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파악 위해 필요 VS 필수의료에 집중해도 모자라

지난 6월 정부가 4대 중증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비급여 항목의 일부를 선별급여라는 이름으로 건강보험 체계에 포함시킨다는 발표를 했다. 이후 12월 3일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 시키면서 선별급여 적용 근거를 마련했다.

선별급여란 비용 대비 치료 효과는 낮지만 환자부담이 큰 고가 의료, 임상근거 부족으로 경제성 검증이 어려운 최신 의료 등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제도다. 환자는 부담이 줄고, 정부는 가격 통제가 가능해져 병원이 비용을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선별급여 대상항목으로 로봇 수술, 캡슐 내시경, 초음파 절삭기, 유방재건술 등이 포함될 예정으로 보인다.

급여화 할 것도 많은데 선별급여라니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선별급여 결정에 몇 가지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있다고 의구심을 표현한다. 정부가 급여와 비급여라는 구조를 깨뜨리는 선별급여 도입을 토론회나 공청회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국무회의에서 시형령을 통과 시킨 것에 대한 의혹이다.

선별급여가 건강보험 재정에 미칠 영향도 크고 또 의료계에 끼칠 파장도 적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선별급여를 해야 할 항목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에도 전립선암 로봇수술, 캡슐 내시경 등 필수 의료가 아닌 항목들에 보험 재정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내과 허대석 교수는 가정호흡기, 간병, 호스피스 등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절대적 항목임에도 급여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로봇수술, 캡슐내시경 등이 선별급여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가 필수 의료가 아닌 선택 의료에 너무나 많은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허 교수는 "선진국은 필수 의료 부분에 집중하고 나머지 부분은 환자가 알아서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즉 급여가 안 되는 비싼 진료를 원하면 환자가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다"며 "우리 정부는 돈이 없어 필수적인 부분에 대한 급여화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정부가급여와 비급여 등 의료 전체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로봇수술 등에 대한 선별급여가 아니라 필수 의료와 선택 의료가 무엇인지 구분하는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의료컨설팅 회사의 김 모 상무는 로봇수술이나 캡슐 내시경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영역까지 보험재정으로 커버해야 할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로봇이 없으면 수술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수술법일 뿐이다"라며 "필수의료가 아닌 필요에 의해 선택하는 초 고가검사나 수술법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보험재정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반드시 필요한 의료는 모든 국민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고가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은 환자는 그 비용을 환자가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별급여가 효과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비급여를 선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선별급여가 '피할 수 없는 차선책'이라 볼 수 있다며 3년 동안 회색지대를 두면서 비급여 치료의 효과를 가늠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2005년부터 보장성 강화를 위해 항목별로 급여를 추가 해 왔는데 실제로는 비급여의 증가로 인해 환자의 비용 지출이 줄지 않았다"며 "현재 의학적으로 필수적인 비급여와 그렇지 않은 비급여 등이 섞여 있어 이를 구분하기 불가능 한 상태"라고 말했다.

결국 비급여에 대한 파악을 하고 이를 필수와 비필수로 구분하고 이후 급여와 비급여로 구분하기 위해 선별급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간보험사에겐 꿩 먹고 알 먹고?

이번 선별급여가 민간보험사에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할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우리나라의 실손보험 영역은 지난 5년 동안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더 이상 나아갈 곳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숨통을 터줬다는 주장이다.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민간보험사는 그동안 비급여의 심사 평가 및 가격 편차 때문에 곤란을 겪어 왔는데 정부가 알아서 가격을 표준화 해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됐다"며 "선별급여로 건강보험의 부분 부담으로 민간보험사의 보험 지급액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목소리를 높혔다.

또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통과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민간보험사나 금융감독원 등의 로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보장성 강화에는 관심이 없고 민간보험으로 보장이 안 되는 부분을 채우려 한다는 게 정 정책위원장의 주장이다.

선별급여 항목 중 효과가 없는 치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3년마다 평가해 비용 대비 효과가 입증되면 급여항목으로 들어오는데 그렇지 않은 항목에 대해서는 처리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정 정책위원장은 "선별급여 항목 중 효과가 없을 때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본인부담률을 높일지, 가격을 조정할지, 퇴출시킬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김윤 교수도 "효과에 대한 평가를 신약처럼 효과분석으로 할 것인지, 전문가 판단에 따를 것인지, 제3의 방법을 찾을 것인지 등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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