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검진율 향상 위해 분변검사 대신 '내시경'"...전문가들 "의학적 소견 없는 판단" 반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대장암 검진체계를 '1차 분변잠혈검사→2차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5년 주기 대장 내시경 검사'로 통·폐합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대다수 전문가들이 의학적으로 잘못된 방향이라며, 현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가정용 키트 제공' '빅데이터 통한 검진 알고리듬 마련' 등 국민 편의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5일 건강보험공단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공단 건강증진실 박헌준 건강검진부장은 대장암 검진율 향상을 위해 '분변검사' 대신 '내시경검사'로 통합하는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대장암검진은 1년에 한번 분변잠혈검사를 실시하고, 이중 피가 섞여 나오는 등 의심소견(양성)이 있는 수검자에 한해 내시경 검사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분변검사에 대한 불만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분변을 채취해 요양기관을 방문하는 과정이 비위생적이고, 번거롭기 때문.
 

▲ 대장암 수검 절차.
▲ 전체 암 중 대장암만 대상자 수검현황.

이에 대장암 대상자의 분변검사 수검률은 2012년 9.7%, 2013년 11.2%(암종별 수검현황에서는 30.7%) 등 10% 내외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분변잠혈검사에서 양성인 수검자 중 절반 가까이 2차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분변잠혈검사를 받고 또다시 검진을 위해 요양기관을 방문하는 데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공단에서는 △매년 분변잠혈검사, 5년에 한 번 대장내시경검사를 의무화하는 방안 △현행체제를 유지하면서 전년도 양성판정자는 2단계 검사를 직접 시행하거나, 4년연속 분변검사를 모두 마친 수검자를 대상으로 대장내시경을 실시해주는 방안 △분변검사를 폐지하고 대장내시경 검사를 5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방안 등 3가지 개선안을 내놨다.

공단 건강증진실 한길호 실장은 "의료기술이 발달했음에도 굳이 분변검사를 선행하는 것은 행정력의 낭비이고, 환자 입장에서도 2번씩 검사를 받아야 해서 귀찮음을 느낀다"며 "즉 돈은 돈대로 쓰고, 환자들은 불편함 느끼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른 검진비 및 재정 손실 확대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하위계층은 덜 내게 하고, 상위계층은 조금 더 내게 하는 방식으로 가면 국민적인 합의를 쉽게 이루면서도, 재정 부담은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분변잠혈검사 필요...부작용 고려 하지 않은 방안" 비판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단의 방향에 대해 "재정은 물론 의학적인 판단을 배제한 처사이며, 공단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 국립암센터 김열 암검진사업과장.

국립암센터 김열 암검진사업과장은 "대장암검진 내시경으로 획일화해선 안 된다"면서 "공단의 방향은 부작용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즉 단지 편리하다고해서 내시경을 전격 도입해선 안 된다는 것.

김 과장은 "아직 대장내시경에 대한 무작위 비교 연구도 없고, 전세계 어디도 대장내시경을 대국민 건강검진으로 시행하는 나라도 없다"며 "수검자가 300만명 이상인데, 연간 3000명의 대장 천공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부작용에 따른 의료기관의 책임, 내시경 확대로 인한 건보 재정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매년 분변잠혈검사, 5년에 한 번 대장내시경검사를 의무화하는 1안을 신중하게 적용하는 선에서만 찬성하고, 이외에 마일리지 도입이나 내시경만 시행하는 2~3안에 대해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 한양의대 한동수 교수.

한양의대 소화기내과 한동수 교수도 "분변검사의 비위생과 번거로움 등 문제가 있지만, 과학 및 의학적 위험요소, 비용 등을 따져봤을 때 분변검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과정이 지나치게 비위생적이고 번거롭기 때문에, 외국처럼 가정에서 '키트'를 사용하는 편리한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병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키트를 사용하는 미국과 유럽은 대장암 수검률이 50% 이상"이라며 "굳이 수백억원을 들여 검사 과정을 바꾸는 것보다 적은 예산만을 들여도 번거로움과 비위생을 고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특히 공단의 개선안 중 '대장내시경 전체 시행'을 담은 3안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한 교수는 "내시경은 확진도 가능하고 바로 용종절제도 가능하다. 하지만 무증상자가 천공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천공시 의료기관의 유죄 가능성도 생긴다"며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내시경은 시술자의 경험에 의해 진단 결과가 많이 좌우된다"며 "무조건 내시경을 도입한다고 해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재앙수준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3안은 물론 2안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한 교수는 "대장내시경에서 아무 소견 없으면 10년 동안 용종 없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들에게 또다시 주기마다 분변검사를 하도록 한다"면서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특정연령대의 알고리듬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즉 수검율이 낮은 이유는 분변검사의 불편함도 있겠지만, 대장내시경을 이미 마친 사람도 모수에 속하면서 비율이 낮아진다는 것. 한 교수는 "빅데이터를 통해 대장암의 위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눠 건강검진 운영 알고리듬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단의 일반검진-암검진 주기 일치 개혁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했다.

현재 직장가입자 일반검진은 출생연도와 상관 없이 짝수/홀수 주기로 이뤄져있고, 암검진은 출생연도에 따라 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은 2년에 한 번, 간암, 대장암은 1년에 한 번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일반과 암검진 기간이 맞지 않는 경우로, 시간 및 재정적으로 상당히 비효율적인 부분이다.

게다가 사무직과 비사무직 간의 검진 기간도 다르다. 이전에는 비사무직 근로자들이 건강위해 환경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검진을 받도록 했으나, 최근 업무환경 개선 등으로 사무직과의 큰 차이가 없어 '실효성'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뿐만 아니라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일반검진 시작 연령이 달라 형평성에 어긋나는 문제도 있다. 지역가입자 중 세대원이거나 직장피부양자의 경우 일반검진을 40세 이후부터 받을 수 있지만, 직장가입자와 지역세대주는 연령제한이 없다.

이에 공단에서는 일반검진-암검진 주기 일원화, 사무직 및 비사무직 모두 2년 주기 검진, 지역가입자 검진 20대로 단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장과 학계, 검진기관 운영자 등 모든 사람들이 "행정적인 편의는 물론 국민의 수검률 확대를 위한 정책안"이라며 "빠른 도입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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