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대 한설희 교수, 대한노인신경의학회 추계학술대회서 성토

"의사라는 소위 전문가 집단의 사람들이 내시경보다 수가가 높다는 이유로 치매특별등급 교육을 받고 있다. 비현실적인 수가제도가 낳은 우리나라 의료계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 건국의대 한설희 교수(건국대병원 신경과)

지난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 치매특별등급제도가 시행되면서 치매 환자와는 전혀 무관한 진료과의 의사들이 치매특별등급 교육과정에 몰리고 있는 현 사태를 두고 건국의대 한설희 교수(건국대병원 신경과)가 "의사들 스스로 자성해야 할 때"라고 성토했다.

제도 도입 3개월째 접어들었지만 시작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진단 신뢰도와 과잉진단, 그로 인한 국가재정 누수 등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한노인신경의학회는 12일 추계학술대회에서 '노인성 치매의 국가정책' 세션을 열고 우리나라 치매정책의 방향성과 현행 치매특별등급제도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지정토론 연자로 나선 한 교수는 "치매 환자는 완치가 불가능하고 관리가 워낙 까다롭다보니 미국 등 다른 국가들에서는 진료과간 기피하려는 경향이 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서로 보겠다고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다른 의료수가가 너무 싸다보니 내과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수가가 높게 책정된 치매 소견서 발급(4만7500원)에 몰리고 있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5년동안 치매를 전공하고 환자를 봐왔지만 초기 치매 진단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며 "1~4등급은 차치하더라도 6시간 교육을 이수한 비전문가들에게 초기 치매까지 진단하라는 것은 국가가 자기 책무를 다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기요양보험 혜택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던 경증 치매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충분한 준비과정 없이 성급하게 추진하다보니 허점이 많다는 것. 결과적으로 과잉진단을 초래하게 됐고, 이로 인해 겪게 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 불필요한 의료비용 등 심각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 교수는 "치매로 진단된 환자들은 차라리 암에 걸려 죽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사회적 스티그마와 함께 매우 심한 우울증상을 겪고 있다"며 "전문가들의 의학적 판단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채 기계적인 검사만으로 진단이 이뤄지다 보니 얼마든지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경증 환자들에게조차 치매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치매 진단과정에서 수반되는 불필요한 각종 검사들과 치료도 문제. 일례로 미국에서는 현재 매년 치매 환자 400만명에게 드는 비용이 무려 220조에 달한다. 이는 미국이 1년 동안 중동전에 소요되는 비용과 맞먹는 수준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2050년에 치매 환자 관리에 드는 비용만 중동전을 동시다발적으로 7개 치르는 데 필요한 금액만큼 발생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치매 환자관리에 드는 비용은 GDP의 0.8% 수준으로 2050년에는 1.9%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연자 겸 패널로 토론에 참석한 고려의대 박건우 교수(고대안암병원 신경과)는 "진단하는 사람의 전문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초기 논의와 같이 소견서가 아닌 진단서로 바꾸고 모든 프로세스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앙치매센터 김기웅 센터장은"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나 서비스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진행된 점은 인정한다"며 "제도 시행 이후 현장에서의 부작용들이 발견됨에 따라 모니터링과 지표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진단에 대한 신뢰도 문제, 과잉진단으로 인한 재정누수 등의 현황이 모니터링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라며 "치매특별등급으로 지정되면 운전면허가 자동 취소되는 등 상호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현행 문제점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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