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백의의 물결로 파업 성공... 이스라엘, 준법시위로 성공 이끌어

 
2012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WMA)에서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윤리적 측면에 관한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이 문제는 세계적 이슈임에 틀림없다. WMA는 근무환경이 열악한 의사들의 파업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정당화 되기는 어렵지만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았다.

WMA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체계가 접근성과 질 확보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보건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단 집단행동을 할 때 의사 개개인의 윤리적 직업적 의무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아니므로 국민에게 미칠 해악을 최소화하고, 필수적이고 응급한 의료서비스는 보장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WMA의 집단행동 인정이나 오랫동안 의협과 등을 졌던 보건의료노조도 등이 파업에 힘을 실어주고 나섰지만 앞날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파업은 법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제26조에 '구성사업자의 사업내용 및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과 5억원 범위 과징금 부과,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5000만원 이하 벌금 등 행정처벌이 부과된다.

또 의료법 59조에 '지도와 명령' 조항이 있어 복지부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고, 휴업이나 폐업을 했을 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때 공정거래법으로 당시 휴진을 주도했던 김재정 의협 회장과 의쟁투 의사 13인은 2005년 집행유예 및 벌금 200만원 등의 형사처벌을 받았다. 의료법은 실제 파업에 나선 병원들만 법의 저촉을 받지만 공정거래법의 독점규제법은 파업 결의를 한 후 의사 회원들에게 파업 조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위법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개원의는 "2000년에는 공정위법이 존재했다면 그 이후 2008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파업을 원천 봉쇄했다고 봐야 한다"며 "법률상 정부의 지도명령이 떨어지면 폐업을 하기 전에는 강제로 진료를 해야 한다. 아쉬운 일은 의협이 정치적 역량이 너무 부족해 늘 당하기만 하고 있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법적인 처벌로 인해 10일 파업을 앞둔 의사들은 어떤 방법으로 파업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개원의는 "등기나 공무원이 가져오는 업무개시 명령서를 받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개원의는 "휴업신고서를 내고 병원에 오는 환자들에게 다른 병원을 안내해 줘 환자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의협에서도 회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부에 맞서는 의사들이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국민의 지지, 지역주민과 의료인들과의 연대가 절대적이라고 조언한다. 스페인에서 있었던 의사 파업이 성공한 것은 백개가 넘는 지역조직과 간호사 등의 의료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고, 이스라엘 의사들의 승리도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오랫동안 불편을 겪으면서도 공공의료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는 데 동의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사회가 비상진료위원회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면서 응급을 요하는 환자들의 진료는 차질이 없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 스페인에서 백의의 물결이라 불린 의사, 간호사 등의 파업 모습

스페인·이스라엘선 의사 파업 목적 달성

최근 의사 파업을 경험한 나라로는 스페인과 이스라엘 등을 꼽을 수 있다. 스페인은 의사들이 6개 공공종합병원 등에 대한 정부의 민영화 계획을 좌절시켜 주목을 받았다. 마드리드 정부는 2012년 신자유주의적 의료민영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마드리드 지역 내 모든 보건소와 6개 대형 공공병원 사유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마드리드의료전문인협회(AFEM)는 2012년 10월 의료민영화 전면 반대를 선언하고 15개월 동안 저지 운동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에는 5주에 걸쳐 의료총파업을 실시했는데 당시 예약된 5만건 진료는 취소됐고 6500건의 수술도 연기됐다.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노동자의 흰색 가운 때문에 '백의의 물결'이라 불린 이 운동은 국민당 유권자층에 속했던 많은 의사가 참여해 정권에 대한 압력이 보다 컸다는 평가다. 

지난 2010년 11월 이스라엘의사회(IMA)는 병의원을 포함한 공공의료기관 의사 1만 7000명을 대표해 정부와 협상을 벌인 경험이 있다. 이스라엘의사회의 요구는 의료인력 보강, 병상 확충, 지방의사들의 급여 인상, 의사 수가 부족한 진료과 의사들에 인센티브 지급, 시간당 급여 50% 인상 등이었다. 

협상의 진전이 없자 의대생, 의사 등 2500여 명이 대규모 시위에 돌입했고, 전국 공공 의료기관 의사들은 7월 1일 '준법진료(Work by the Book)'를 시작했다. 4개월가량 파업이 이어지자, 공공병원 의사 1000명 충원, 레지던트의 on-call 교대근무를 월간 6회로 제한, 급여 32~80% 인상, 평균 시급 49% 인상, 변방 지역 의사들을 위한 급여 인상, 의사수 부족 전문과 의사들에 보조금·장려금 지급, 20% 인상은 즉각 시행, 70% 인상은 향후 3년간 단계적 실시 등의 합의에 이르렀다.

캐나다 새스캐치원 주 의사들도 1962년 주정부의 의료보험 도입에 반대해 23일 동안 파업을 벌인 기록이 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의사를 불러오는 등의 조치로 대응했는데 결국 의사들이 의료보험에서 빠질 수 있도록 하고 진료보수를 올리는 등의 조건으로 합의하면서 파업을 끝냈다. 하지만 의료보험은 캐나다 전 지역으로 확대됨으로써 이 파업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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