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욱범 교수 "국내 임상엔 변화 없을 것"

지난해 말 전 세계 심장전문가들이 학수고대하던 미국 고혈압 가이드라인인 JNC 8차 보고서(Joint National Committee 8th)가 실체를 드러냈다. 무려 10년 만이다. 그사이 유럽은 이미 2회에 걸쳐 개정판을 내놨고, 캐나다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대한고혈압학회도 미국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다 결국 지난해 말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냈다.

국내 학계가 미국 가이드라인을 손꼽아 기다린 건 수많은 RCT, 코호트, 메타분석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가이드라인은 순전히 RCT만 참고했다. 때문에 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본지는 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위원회 위원인 이화의대 편욱범 교수(이대목동병원 순환기내과)를 만나 미국 가이드라인에 대한 국내 적용 여부와 남은 과제를 들어봤다.

▲ 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위원회 위원 편욱범 교수(이대목동병원)
60세 이상 환자
150/90mmHg로 상향조정
당뇨병·만성신질환 타깃혈압도
140/90mmHg로 수정

국내 가이드라인과 다른 점은
1차 약제서 베타차단제 제외
"국내 처방패턴 변화 적을 것"

앞으로 과제는
염분 위해성 관련 추가연구 필요
가정·활동혈압 기준 마련해야

우선 그는 10년 만의 미국 고혈압 가이드라인 발표에 대해 "한마디로 보수적으로 바뀌었다"고 짧게 평가했다. 보수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임상적 근거가 확실한 사항만 포함했다는 의미이다.

그는 "2004년 발표된 JNC7은 파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권고사항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기반되지 않았다"면서 "과거에는 메타분석, 관찰연구와 같은 간접적 자료도 포함했다면 이번에는 무작위·대조군 연구(RCT)와 같이 근거가 확실한 사항만 남기고 애매한 사항에 대해서는 환자 개개인의 성향과 임상의의 재량에 맡겼다"고 말했다.

이 말인즉 새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도 맞춤치료전략이 강조되고 있다는 의미이자 더불어 그만큼 임상의의 판단이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단 영역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가정혈압이나 활동혈압이 강조되는 추세지만 임상에서는 아직까지 진료실 혈압이 골드스탠다드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추가 자료가 필요한 실정이다.

치료목표는 60세 이상 고령 환자에서 150/90mmHg로 오히려 상향조정됐다. 무리하게 약을 써서 타깃혈압 140/90mmHg까지 낮춰도 그로 인한 혜택이 없다는 결론에서다. 마찬가지 이유로 당뇨병 또는 만성신질환(CKD)이 있는 환자의 타깃혈압은 140/90mmHg으로 바뀌었다.

치료제 선택에 있어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JNC7에서 이뇨제를 1차 약제로 권고한 데 비해 JNC8에서는 베타차단제를 제외한 나머지 4가지 약제(티아자이드계 이뇨제 or ACEI or ARB or CCB)를 1차 약제로 허용했다. 다만 베타차단제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 유럽, 한국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베타차단제를 1차 약제에 포함시킨 반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빠졌다.

이 같은 변화가 국내 고혈압 진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편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RCT가 없어서 베타차단제를 뺐다'고 주장하지만 'RCT가 없더라도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것이 유럽 측의 주장"이라면서 "미국 가이드라인에서도 베타차단제가 1차 약제에서만 빠진 것이어서 제약시장 판도나 처방 패턴과 같은 임상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다만 "당뇨병 또는 만성신질환 동반 환자에서 기존 타깃혈압(130/80mmHg)을 맞추기 위해 약제를 많이 사용해 왔는데 그런 부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고, 병용약제 개수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오는 4월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동양인 데이터이기 때문에 국내 환자에게 적용이 유용할 수는 있으나, 기존 대한고혈압학회(KSH) 가이드라인에 반하는 내용은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1차 약제에서도 베타차단제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돼 국내 가이드라인 개정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편 교수는 "JNC8 개정판이 오랜 기다림에 비해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보수적이라는 말은 적어도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사항만큼은 확실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면서 "KSH 가이드라인 머리말에서도 명시하고 있듯이 '각 진료의사가 환자 개개인에 대해 행하는 판단이 우선한다'는 원칙은 모든 가이드라인에서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결국 외국 가이드라인 발표에 대한 학계의 숙제는 한국인 데이터를 토대로 한 국내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충분한 데이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기존에 출시된 여러 가이드라인 중 가장 근거가 있고 국내 환자에게 받아들일 만한 것을 형편에 맞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올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는 어떠한 내용이 추가돼야 할까? 그는 고혈압 학계의 미해결 과제로 가장 먼저 '염분'을 꼽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염분섭취가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논란이 남아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염분섭취를 줄이기 위해 보건당국에서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혈압, 운동, 비만조절, 금연 등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염분 섭취량이 많은 국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는 가정혈압과 활동혈압의 임상적 활용을 꼽았다. 진료실 혈압과 비교해 진단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고 치료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고혈압 학회에서도 찬반논쟁이 있었던 내용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혈압변동성, 야간혈압, 신장신경차단술도 앞으로는 가이드라인에서 정리해줘야 할 항목이라고 말했다. 편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신장신경차단술의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아직 진행 중인 연구로 실패라고 단정짓기는 이르다"면서 "적응증을 잘못 설정했거나 연구 프로토콜상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약물치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시술 영역과 관련해 차후 가이드라인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J-curve 논란'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아직까지 데이터가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라 언급되지 않았지만 J-curve는 타깃혈압 설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인"이라면서 "한정된 자료로 인해 최근 학회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추가적인 데이터가 나오면 학계의 핫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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