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재활, 이제 옵션 아닌 필수"
김철 인제의대백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길은 처음부터 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된다.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한 때 유명했던 한 드라마의 대사다. 이 대사에 꼭 들어맞는 사람이 바로 인제대 상계백병원 재활의학과 김철 교수다.

우리나라에 심장재활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때인 2000년부터 심장재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병원에 접목하기 시작해 오늘 학회를 결성하기에까지 이르게 한 그야말로 심장재활의 길을 낸 주인공이다.

심장재활을 하는 의사 중심으로 지난 해 6월 대한심장호흡재활의학회를 결정할 정도로 이 분야는 성장했고, 이 학회의 이사장이 김 교수다.

스승 덕분에 심장재활 시작
심장재활이란 심근경색증 등 심장병 발생 이후 침상 안정을 하도록 두는 게 아니라 급성기가 지난 후 운동에 참여하도록 해 재발과 빠른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심장병 환자가 운동을 하지 않고 누워 있으면 혈관 재협착이나 심근경색 재발 등으로 상태가 더 나빠진다고 알려졌다.

미국은 80년대 후반부터 전국 병원이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을 정도로 활성화 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삼성의료원이 97년도에 시작했을 정도로 아직은 초기 단계다.

심장병 발생 이후 운동을 하는 건 과연 안전할까? 의혹을 품는 기자에게 김 교수는 상계백병원 심장재활 클리닉에서 1만 시간 모니터링 중 심장정지 등 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며 의심을 일축했다.

심장재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스승인 신정순 교수 덕분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재활의학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신 교수는 재활의학회장과 세브란스병원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을 당시 신 교수님이 우리나라 재활의학이 발전하려면 심장재활과 호흡재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후 관심을 갖게 됐고, 상계백병원에 근무하면서 심장재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 교수는 심장재활의 첫걸음을 떼고, 또 발전시킬 수 있었던 힘은 같이 근무하는 심장내과 의사들과 병원 이사장 덕분이라고 했다. 상계백병원에서 심장재활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동료들이 자신을 믿고 환자를 보내 줬고, 백난환 이사장은 심장재활을 위한 공간을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심장재활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재활의학과로 보낸다는 것은 단단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고 동료 의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심장재활, 9개 권역별 심내혈관센터에서도 시작
현재 심장재활을 하는 병원은 백병원을 비롯한 삼성서울병원, 아산병원, 건국대병원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심장재활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직 국내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안타까워했다.

활성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역시 급여 문제. 심장재활을 하려면 필요한 시설, 장비, 인력 등에 투자를 해야 하지만 심장재활은 현재 법정 비급여 상태다. 병원들이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심장재활을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교수는 지난 해 6월 심장호흡재활의학회의 수장을 맡았다. 학회의 이사장으로 심장내과 교수 등이 중심이 돼 만든 대한심폐재활협회와의 원만한 관계도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김 교수는 "심폐재활협회와 함께 하면 좋겠지만 사정상 우리 학회와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며 "지금은 학회를 발전시켜나가면서 필요하면 그때 함께 하는 방향으로 정했다"라며 말을 아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김 교수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환자들이 제대로 심장재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심장재활을 하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환자 대부분이 40~50대지만 환자들은 퇴원한 후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게다가 집과 가까운 병원으로 의뢰하려고 해도 심장재활을 하는 병원이 없다.

국가의 심장병 관련 통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응급실에 얼마나 빨리 치료했느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심근경색 재발률과 재발 방지를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자료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심근경색은 관리하지 않으면 재발하는 병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 부분에 대한 통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심장재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기분 좋은 움직임도 시작됐다고 한다. 국가가 심장재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9개 권역별 심내혈관센터에서 심장재활을 필수적으로 하게 한 것이 그것이다.

심장재활 필요성 홍보에 노력
김 교수의 올해 꿈은 법정비급여 상태인 심장재활을 급여로 인정받는 것과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다. 급여로 인정되면 많은 병원이 심장재활에 참여할 것이고, 더불어 환자들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심장내과 의사나 호흡기 내과 의사들이 심장재활의 필요성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고, 학술대회와 워크숍을 통해 심장재활의 외연을 넓히는 데 노력할 것이다"

이제 심장재활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는 이 교수의 목소리에서 심장재활의 밝은 내일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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