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누구는 덜 내고 누구는 더 내는 '불형평' 문제..."사회적 논의 재개해야"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유보 선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무책임한 뺑소니'라는 날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고, 2일에는 부과체계 개편 논의를 이끌었던 이규식 기획단장이 사퇴하는 등 파장이 커지는 양상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

앞서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기자실을 방문해 "올해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문 장관은 "전반적인 방향과 형평성에 대해 제고하고 있는데 어느 계층에서는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사회적 공감대 확보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내년 이후의 추진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라며 사실상 제도개선이 무기한 유보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장관의 부과체계 개편 무기한 연기를 선언한 28일은 정부가 부과체계 개편 최종안을 내기로 한 바로 전날.  2년여간의 준비기간 끝에 결승선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급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

문 장관의 발언 이후 각계에서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와 내가만든복지국가 등 시민사회는 물론 국회에서도 날선 목소리가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부에 "정치적 논리에 휘둘려 허둥대지 말라"고 쓴소리를 한데 이어,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일로 건보료 개편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를 고치기 위해 정부가 개선기획단까지 만들어서 대책을 준비해놓고선 반발이 예상된다고 아예 포기해버리겠다니 무책임한 뺑소니나 다름없다"고 맹비난했다.

▲이규식 부과체계 개편 기획단장

2일에는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이끌었던 이규식 교수가 정부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위원장직을 사퇴,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이날 공개한 사퇴의 변을 통해 "2013년 8월 첫 회의 개최 후 거의 1년 6개월을 논의했는데도 불구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무책임한 변명"이라고 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교수는 "(정부 주장에 따르자면) 내년 다시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고 공감대를 얻어서 후속조치들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현 정권에서는 부과체계 개선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정부는 매일 건보공단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민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라고 꼬집고 "현 정부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 기획단 위원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3원화된 부과체계 "불편, 부당, 불평등" 비난 고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 회의.

"수익 한 푼 없이 전세 500만원짜리에 살아도 보험료가 부과되고 또 그것을 내지 못해 자살까지 한 집이 있는 반면, 저는 압구정동에 맨션 1채, 강원도 영월에 논 1300여평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매년 4000만원 가량의 공무원 연금은 받을 예정이지만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등록) 건강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의 건보료 부과체계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잘못된 정책입니다."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양심고백을 남겼다. 이는 현재의 건보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의 건보료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 ▲소득 500만원 이상 지역가입자 ▲소득 50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로 사실상 3원화되어 있다.

건강보험료 지출에 있어서는 가입자 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만, 보험료를 거둬들이는 방식이 각기 다르다보니 부과체계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지속돼 왔다. 실제 건보공단에 접수되는 민원의 절반 이상이 건보료 부과체계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월급에 비례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구조로, 종합소득이 높더라도 지역가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이를 악용 '위장취업'을 통해 고액보험료를 회피하는 사례들도 있어 왔다. 

#한달 평균 3300만원 정도의 수입에 재산과표 6억원, 자동차는 2대를 보유하고 있는 연예인 A씨. 고소득 지역가입자 로 지역가입자 보험료 부과기준에 따라 매월 168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하지만 A씨는 지인 회사에 취업한 것처럼 위장해 직장가입자격을 획득했고, 이후 월보수를 90만원으로 거짓 신고해 2만 7000원 가량의 보험료만 내왔다. 

과도한 피보험자 범위도 문제다. 앞서 언급한 김종대 전 이사장의 경우처럼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소득이 높아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들어가면 건보료가 면제되는 '구멍'이 존재하는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에는 보험료 부과기준이 너무 복잡하고, 부과기준의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재산비중이 과다해 소득에 변화가 없는데도 소유한 부동산의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보험료가 인상되거나, 소득이 전혀 없는데도 매년 수만원대의 보험료를 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체장애 4급·시각장애 6급의 중복장애인인 B씨. 평생을 열심히 일한 댓가로 2000년 40여평의 토지를 구입했다. 재산(토지)과표 5500만원으로 월 77000원의 지역보험료를 내야했지만, 장애인 경감을 적용받아 월 62000원의 보험료를 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일자리가 없어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B씨에게 매월 6만원의 보험료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 B씨는 매일 공단 지사에 리어카를 끌고와 현금으로 보험료를 조금씩 내면서 '보험료를 깎아줄 수 없냐'며 하소연을 하고 있다.

공개를 앞두고 있던 기획단의 개선안은 소득중심으로 보험료 부과체계를 단일화하자는 안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45만명 정도의 고소득 직장인·피부양자의 부담을 늘어나는 대신 수입이 없거나 저소득층인 지역가입자들 602만명 가량의 건보료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논의 중단? 국민 불편 외면"

각계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 일정을 감안하면 정부의 이번 개편안 유보는 사실상 백지화 선언이며 문형표 장관이 말대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 논의를 이어가면 될 일이지, 이를 중단하는 것은 건강보험료 개편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처사라는 비판이다. 

김성주·김용익·남인순·안철수·양승조·이목희·인재근·최동익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은 정부의 부과체계 개편 유보 선언 직후 성명서를 내어 "건강보험료 부담 형평성을 강화하는 조치는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될 과제"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또한 1일 성명을 내어 "반발이 두렵다고 해야 할 일을 안하고 송파 세모녀의 비극 상황을 계속 유지시키겠다는 것이냐"며 "적당한 시기를 택해 국민과 함께 반발을 설득해나가든지, 아니면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단계적, 점진적으로 개선시켜나가든지...반드시 해야 할 일을 아예 안해 버리겠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당장 개편안대로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하라는 국민들의 일치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이게 사회적 공감대가 아니라면 정부가 확인하고자 하는 공감대는 어디에 있느냐"고 비판하고, 부과체계 개편 논의의 재개를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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