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를수록 좋다 vs 별 차이 없다

▲ STEMI 심장병 환자가 발생하면 가능한한 빨리 응급실에 도착해야한다. 선진국에서는 이송과정에서 항혈소판제제가 투여되고 있다.
몇 달 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갑작스럽게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위급상황에서의 처치가 학계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집과 병원의 거리가 불과 5~10분밖에 되지 않아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이 회장처럼 인근에 심장병 환자를 다룰 수 있는 대형병원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불행하게도 환자가 발생한 곳부터 병원까지의 거리가 멀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도로사정, 천재지변에 따라 늦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구급차 등에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아스피린, 항응고제, 항혈소판제제 투여와 같은 전처치를 할 경우 환자 예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일단 국내에서는 거의 불가능해 현재로선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해 처치를 받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반면 유럽 등 선진국가에서는 구급차에서 전처치가 이뤄지고 있다.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PCI)의 효과가 급성 ST분절상승 심근경색(STEMI) 환자를 병원 내 심혈관조영실까지 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적 지연에 영향을 받고, 관상동맥의 지속적이고 완전한 폐쇄(관상동맥 내 혈류의 차단) 위험성이 높은 STEMI 환자의 경우 단기간 내 사망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국가마다 서로 다른 방법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NEJM에 실린 ATLANTIC 연구는 급성심근경색환자에 대한 전처지와 후처치의 유용성을 검증한 것이다. 학계의 뜨거운 이슈가 됐던 ATLANTIC 연구를 자세히 살펴보고 어떤 임상적 시사점이 있는지 전문가 견해를 들어봤다.

ESC 뜨겁게 달군 ‘ATLANTIC 연구’

지난 9월 유럽심장학회(ESC)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항혈소판제의 투여시점에 따라 환자 예후를 얼마만큼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을 입증한 ATLANTIC 연구였다. 핫(HOT) 세션으로 분류돼 무려 4000여 명이 현장에서 연구의 결과를 지켜봤다.

ATLANTIC 연구는 PLATO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실시한 핵심 임상연구이다. PLATO는 12개월간 티카그렐러와 아스피린 병용요법으로 치료한 것이 클로피도그렐과 아스피린 병용요법 대비 심혈관 사망의 상대위험도를 21% 감소시킨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다(4% vs. 5.1%, 1.1% ARR; P=0.001). 또 심근경색 발생의 상대위험도도 16% 감소시켰다(5.8% vs. 6.9%, 1.1% ARR; P<0.005).

이처럼 티카그렐러의 효과가 기존 항혈소판제제보다 뛰어나게 나타난 것에 전문가들은 기존 약제에서 볼 수 없는 빠른 기전 효과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CPTPs(cyclopentyltriazolopyrimidines)라는 새로운 화학적 계열의 P2Y12 수용체 길항제이다.

이러한 기전적 차이는 위급한 심근경색 환자에서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고 그래서 고안된 연구가 ATLANTIC이다.

항혈소판제 투여시점별 효과 비교

연구에는 ST분절상승 심근경색(STEMI) 환자 1862명이 참여했다. 1차 목적은 입원 전과 입원 중 티카그렐러 투여에 따른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PCI) 또는 혈관성형술 이전 투여의 관동맥 재관류에 대한 효과와 48시간 및 30일 시점에서의 출혈에 대해 평가하기 위함이었다. 쉽게 말하면 항혈소판제를 구급차에서 즉시 투여한 것과 병원에 도착해서 투여하는 것을 비교한 것이다.

또한, 사전에 정의된 복합 평가변수(pre-specified composite endpoint)로 30일 시점에서의 사망, 심근경색(MI), 뇌졸중, 긴급 혈관 재생술, 스텐트 혈전증의 차이도 관찰했다. 이 연구에서 STEMI의 정의는 30분 이상 6시간 미만의 증상발현 후 구급차에서 심전도 검사(ECG)를 통해 STEMI로 진단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투약 디자인은 매우 재미있게 설계됐다. 환자들을 병원도착 전 구급차에서 티카그렐러(부하용량 180mg)를 투여하고 병원도착 후 위약(부하용량)으로 치료하는 Pre-hospital군(909명)과 반대로 구급차에서 위약을 주고 병원도착 후 티카그렐러로 치료하는 In-hospital군(953)으로 무작위로 나눈 것이다.

이렇게 배정된 환자들은 구급차를 통해 PCI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또한 모든 환자들은 연이어 티카그렐러 90mg 1일 2회 요법으로 30일 동안 치료를 받았다.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60세로 75세 이상인 환자의 비율이 16% 가량 차지했다. 여성의 비율은 20%였다. 각 군 모두 당뇨병 환자가 13% 가량 있었다.

관상동맥 병변의 심근경색 혈류(TIMI) 기준 위험점수는 0~2점이 60%를 차지했으며, 3~6점은 37%였다. 97%가 관상동맥 혈관조영술을 받았고, 또한 83%가 경피적 관생동맥 중재술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관상동맥우회로술 경험 환자는 1.1%로 불과했다. 98%의 환자가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위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투약시점에 따른 효과를 비교한 결과, PCI 이전에 ST분절상승 해소를 70% 이상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비율과 최초 심혈관조영술 시 경색에 관련된 또는 문제시 되는 TIMI 3등급을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비율은 두 군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Pre-hospital군에서 PCI 이전에 ST분절 상승 해소를 70% 이상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비율은 86.8%였으며, In-hospital군은 87.6%로 두 군이 유사했다(OR 0.93; 95% CI 0.69, 1.25; p=0.63). TIMI 3등급을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비율 또한 각각 82.6%와 83.1%였다(OR 0.97; 95% CI 0.75, 1.25; p=0.82).

아울러 2차 종료점에서는 PCI 이후 ST분절상승 해소를 70% 이상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비율과 최초 심혈관 조영술 시 경색에 관련된 또는 문제시 되는 TIMI 3등급을 달성하지 못한 환자의 비율을 관찰했는데 이 또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안전성 발생률도 유사했다.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 긴급 재건술, 스텐트 혈전증 등의 발생률에서 Pre-hospital군과 In-hospital군 각각 4.5%와 4.4%로 나타났으며, 사망, 심근경색, 긴급 재건술 등의 발생률도 4.3%와 3.6%로 유사했다.

다만 스텐트 혈전증 위험률은 차이가 있었다. In-hospital군 대비 Pre-hospital군에서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PCI) 이후 스텐트 혈전증 발생 위험이 24시간 시점과 30일 시점에서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구급차에서 티카그렐러를 투약한 것이 혈전증 발생을 늦춘 것이다.

그외 관상동맥우회술(CABG)과 관련이 없는 출혈 발생률은 1차 투약 후 최초 48시간 이내와 48시간 이후부터 30일까지를 나눠 평가했는데 모두 낮게 나타났으며, 그 비율이 두 환자군 사이에서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발표했던 프랑스 파리 피디에 살페트리에르 병원 교수이자 ATLANTIC 임상연구의 수석 연구자인 질 몬탈리스코(Gilles Montalescot) 박사는 "ATLANTIC 결과 스텐트 혈전증의 조기 발생을 줄일 잠재적 이익이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는 최초 의료 접점에서 STEMI 환자에게 이중항혈소판치료를 시작할 것을 1등급으로 권고하고 있는 올해 유럽심장학회(ESC)에서 새롭게 발표된 유럽심장학회(ESC)/유럽심장흉부외과학회(EACTS)의 '2014 심근 혈관재생술 가이드라인'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송시간 줄일 수 없다면 티카그렐러 조기투여 중요”
프릭 베르흐트 네덜란드 네이메헌의대 교수

▲ 프릭 베르흐트 네덜란드 네이메헌의대 교수는 환자가 병원으로 가는 시간을 줄일 수 없다면 티카그렐러와 같은 항혈소판제제의 조기투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ATLANTIC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1차 종료점에서 확인했듯 미리 투여하는 것과 나중에 병원에서 투여하는 것이 큰 차이가 없어 조기 투여에 대한 유용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PCI 환자의 스텐트 혈전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 만큼 임상적 혜택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이에 네덜란드 네이메헌의대 심장•폐센터 프릭 베르흐트 교수는 누구나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 치료시 최대한 빨리 혈전을 없애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와 관련한 연구는 없었다는 점에서 ATLANTIC 연구가 하나의 큰 숙제를 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현재 대다수 STEMI 환자들은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Primary PCI)로 예후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다만 PCI 특성상 환자가 시술을 받을 때까지 이송 시간, 수속 절차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시간의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환자가 심혈관 조영실에 도착하기 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혈관의 재관류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구급차 내에서 P2Y12 억제제를 조기 투여하는 것을 평가하기 위해 ATLANTIC 연구가 진행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 병원도착전 투여(구급차 투여)나 병원내 도착후 투여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교수는 지표 설정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1차 종료점으로 설정했던 ST분절 상승의 해소는 심전도 검사를 통해서 간단하게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혈관의 재관류 여부를 판단하는 대리 지표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혈관의 상태, 재관류 여부를 완전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

그는 "혈관의 재관류 여부를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PCI를 시행하기 전 심혈관 조영술(angiography)을 시행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1차 공동 종료점이었던 관상동맥 병변의 혈류 회복 관련 결과 역시 통계적 신뢰도를 나타내는 기준에서 아주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연구 대상자가 1만8000명 정도로 10배가량 많았을 경우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내비쳤다.

게다가 입원 전과 입원 중 투여의 시간차의 중간값이 31분으로 예상보다 짧았던 것도 연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연구 초기에는 두 환자군 간의 시간차가 1시간 정도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이유가 유럽의 경우 환자가 병원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고 구급차 안에서 환자에 대한 조치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진 점을 지적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주거지역과 병원 간의 거리가 굉장히 멀고, 환자가 병원에 빠르게 이송됐다 하더라도 소송 등의 문제로 인해 여러 단계의 복잡한 절차를 거친 후에야 시술실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입원 전 환자군과 입원 중 환자군 간의 약물 투여의 시간차가 약 2시간 정도 났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두 군간의 시간차가 30분이 아니라 1시간 정도로 더 컸다면 1차 평가변수에 대한 결과 역시 다르게 나왔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즉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충족변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이지 효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를 증명하는 이유 중 하나로 스텐트 혈전증 감소를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서 도착전 투여군에서는 스텐트 혈전증이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병원내 투여군에서는 0.8%(8명)에서 혈전증이 발생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더욱 안전하고 발전된 디자인의 스텐트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스텐트 혈전증의 발생률이 높지는 않지만,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스텐트 혈전증을 유의하게 감소시킨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덧붙여 그는 “스텐트 혈전증은 STEMI 환자에 대한 치료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 중 하나라면서 어렵게 스텐트를 삽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혈전으로 인해 다시 혈관이 막히면 그것은 치료의 목적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ATLANTIC 연구를 계기로 유럽은 표준적으로 구급차 내에서 티카그렐러와 아스피린이 투여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티카그렐러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약물이라는 것은 이미 PLATO 임상연구를 통해 입증됐고 또한, STEMI 환자들의 경우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더 기다릴 필요 없이 신속하게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개념적으로 이해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그는 병원이 가깝다고 해도 STEMI의 경우 워낙 긴급하고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약물의 투여를 놓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지만 반면 구급차 내에서는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한 환자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동 중 투여는 앞으로 표준적인 치료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국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환자가 최초로 치료시점(medical contact)을 맞이했을 때부터 PPCI 시술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만약 이 시간을 줄일 수 없다면 티카그렐러와 같은 약물을 조기에 투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ATLANTIC 연구의 한국내 적용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안 파라독스(Asian Paradox)라고 해서 아시아 환자에게 PRU 값이 높지 않으면서도 위험성이 있는 혈소판 문제가 클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시아 환자들이 체중이 보다 적게 나가기 때문에 약물에 대한 반응이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 그는 "일례로 일본이 아시아 환자에 대한 부작용 등의 문제로 인해 일본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J-ROCKET 임상연구를 별도로 시행하기도 한 것처럼 한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ATLANTIC-2 임상연구를 진행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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