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활성화 돼야…자료·논의 필수

이재호
환자안전연구회
홍보이사
울산의대
응급의학과 교수
17. 유행가 가사 같은 환자안전

요즘 의료계 뉴스를 보면은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의료계의 현안과 대책을 논하는 많은 글의 끝에는 환자안전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불합리한 수가나 근무인력의 문제를 토로할 때를 비롯해, 의료기관의 시설 미비를 지적하거나 파업을 할 때도 환자안전이란 단어가 들어간다. 개인정보보호법, 의료영리화, 원격의료의 문제를 지적할 때도 이 단어는 거의 반드시 들어가는 듯하다. 최근엔 모공중파 방송사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수액을 맞은 환자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환자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정말 유행가 가사처럼, 약방의 감초처럼 환자안전이란 단어가 떠돌아다니고 있다.

환자안전이 유행하면서 환자안전이 향상될 수 있다면 이런 유행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환자안전과 관련된 많은 이슈들과 환자안전 향상과의 관계에는 밝혀내야 할 것들이 많다. 불합리한 수면내시경 수가로 환자안전은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가? 수면내시경 수가를 합리화하면 환자안전은 얼마나 향상될 수 있는가? 의료기관의 시설미비로 환자안전은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환자안전'과 이들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충분히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계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들 중에서 환자안전과 관련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 어떤 문제를 개선하면 환자안전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거나 향상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안전 문제도 환자안전이 처한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네이버뉴스의 ‘우리사회 안전한가?’라는 세션에 들어가면 우리사회에 만연한 안전 문제들이 나열돼 있다. 기사를 읽다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각각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안전해질까 하는 의문과,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예산과 노력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안전이란 화두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고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었지만 무엇이 시급하고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지식이나 공감대는 너무 없는 듯하다.

환자안전 역시, 의료계의 각종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위성과 목표로 인식되고는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이다. 사실, 환자안전은 의료계 전반에 떠돌고 있지만 아직 이전보다 향상되었다는 증거가 없다. 의료계의 각종 문제가 환자안전과 관계가 있다면,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해결책은 환자안전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료와 논의가 필요하다. 의료기관에 환자안전담당자나 감염관리사를 배치하고 각종 술기의 수가를 올렸을 때 환자안전은 얼마나 향상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 없이 예산과 자원을 투입하기는 어렵다. 그러기에는 환자안전과 관련 없는 의료계의 문제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환자안전이 유행가 가사처럼 의료계를 떠돌다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문제들과 환자안전과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환자안전과 관련된 연구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이다. 환자안전의 향상을 위해서는 의료계 종사자들의 노력과 함께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요한데, 이 지원은 제한적이다. 제한된 자원을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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