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수가인상이라도 시빗거리로 삼으면 안 돼... 정직한 의사로 살 수 없는 상황이 파업으로 이끌어

 
의사들이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파업 이래 14년 만에 다시 광장으로 나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파업 찬반 투표를 시작해 4만8000명이 참여하고 이 중 76%가 넘는 의사들이 파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10일 총파업이 결정된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때 처음으로 의사들의 파업을 본 국민들은 '경악' 그 자체였다. 존경의 대상이었던 '의사 선생님'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생경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들도 파업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이 그때 분위기였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파업이란 단어에 느끼는 당혹감도 없어졌고, 의사라는 전문성을 지키고 살려면 힘을 모아 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은 더 절실해진 것이다.

의사들의 파업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아일랜드, 뉴질랜드, 브라질 등 국가가 의료를 관리하는 나라에서는 반복적으로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스페인이나 이스라엘 등에서 의사들의 파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의사들의 파업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다. 정부는 국민 불편을 이유로 의사들의 파업을 막고 있다. 법과 제도로 의사들을 꽁꽁 묶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도 의사들의 파업을 좋게 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의사는 과연 환자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

의사들은 파업하면 안 된다는 과거 강경했던 입장에서 최근에는 의사들도 파업을 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05년 보건복지부의 법인설립 허가를 받아 2006년 창립한 사단법인으로 서울대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가 소장을 맡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최근 논평을 하나 냈다. 의사들도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파업할 권리가 있고 설혹 파업의 명분이 수가인상과 같은 밥그릇 챙기기라도 그 파업은 정당하다는 것이 논평의 요지다.

연구소측은 "의사들이 파업을 하려는 이유가 겉으로는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를 반대하는 것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원격의료가 의원 경영에 타격을 줄 것을 걱정하고 그동안 참아왔던 저수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일 수 있다"며 "일각에서 파업의 목적이 수가인상이라고 시빗거리로 삼지만 이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그 어떤 파업이, 노동자들의 어떤 단체 행동이 밥그릇과 무관했냐는 것이다.  의사들의 파업이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인류가 성취한 근대적 인권이라는 주장이다.

연구소측은 "심정적으로 의사들의 파업을 부당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우리사회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며 "의사들이 파업을 하겠다는 이유나 동기는 그 자체로는 부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개원가 의사들도 파업할 권리가 있다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김종명 의료팀장(가정의학과 의사)은 "원칙적으로 어느 집단이든 파업할 권리는 있다고 본다"며 "다만 그 파업의 정당성 문제는 다른 측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사들도 파업할 수 있다는 분위기는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의 움직임에서도 포착된다. 과거와 달리 의협의 총파업에 지지성명을 낸 것이다.

의사들의 파업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의사들이 정직하게 살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대 내과 허대석 교수는  의사가 국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파업을 하려는 것은 교과서에 나온 대로 진료를 하면서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허 교수는 건강보험이 관리하는 의료행위 영역이 확장되고, 국가 개입이 커지면서 진료에 있어 의사의 핵심이었던 자율권의 폭이 줄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한다. 의료혜택의 확대가 정치적 선심의 대상으로 변질되면서 자율권의 침해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는 "저수가 정책으로 비급여 의료행위나 영리사업에 의료기관들이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의사의 기술료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아 검사나 투약 위주의 비정상적인 의료가 만연한 것이 현실"이라며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때 교과서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요구했지만 지금의 의료현장은 더 악화됐다"고 비판했다.

또 "정직한 의사들이 일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불행한 의사와 불만족한 환자가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의료복지는 존재할 수 없다"며 "환자-의사-정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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