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도 한목소리...개혁 이유는 서로 달라

환자 "유독 의료분야만 의사가 왕이다. 다른 분야처럼 의료도 소비자가 왕이 돼야 한다."
정부 "수가 관련 기준이나 고시, 지침 중 잘못된 부분만 '규제'다. 수가 자체는 규제가 아니다."
의료계 "환자는 제멋대로 방치한채, 적정진료를 하는 의사만 쪼아대는 의료제도 전체가 규제다."


의료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 정부, 의료계, 소비자가 한 곳에 모였다. 하지만 규제 개혁보다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데만 급급한 모양새였다.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정부-의료 공급자-소비자 간의 설전(說戰)이 벌어졌다.

주제 발표를 맡은 심평원에서는 현재 의료행위와 자원관리 부분에서의 민원과 불만, 과제 등을 발표했다.

김재선 의료행위관리실장은 "수가, 적응증, 인정횟수, 기간 등 급여기준을 검토할 때 의학적 근거 뿐 아니라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보험재정 부담 등을 고려한다"며 "이 때문에 의료진과의 마찰이 계속된다"고 언급했다.

최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용하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에크모(ECMO)'를 예로 들면서, "이는 적응증에서 '중증 심부전' '중증 급성호흡부전'으로 명시됐는데, 이에 대해 의료진마다의 해석이 달라 논란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MRI의 경우 기준초과시 적용 원칙에 있어서 의료진과의 마찰이 있으며, 청력검사·중심정맥압측정·신경학적검사 등의 산정횟수에 대해 늘려달라는 요구가 끊이질 않는다고 전했다.
 

▲ 심평원 김재선 실장.

김 실장은 "급여기준에 있어서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은 점을 인정한다"며 "앞으로 의료현장과의 소통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심평원 홈페이지에는 의료현장에서 급여기준에 대한 불만이나 건의사항을 게시할 수 있는 '급여기준 사이버참여 시스템'이 있다"며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급여기준에 대한 의견 수렴 뿐 아니라 의료법과 건강보험법간 '상충'된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평원 정동극 자원관리실장은 "의료법과 건보법 간 중복은 물론, 충돌되는 규제들이 있다"며 "심평원의 업무 중복과 혼란은 물론 의료현장에서의 불만이 계속 나온다"고 했다.

현재 의료법상 △의료기관의 개선 및 변경 신고 △종별 시설기준 △정원 기준 등은 건보법상 △요양기관의 현황 및 변경 신고와 중복되는데, 신고항목 중 64%에 달하는 47항목이 겹친다.

또한 의료법에서 △의료인력 적정보유 기준은 건보법의 △관리기준 간에 괴리가 있어, 법해석을 다르게 하면 '부당청구'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정 실장은 "중복이 있는 부분은 과감히 없애고 간소화야하고, 행정해석이 상이한 개념이나 적용범위 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행위와 자원관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자, 정부-의료공급자-소비자 모두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유에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의협 서인석 보험이사는 "최상의 의료에 대한 걸림돌은 불합리한 급여기준과 급여체계"라며 "이를 통해 비용은 통제할 수 있으나, 정말 필요한 진료, 환자가 원하는 진료는 행위를 할 수 없게 한다"고 토로했다.

또 "환자가 원하는대로 진료를 해주면, 환자가 아닌 공급자만 처벌한다. 그리고 환자는 병원을 많이 간다고 해서 제지하지 않지만, 의료진이 조금만 많은 행위를 하면 무조건 삭감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의료제도에서 전문가인 의사를 배제하면서, 급여의 우선순위도 잘못 설정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이사는 "필수항목에 대해서는 횟수나 적응증을 제한하는 반면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항목에 대해서는 '선별급여'라는 이름으로 급여로 적용해주고 있다"며 "제도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전문가인 의사단체에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병원계에서도 의료계와 같은 입장이었다. 병원협회 김대환 보험이사는 "건강보험정책의 논의 과정부터 잘못돼 있다"며 "실례로 전문평가위원 운영방식은 전문가를 무작위로 구성해 연속이 떨어지는데, 이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김 보험이사는 "한정된 자원 내에서 운영하는 공보험의 특성상 규제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 "하지만 이를 위한 논의나 절차에 있어서 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고, 의사 뿐 아니라 환자의 책임론도 가용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 소시모 오숙영 운영위원.

이와 달리 의료분야에서 소비자가 도외시되고 있다며, 의사가 아닌 '소비자'의 권한을 더 넓혀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비자시민모임 오숙영 운영위원은 "무조건 규제를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필요한 것을 만들고, 필요 없는 것을 철폐해야 '개혁'이다"라고 운을 뗐다.

오 위원은 "소비의 왕은 소비자인데, 유독 의료에 관해서는 소비자가 어떠한 힘도 쓸 수 없다"며 "정부와 심평원에서 비급여에 대한 가격을 다 공개하고, 의사들이 쓸데없이 검사항목을 늘리는 문제 등에 대해 제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더불어 "의료용어는 소비자가 알아듣기 어렵다"며 "의사가 엉뚱한 말로 환자를 속일 수 있으므로, 다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복지부는 의료계 주장과 달리 '수가'는 규제가 아니며, 수가를 둘러싼 고시, 지침, 세부사항들 중 잘못된 내용만 규제라고 선을 그었다.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세금이 규제가 아니듯 건보에서 수가도 규제가 아니다"라며 "상대가치 고시, 세부사항 고시, 심사지침, 행정해석, 심평원 심사사례 등을 규제로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급여기준 중 3회 이상부터 △비급여로 하는 행위가 있고, △100대100 본인부담, 또는 아예 △불인정하는 것 등 3가지로 나뉘는데, 이에 대한 대원칙이 없다고 지적했다.

손 과장은 "왜 삭감이 되는지, 또는 돈을 아예 못받는지에 대해 의료진들은 물론 정부에서도 납득이 안 될때가 많다"며 "세부적인 원칙을 잡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준이나 지침을 정하는 '과정(프로세스)'과 '구조(거버넌스)'가 덜 발전돼 있다면서, "의사결정 과정부터 개선이 돼야 기준이나 고시도 올바르게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복지부에서 이러한 정책에서의 문제들을 검토하고 규제를 철폐하는 데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의료법-건보법 간 충돌문제는 정책이 아닌 법률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할 분야"라며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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