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없는 '밀실 논의'에 '부자 중심' 정책..."정부 태도부터 바뀌어야"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에 대해 '소득' 중심의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개편에 따라 필요한 재정은 국가와 기업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의 논의 중단 등 입장 번복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일부 전문가의 밀실 토론 대신 국민과의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5일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보건복지위원회 주최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중단,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에서 대다수 패널들이 이 같은 견해를 보였다. 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논의 중단'이라는 깜짝 발표에 따라 긴급하게 열린 토론회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국정 과제 일환으로 건강보험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을 꾸려 1년 반 정도 논의 끝에 개선안을 마련했다.

개선 방향에 따르면, 수차례 예고했던 대로 '소득중심'으로 부과체계가 개편되며, 부담능력이 있는 피부양자에 대한 인정기준을 보다 강화토록 했다.

이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2000만원 초과 금융(이자·배당)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등 '종합과세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이중 퇴직, 양도, 상속 등의 소득은 제외된다.

자동차 등 소유물에 대해서는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아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는 최저 보험료만 부과하면 되는 방식이다,
 

▲ 그간 기획단에서 논의했던 부과체계 개선안.

기획단에서는 개선안의 수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부과대상 소득기준, 소득금액 공제방법 등에 대한 행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제기했다.

복지부는 이 같은 기획단 개혁안을 토대로 약 6개월간 대안 비교, 재정 변화 및 가입자 보험료 부담 변동 등에 대해 분석해왔고, 이달쯤 개혁안을 발표키로 했었다.

하지만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지난달말 갑작스럽게 '개편안 논의 중단'을 발표했고,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논의 시작' '계획 없음' 등 반대되는 입장을 번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밀실토론 "제대로 된 공론의 자리도 만들어진 적 없다"

이러한 정부의 갈팡질팡 정책에 대한 비판은 물론 이날 토론회에 모인 패널들은 기획단의 개혁안이 '밀실'로 이뤄진 것에 대해서도 공분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한 적도 없고, 비공식적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진 기획안이 사실인지도 알 수 없다"며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밀실토론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우 위원장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국가의 큰 줄기가 되는 정책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라며 "국민 전체가 해당되는 문제를 어떻게 수많은 가입자 단체, 건정심 기구 등과 논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

사회공공연구원 제갈현숙 연구위원 역시 "개혁안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공식적으로 논의한 기획안이 나와야 한다"며 "시뮬레이션 자료가 모두 공개되고, 원칙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갈팡질팡 정책 발표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계속 이런식으로 하는 것 옳지 않다. 조세수익을 어떤 방식으로 확보해서 보편복지를 어떻게 달성하려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며 "잘못된 공약은 국가 재정지속 가능성을 위해 수정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공약과 정책을 남발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용익 의원도 "수년간 관련 주무부처, 공공기관에서 준비해온 사안을 하루 아침에 뒤집어버리고, 여론이 악화되니 청와대는 책임을 회피하고, 전문가는 사퇴하고 정부는 다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이러한 난맥상은 복지부의 자율성과 독자성이 위축됨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책임장관이 실종됐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부과체계 개편에 대해 조심스러운 것은 고소득층에게는 너그럽고 서민은 경시하는 정부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며 "보험료는 매달 접하는 문제이므로, 더이상 논의를 중단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했다.

이어 "부과체계 개편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밀실 회의가 아닌 '국민적 검토'의 기회를 마련토록 해야 한다"며 "개편 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부는 국고지원이 잘 이뤄지는지, 형평성 있게 이뤄지는 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 기업에 대한 책임 늘려야...가입자만 부담갖는 이상한 체계"

정부의 태도 지적에 이어 기획안에 '국가'와 '기업'의 재정 책임이 없는 개편안에 대해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송파세모녀 사건 때문에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국가의 부담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프랑스는 40%, 대만 26% 정도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10% 정도 부담만 지고 있는 실정.

▲ 서울대 김진현 교수.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기획단 참여) 역시 이에 책임성 있는 약속을 위해 국고지원 20%를 이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국가는 물론 기업에 대한 부담도 필요하다고 했다. 우 위원장은 "기업소득은 매우 늘었으나 가계소득은 낮아지고 있다"며 "정부가 기업 눈치를 보느라 기업소득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OECD 평균 사회보장에 대해 기여하는 정도는 70%로, 노동자는 30%만 책임을 지면 되는 방식을 설명하며, "기업이 건보료 등 4대보험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6:4정도만 늘리더라도 부과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앞당길 수 있다"고 밝혔다.

기획단의 개선안은 이러한 중요한 부분을 모두 배제하고 있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경감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 기업에 대한 부담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원칙은 소득·능력에 따라 형평성 있게 부과" 모두 동의

큰 틀의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기획단 개선안의 '소득중심 개편'에 대해 찬성했다.

먼저 주제발표를 맡은 서울대 간호학과 김진현 교수는 "비공식적으로 나온 기획단의 개혁안이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국민의 여론 방향이 검증됐다"며 "당초계획대로 추진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모두 이에 대해 지지하고 있다"며 "부과체계 개선기획단 제안을 토대로 사회 공론화 과정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만 더 하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용익 의원도 "복지부에서는 개편안에 대해 1년반 정도 논의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건강보험공단에서 3년 가량 준비한 사안"이라며 "어느 곳에서 연구하고 논의하든 '소득중심'이라는 부분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김종명 건강보험하나로팀장 역시 "현행 부과체계는 사회보험 원칙인 '능력에 따른 부담'에 위배되는 제도"라며 "소득 중심으로 속히 개편돼야 한다"고 동의했다.

한편 이날 관련정책의 주무부처 실무자인 복지부 이동욱 정책국장은 토론회 당일날 돌연 불참을 통보했다. 때문에 복지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전해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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