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사망률 지표화는 이득보다 부작용 더 커...병원들 중증환자 거부 확률 높아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12월까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를 실시한 후 2015년 12월 그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그런데 중환자실 평가 지표가 과연 적정한가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만 18세 이상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평가를 하는 이번 적정성 평가 지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 75% 이상 공감하는 지표를 선정했다는 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입장이다.

심평원 남길랑 평가관리부장은 지난해 대한중환자의학회와 중환자실 지표 개발을 위해 '중환자실 평가지표 및 평가기준 개발 연구용역보고서'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적정성 평가 지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남 부장은 "최근 5년 동안 발표됐던 해외논문을 검색하고 호흡기내과, 마취통증의학과, 외과 등의 전문가가 새로운 평가 지표 후보군을 선정했다"며 "중환자실마다 처한 환경이 달라 전문가들과 수차례 논의를 통해 평가 지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10개 기관의 예비평가를 통해 적용 가능성과 지표 타당성에 대한 검정, 의료기관간의 편차 등을 고려했다"며 지표 선정의 적정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라는 큰 틀에는 찬성이지만 심평원이 제시하는 지표가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발표한 평가 지표 인력이나 장비 등을 체크하는 구조 부문과 심부정맥혈전증 예방 등을 다루는 과정 부문, 환자 감염률과 사망률을 다루는 결과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3개 부문 중 구조 부문에 더 가산점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주대병원 외과 이재명 교수는 "중환자실에서 전담 전문의와 간호사 그리고 시설 장비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이번 정부가 진행하는 평가 지표가 병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구조 부문의 가중치를 더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래 전부터 중환자의학회도 중환자실 환경 개선의 황금열쇠는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배치라고 강조해 오고 있다. 2013년 1월부터 6월까지 실시한 중환자실 예비평가에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있었을 때 환자 사망률은 11.7%였던 것에 비해 없었을 때 17.9%였다. 또 중환자실 전담의가 입퇴원 기준관리를 할 경우 사망률이 10.3%, 하지 않을 경우 17.9%였다.

이처럼 정부도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가 있을 경우 중환자실 진료수준이 올라가고 또 환자 예후가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예비평가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번 평가 지표에서는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수를 분모로 중환자실 병상수를 분자로 해 수치를 측정한다. 심평원은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수 세부 규정에 전담전문의가 주간 기준(하루 8시간×5일) 총 40시간 중 50% 이상의 시간을 중환자실에 할애해야 전담전문의라 인정한다.

현재 복지부 의료기관 정책과는 중환자실 근무배치 시간 동안 타 업무 병행 및 근무기간 동안 교대근무 불가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1일 4시간, 주 2일 이내 외래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세부기준을 중환자의학회와 논의 중이다. 또 전담 전문의가 평일 휴가나 출장이면 대체 전문의를 둬야 한다는 조항도 복지부는 요구하는 실정이다.
중환자의학회 박상헌 총무이사(분당서울대병원)는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를 배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현실이다. 그런데 정부가 평가 지표를 만들면 경영진이 최소 기준만 지키고 병원의 대표적 적자 파트인 중환자실에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을까 걱정 된다"고 우려했다.

박 총무이사는 "중환자실 환경을 바꾸는 지름길은 전담 전문의와 간호사 등 인력 문제다. 결국 돈이 필요한 지표들이라 고민이 많다"며 "인력의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지표들은 관심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지표들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망률 지표도 보정 필요

이번 평가지표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환자 사망률이다. 전문가들은 중환자실 사망률이 평가 지표가 발표되는 순간 이득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주의대 이재명 교수는 환자의 사망률을 평가 지표로 사용할 때는 좀 더 정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중증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병원이 사망률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이에 대한 기준을 정하지 않고 사망률 자체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중환자의 중증도 평가를 철저하게 한 후 이 점수에 맞게 평가를 해야 억울한 손해를 보는 병원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총무이사는 "중환자실 평가지표가 측정된 후 발표되면 아무리 비공개로 한다고 해도 결국 알려지게 돼 있다. 그렇게 되면 병원들은 사망률을 속이고 싶어지고, 또 거짓으로 낮추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며 "상황이 좋지 않은 환자는 거부한다거나 또 환자를 선택적으로 받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전국 병원 감염 감시 체계(KONIS)처럼 병원들이 자유롭게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중환자실의 중심도관 혈행 감염률이나 사망률 등은 유예기간을 두고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평원 "논란 지표 재논의"

중환자실 환경을 개선하려면 적정성 평가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평가 지표에 들어 있는 '다학제 회진'은 중환자 전담의사와 약사, 영양사, 등 다른 직종 3인이 함께 회진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다학제 회진에 대한 수가는 현재 없다. 결국 중환자실 전담의사가 자신과의 친분이 있는 약사나 영양사 등에게 부탁해 다학제 회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주대병원 이주명 교수(외과)는 "다학제 회진은 평가지표 중 구조 부문으로 들어가 수가로 인정받지 않으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항목"이라며 "정부나 심평원이 중환자실에 있는 의사들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제도로 만들어 환자들이 더 나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바오로병원 문석환 교수(흉부외과)는 정부가 제시한 중환자실 평가 지표가 제대로 되려면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비판했다. 문 교수는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중환자실을 운영하려면 정부가 필요한 수가를 신설하고 장비에 대한 지원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환자실에 대한 평가 지표에 대한 이견이 나오자 심평원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남길랑 평가관리부장은 중환자의학회 등 중환자치료에 관여하는 의료진이 지적하는 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있고, 중환자실 사망률 중점도 보정 등도 다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 부장은 "현재의 평가지표를 모두 고칠 수는 없지만 중환자 치료에 관여하는 의료진의 의향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며 "오는 7월말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세부 규정을 확정해 홈페이지에 공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중환자실 평가를 통해 점수가 높은 병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2~3번의 평가를 통해 모형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정책에 반영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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