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인문학을 만나다-한 희 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무너진 이미지 바로 세우고 자랑스러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새 역사를 제시하자."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고려의대는 시끌시끌했다. 지난해 말 새로운 학장을 맞이하고 이달 의학관 준공과 함께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인문학교육 강화 등 의대교육 강화를 전면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한희철 고려대 의과대학장 겸 의학전문대학원장을 만나 2학기부터 한층 강화된 교육 방식에 대해 들어봤다.


외부 전문가로부터 다양한 이야기 듣는다
 
우선 눈에 띈 것은 인문학 교육 강화를 위한 외부전문가 외래교수 위촉이다. 고려의대는 지난 6월 의학이 아닌 타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의학교육학교실 외래교수를 위촉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이사, 한국언론재단 이경형 NIE 특임강사, 고려대 사회교육원 이상태 문인화강사, 법무법인 로앰 이동필 대표변호사,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겸 예술감독, 서울디자인센터 손혜원 이사 등 6명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학생들이 접해봐야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추진됐다. 한 학장이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던 계획으로, 2학기부터는 이들을 활용한 별도 특강을 진행한다. 아예 일주일에 한시간 정도는 모든 정규수업을 빼고 "생각의 향기"(가칭)라는 고유의 특강시간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한 학장은 "다른 사람들, 특히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학생들이 접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며 "비록 의대 수업이 빡빡하고 학점과 연관이 없으면 참여율이 저조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서 1학기에 시범적으로 대사성질환을 연구하는 소아과 전문의를 초청, 진로를 선택한 이유와 그동안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학생들로부터 질문공세와 이메일 연락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욱 강한 추진의지를 느꼈다.

한 학장은 "기회가 없어서 그럴 뿐, 다양한 자극을 주면 의대생들도 의학공부 외에도 끊임없는 자기개발 기회가 된다"며 "마냥 책 속을 파고드는 것보다, 끊임없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려주고 동기부여하게 되는 것이 곧 인문학 교육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인문학 교육 확대…통합교육 정착
 
인문학 교육은 환자 진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 학장은 "환자 진료는 모든 것과 연관이 있다"고 전제하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환자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고, 건축을 배우면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병원을 디자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자극하면, 한층 생각이 넓은 의사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는 간호사, 의료기사 등 다양한 직제 속에서 활동하는 만큼, 다양한 교육을 필요로 한다. 한 학장은 "지금 교육방식으로는 나의 생각, 의대생의 생각, 의대교수의 생각만으로 한정돼 있다"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다른 사람 생각에 향기를 맡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학기부터는 의철학, 생명윤리 등을 연구해온 인문학교실 전임교원을 새로 맞이한다. 5회째 맞이하는 의료인문학 심포지엄도 한층 강화한다.
 
물론 인문학 교육이 주된 교육은 아니다. 의학교육도 전통적인 의대교육 방식에서 벗어난 통합교육 방식으로 변화를 꾀한다. 그동안은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에 이르기까지 과목별로 배워왔지만, 심장이면 심장 등 단일 질환으로 심장에 필요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이 한데 모이는 식의 통합교육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한 학장은 "새롭게 추진하다보니 아무래도 정착을 위해 각종 반발과 시행착오가 뒤따르고 있다"며 "무사히 잘 정착시켜 나가는 것과 동시, 진행 이후 사후관리를 위해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각 질환 책임교수의 역할을 계속 주지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통합교수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며, 2014년 교과과정 전면 개편까지 끊임없이 교수들과 소통하면서 통합교육을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다.
 
의대 교육 새 이정표 제시

교육과 함께 더욱 신경쓰는 것은 윤리 의식 강화다. 한 학장은 "여러가지 사건을 지켜보며 학생들의 윤리의식 문제를 놓고, 학교가 무조건 학생들의 탓이라고 하기엔 어렵다고 느꼈다"며 "책임이 무거워지면서 우리가 했던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한 학장은 또 "아무래도 의대가 다른 대학보다 윤리 기준이 높아야 하지만, 의대 교육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고대가 앞장서서 윤리 교육을 강화하면서 윤리강령이나 서약 등 여러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외국의 한 대학은 학생들이 유급하면 학생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책임으로 본다. 개별 상담을 통해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원래 성적으로 돌려놓기 위해 돕는다.
 
이처럼 학생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고려의대가 될 것을 희망하면서 "학생 개발실"을 두고 의대생 누구나 고민상담을 할 수 있도록 개설한다. 상담실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아 거리감을 조성하지 않았으며, 전문상담사를 통해 고민있는 학생을 세심하게 배려할 계획이다. 자칫 행동이 흐트러지기 쉬운 예과부터 교수책임제를 강화, 한 학생도 낙오되지 않도록 신경쓸 계획도 세웠다.
 
한 학장은 "학생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건 아닌지, 학습에 무슨 일이 있는지, 심각한 정신질환이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상담하고 조언해주면서 지도교수 외에 개별 멘토 교수 시스템을 병행해 갈 것"이라며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을 하고, 그동안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교육까지 진행하면서 의대 교육의 새 이정표를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했던가. 한 학장의 계획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고려의대로 안좋은 소식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젠 고려의대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검색해도 부끄럽지 않도록 만들어 나가겠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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