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논란만 더 확대

자동차보험 심사 위탁을 맡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시행 100일 이후면 잘 정착돼 의료계 불만이 최소화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최근의 모습은 정착은 커녕 의료계의 불만만 더욱 가중되는 모양새다.

우선 시간이 지체되는 가장 큰 원인인 '사고접수번호'는 가장 큰 골칫덩어리다.

심평원에서는 20여개 보험사가 9~23자리까지 제각기 다른 '사고접수번호' 운영체계를 사용하고 있어 청구시 가장 많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심평원은 제도 시행 초기부터 이 점을 문제로 지목하면서, 보험업계와 국토해양부 등과 협의해 개선안을 마련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세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오류률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A병원의 심사간호사는 “심평원 계획처럼 사고접수번호나 지급보증번호는 보험사마다 달라 통일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그 전에 심평원의 전산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병원 측에서 기재를 착오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확대해석이며, 사실은 전산시스템으로 인한 문제가 더 잦다는 것이다.

또한 “심평원의 반송기준도 상당히 불명확하다”면서 “영문과 숫자 조합이 있는 접수번호는 아예 오류로 걸리면서 작성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고, 또 한 두개의 오타에도 수정하는 과정 없이 무조건 반송되면서 행정적 낭비가 큰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보험사는 이미 청구했다고 관여하지 않고 심평원은 작은 오류도 반송해버리는 등 병원만 중간에서 난해하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질문과 건의에 대한 심평원의 입장은 가관이다.

심사실 관계자는 처음 이 간호사의 불만에 대해 "영문과 숫자 조합 모두 기입이 가능하다. 기입이 아예 안 된다는 것은 오해”라고 답변했다가, “다시 담당부서에서 확인해보니 시스템의 오류가 맞는 것 같다. 담당자가 아니라 잘 몰랐다”며 “오류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본 후 개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오류 발생시 행정적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오류가 나면 반송하는 것이 당연하다. 병원에서 좀 더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는 데 그쳤다.

심사에 대한 지나친 삭감 등으로 병원에서 이의 신청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 이에 대해서도 많은 불만이 잇따랐다.

일단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심사통보 후 10일 이내로 매우 짧아서 아예 구제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고, 또 이의제기를 하더라도 기각 결정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서 병원에서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의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행정적인 낭비라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자보환자가 많은 병원일수록 영세한 편이라서 이의제기를 따로 할 인력도 시간도 없지만, 보험사에서 심평원에 이의제기를 하는 파트를 따로 마련해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의제기시 보험사가 보다 유리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많았던 'MRI·CT 인정 횟수'도 여전히 의료계의 불만이 들끓는 부분이다. 실제 심평원에서 자보 심사를 위탁한 후 영상검사 삭감이 30%에 달하고 있다.

지난 7월 뒷자석 탑승 중 후미추돌을 당한 뇌진탕 환자에 대해 CT를 찍고 청구하자 심평원은 “두부외상이 없고 의식손실이 없으며, 단순두통 환자로 경과관찰 없이 당일 촬영은 부적절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병원은 “자동차 사고가 단순 질병과 달리 후유증이 크고, 당장에는 표면적으로 확진할 수 없어 영상검사를 해봐야 하는데, 지나치게 건강보험 방식으로 삭감을 진행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심평원 자보센터는 완강했다.

심사권이 위탁된 것도 이같은 관행적인 과잉검사 때문인데, 아무 이유 없이 영상을 찍으면 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 센터 관계자는 “이를 그대로 다 받아들여준다면 지난 50년 자보에서 잘못했던 것을 그대로 가져가자는 것과 다름없다”며 원칙대로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심평원에서는 오히려 너무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서 보험사들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보센터 관계자는 “보험사에서는 더 '삭감하라'고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는 '보험사 편을 드느라 대부분 삭감'한다고 주장하는 사이에 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이 둘의 입장을 모두 수용하지 않고 기준대로, 원칙대로, 중립을 지켜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보험사들은 심평원 심사에 대해 “치료기간이 경과한 부분을 모두 삭감해달라” “경과 관찰 없이 사고 당일 시행한 CT는 모두 삭감하라” “통증호소만으로 시행된 고가의 특수검사촬영은 과잉진료” 등 심사 위탁 전 자신들이 인정해줬던 부분까지도 모두 심평원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이의제기를 신청하는 등 강화된 심사와 삭감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심평원은 “자보심사 이관 100일이 지난 10월중순부터는 보다 원만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두달 가량 500여건에 불과했던 이의제기가 현재 7000여건이 넘어섰고, 여전히 불만섞인 전화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면서 “올해 안으로 심평원에서는 의학적 근거를 담은 자보 기준을 만들어 논란을 잠재우고 동시에 제도가 잘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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