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응답하라 의료윤리
내가 생각하는 의사직업윤리

김충기
서울지방병무청
징병전담의사

세월호 닮은 대한민국 의료계
우리의 침묵이 비극에 일조

전사회적 최선 고민하는
전문가적 책임의식 되찾아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실종된 직업윤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뜨겁다. 소중한 승객들을 내버리고 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세월호에서 뛰어내린 선원들에게 시맨십(seamanship)은 무엇이었을까. 거창하게 직업윤리라고 할 것도 없이 바다 사나이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는 비겁함만 남았다.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함께 최후를 맞은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의 "Be british"라는 말에 담긴 책임감에 감동하지만, 정작 우리는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망각한 채 "나라도 살아야지"라는 비극적 사회에 살고 있다.
제 역할조차 다하지 못한 사람들, 사리를 채우기 위해 거짓과 반칙을 일삼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비단 그들로 한정할 수 없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일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이 직업 현장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선량한 사람들이었겠지만, 그들과 여타 사회구성원들 모두의 침묵이 지금의 비극에 일조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료계의 지금 모습은 세월호와 매우 흡사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넘쳐나는 환자들을 돌보는 대형대학병원의 전공의들을 비롯한 의사들은 진료수익의 확대를 위해 한계 이상의 노동을 과적한 세월호의 희생자가 되었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의 보전을 위해 영리자법인을 도입하자는 정부는 여객 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화물칸을 늘린 청해진해운과 닮았다. 과잉진료와 거짓청구로 점철된 사무장병원의 폐단 또한 또다른 청해진해운의 모습이다. 왜곡된 의료의 문제, 의료계에 만연한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자조 섞인 탄식뿐인 수많은 의사들의 모습 또한 세월호를 둘러싼 사람들과 닮았다.

제주도를 향했던 세월호는 그저 바다를 가로지르는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부푼 기대와 희망을, 오랜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 가족들의 깊은 사랑을 함께 담아 안전하게 제주도로 인도해주는 안내자였어야 했다. 의료의 바다를 항해하는 의사들 역시 내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들의 질병의 치유를 인도하는 데에만 그 역할이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이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통받지 않고 안전하고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는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의료계에서는 오늘도 세월호가 쓰러지고 있다. 2500여 년 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머물러 우리 의사들의 직업윤리에 대한 고민을 외면한 대가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 산다는 기능적 관념의 직업인식에서 벗어나, 의료라는 분야에 있어서 사회 전반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적 관념과 책임의식을 향해야 한다.

이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힘, 자존심이 우리의 직업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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