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토콜 따라 진료하라"를 "협진 의무화"로 잘못 적용
유럽심장학회·흉부학회, "임상특성 맞춰 PCI·CABG 선택"이 핵심

 
지난 5일 스텐트 급여고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던 오동주 대한심장학회 이사장의 손에는 종이 슬라이드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미국심장학회 저널 JACC 2014;130:1383-1391에 게재된 '스텐트 시술의 혜택과 안전성'에 관한 연구의 요약본이었다.

미국 재향군인의료기관의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 흉부외과 수술실 없이 스텐트술을 진행한 병원이 반대의 경우와 비교해 환자의 접근시간은 줄이면서(91분 단축, P<0.001) 사망률에는 차이가 없었다((hazard ratio 1.02, 95% CI 0.87-1.2)는 것이 주 내용이다.

심혈관 재형성술에 있어 심장내과와 흉부외과의 협진체계 및 설비를 모두 갖추기가 녹록치 않은 임상환경 속에서도, PCI의 기술발전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관상동맥질환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오동주 이사장은 이 한 장의 슬라이드를 통해 진보하는 의학기술의 임상적용과 이를 통한 국민건강 증진의 기회를 심장통합진료 의무화라는 고시의 명목하에 근거 없이 발목잡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복지부는 지난 9월 30일 PCI 급여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 개정안을 고시, "오는 12월 1일부터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 심장 스텐트의 개수제한 없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심장 스텐트의 적정 사용 및 최적의 환자진료를 유도하기 위해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관상동맥우회로술(CABG) 대상으로 추천하는 중증의 관상동맥질환에 대해서는 순환기내과와 흉부외과 전문의가 협의하여 치료방침을 결정해야 한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우리나라는 유독 심혈관 중재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때문에 스텐트 시술률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복지부 고시안은 스텐트 개수제한을 풀면서 보험재정 지출이 늘 것을 우려해 최소한의 여과장치를 만들어 둔 것으로 보인다.

"심장스텐트의 적정사용 및 최적의 환자진료를 유도하기 위해"라는 고시내용이 이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심장내과 학계는 심장통합진료를 강제화하는 고시가 오히려 스텐트의 적정사용과 최적 환자진료를 어렵게 하는 독소조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CABG 대상으로 추천하는 중증의 관상동맥질환(좌주간부·다혈관질환)"이라는 문구에 방점을 두고, 이번 결정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것으로 의학적 타당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고시의 근거 중 하나였던 유럽 가이드라인은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올해 개정된 유럽심장학회와 흉부외과학회의 심혈관 재형성술에 관한 공동 가이드라인은 '안정형 관상동맥질환의 재형성술' 섹션에서 좌주간부 및 다혈관질환을 놓고 PCI와 CABG의 선택을 논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지난 수십년간 좌주간부질환에서 CABG가 표준치료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낮은 중증도의 좌주간부질환에서 PCI가 CABG와 대등하다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며 PCI 선택 역시 함께 권고하고 있다.

근거는 SYNTAX 연구다. 좌주간부 관상동맥질환에서 PCI와 CABG를 비교한 이 임상연구에서는 주요 심혈관사건 위험인 MACCE (사망, 심근경색증, 뇌졸중, 반복 재형성술) 복합빈도가 대등했다(P=0.44).

5년 관찰에서는 사망(P=0.53)과 심근경색증(P=0.10)은 유의한 차이가 없었고, CABG군의 경우 뇌졸중 위험(P=0.03)은 높았으나 반복 재형성술 빈도(P<0.001)는 낮았다. 전반적인 MACCE 빈도(P=0.12)는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다.

특히 SYNTAX 스코어에 따라 저위험군(0~22점, P=0.74)과 중등도위험군(23~32점, P=0.88)에서는 두 치료법의 MACCE가 대등했고, 고위험군(32점 초과)에서는 CABG군의 뇌졸중 위험이 높은 경향을 보였으나(P=0.13) 사망률은 낮은 경향을(P=0.11), 반복 재형성술은 유의하게 낮은 빈도를 나타냈다(P<0.001).

가이드라인은 또한 서울아산병원 박승정 교수팀의 ASAN-MAIN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이 등록연구에서는 10년(금속스텐트 대 CABG)과 5년(약물스텐트 대 CABG) 아웃컴 관찰 모두에서 사망률과 MACCE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다만 CABG 그룹의 반복 재형성술 빈도는 낮았다.

가이드라인은 이에 근거해 좌주간부 관상동맥질환의 경우 SYNTAX 스코어가 22점 이하일 경우, PCI와 CABG를 동급(Class I, Level B)으로 권고하고 있다.

23~32점인 경우에도 등급에 차이를 뒀으나 역시 CABG (I, B)와 PCI (IIa, B) 모두를 권장한다. 다만 SYNTAX 스코어가 32점을 초과할 경우에는 CABG (I, B)를 선택하도록 했다.

다혈관(3개 혈관) 병변에서는 22점 이하에서만 PCI와 CABG 모두를 같은 등급(I, B)으로 권고했다. 환자의 임상특성, 즉 위험도에 근거해 PCI와 CABG를 선택하도록 기준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CABG가 표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까지 만들어 가며 PCI를 권고하고 있는 것은 이들 병변에서 CABG 만큼이나 PCI의 혜택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기 때문이다.

재형성술시 다학제 결정과정, 즉 심장통합진료와 관련해서는 ST분절상승 심근경색증 및 비ST분절상승 급성관상동맥증후군 환자를 포함하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의 급성 단계에서 Heart Team 협진이 의무 또는 강제사항이 아니라는 점(not mandatory)을 명확히 하고 있다.
 
다만 다혈관 병변의 안정형 관상동맥질환에 대해서는 다학제적 결정과정이 요구된다(required)고 언급하고 있다. 이 또한 흉부외과 수술 기관과 파트너십을 통해 사전 규정한 프로토콜에서 PCI 적응증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협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즉, 사전에 기관별 프로토콜을 만들고 이에 근거해 PCI 치료를 결정하라는 것이지 현장에 환자를 놓고 그 자리에서 협진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과는 거리감이 있다.

종합적으로 해석하면, 환자의 임상특성에 근거한 재형성술의 선택이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앞에 놓고 반드시 협진을 실시해야 한다는 고시의 근거가 될 만한 내용은 미약하다. 복지부가 스텐트 고시안과 관련해 과학적 근거, 즉 가이드라인을 다시 읽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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