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사고’ 보고시스템 마련해야

■환자안전 '스타트 업' 칼럼을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주신 이재호 교수님과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18. 보다 안전한 병원을 위해 - 끝

요즘 안전한 사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열망과는 달리 하루가 멀다 하고 안전과 관련된 사건들이 발생해 안타깝다. 정부는 안전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늘리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더 많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이런 정책을 너무 늦게 시작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고한 생명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가슴 아프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우리는 열망에 부응하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을까?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부, 시민단체, 비영리기구들은 안전한 사회를 위해 얼마나 힘을 합쳐 노력하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아직은 겉으로 내세우는 말들과 달리 노력이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더 노력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잘못, 기업의 잘못, 개인의 잘못 등으로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책임을 지우고 핑계를 대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우리는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정책, 규제, 매뉴얼을 넘어선 안전문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괜찮겠지'라는 생각과 큰 사고가 날 뻔한 사건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에 익숙한 느낌이다.

“정책이 없기 때문에”
“규제나 법이 없기 때문에”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재난대응 훈련이 없기 때문에”

큰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있으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정말 이런 것들이 있었다면 우리는 큰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 만약 이런 것들이 큰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안전한 시민문화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과 같이 '정지신호(Stop sign)'를 제도화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지신호를 잘 지킬까? 환풍기에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고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안전문화가 자리잡지 않고서는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규제를 만들어 내고는 그 규제 아래에서 허덕이다가 규제가 철폐되기를 바라면서도 더 안전하기를 바라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다.

현재 연수 중인 보스턴에선 전철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전철역에서 사람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아직 없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서울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흔히 발생하는데, 스크린도어가 없는 보스턴에선 왜 이런 사건이 흔하지 않을까?

병원에선 큰 사고가 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아차사고 (Near-miss, 근접오류)'를 보고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미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한 사건은 직원들이 보고하기를 꺼린다. 직원 중에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문제는 직원들이 어떤 아차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아차사고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하철 환풍기에 발이 빠질 뻔 했지만, 그것을 곧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수영장에서 잘못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 했지만 무사히 물에서 벗어나면 수영장 직원들에게 이런 위험을 알려주지 않고 수영장을 나서는 경우와 유사하다.

큰 사건을 예방하려면 이런 아차사고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홍보해야 한다. 하인리히 법칙에 의하면, 대형 사고가 한 건 터지기 전에 경미한 사고가 29회 발생하고, 이런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아차사고가 300회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300회의 사고를 무심코 지나쳐 버림으로써 큰 사건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안전한 병원을 위한 아차사고 보고시스템은 직원들에게 이것이 아차사고라는 것을 알리고 보고하는 것을 교육한다고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한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큰 사건이 될 뻔한 조그마한 사건을 겪었을 때 이것을 대중에게 알려 큰 문제를 예방하려는 문화가 정착될 때, 이런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다.

최근에 '황우석 사건'의 제보자가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제보자'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잘못된 것을 제보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예방하려는 것이라는 관점을 지니게 될 때, 작은 문제에서 배워 큰 문제를 예방하려고 할 때, 그런 병원을 만들려고 정책을 펼칠 때, 우리나라의 병원은 지금보다 더 안전할 것이다.
 
■환자안전 '스타트 업' 칼럼을 마칩니다. 그동안 집필해주신 이재호 교수님과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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