매우 좁아 잦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도 번거로운 부분이다.

그 외 다른 약물 또는 음식물과의 상호작용이 크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히는데(Arch Intern Med 2005;165:1095-1106), 무엇보다도 출혈 위험이 높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2000년대 초반 등장한 NOAC은 기존 와파린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개발, 차근차근 데이터를 쌓아왔다.

▲ 출처: J Korean Med Assoc 2013;56:57-61

2009년 발표됐던 다비가트란의 RE-LY 연구(NEJM 2009;361:1139-1151), 리바록사반의 ROCKET-AF 연구(NEJM 2011;365:883-891)와 아픽사반의 ARISTOTLE 연구(NEJM 2011;365:981-992)가 대표적으로, 세 연구 모두 비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의 혈전색전증 예방에 대해 와파린 대비 비열등성을 입증했으며 주요 출혈, 특히 두개 내 출혈 발생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이러한 근거들에 기반해 국내에서는 세 약제 모두 2013년도에 심방세동 환자에 대한 뇌졸중 예방 목적의 투여 적응증을 확보했고, 이달 1일부터는 다비가트란과 아픽사반이 심부정맥혈전증(DVT)과 폐색전증(PE) 치료 및 재발 예방에 대한 급여를 인정받게 되면서 시장을 넓혔다.

해당 적응증은 급여 인정기간이 6개월 이내라는 점에서 심방세동에 비해 시장규모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발병 및 재발 빈도가 높은 질환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NOAC의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수많은 대규모 임상을 통해 와파린 대비 효능 및 안전성을 입증했음에도 보험기준에서는 '와파린을 사용할 수 없는 고위험군 심방세동 환자'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 '와파린 대체제'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한 셈이다.

한편 최근에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NOAC의 긍정적인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다 대한뇌졸중학회와 대한심장학회 등을 중심으로 심방세동 환자에 대한 NOAC의 급여기준 개선이 적극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년간 막혀있던 1차 약제로의 진입관문이 열릴 수 있을지를 놓고 촉각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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