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학계, 심부전 바이오마커로 '음성' 주목
국내외 연구팀, 음성 변화로 심부전 악화 조기 탐지 가능성 연구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음성으로 심부전 악화를 조기에 알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바이오마커로서 음성은 소리 강약, 고저, 성대 움직임 등 미묘한 변화를 통해 신체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다. 음성 변화는 후두질환 환자에게서 가장 흔히 보이는 증상이다. 

그런데 최근 심장학계가 심부전 악화를 미리 감지하는 바이오마커로 음성을 주목한다. 심부전 환자의 급성 악화를 모니터링하는 방법들은 몸에 바늘을 대는 등 침습적이라 반복 측정이 어렵지만, 음성은 비침습적이고 환자 스스로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어 악화 발견에 유용하다는 평가다. 

본지는 2024년 갑진년(甲辰年)을 맞아 급성 심부전을 조기에 탐지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로서 음성을 주목하는 이유와 현재 연구 동향을 조명했다. 

<1> "대한민국만세" 말하니 심부전 위험 경고가?

<2> 음성 분석해 심부전 예측하는 AI 앱 주목

<3> "음성 분석 AI 앱으로 집에서 심부전 관리 가능해질 것"

심부전, 입원율·재입원율·사망률 높은 심혈관질환

심부전은 입원율과 재입원율 그리고 사망률이 높고 사회경제적 부담도 큰 대표적 심혈관질환이다. 

대한심부전학회가 국내 심부전 현황 데이터를 정리한 '2022 심부전 팩트시트'에 따르면, 심부전 환자의 입원율은 모든 원인으로 인한 입원이 2002년 27.4%에서 2020년 45.1%로, 심부전이 주상병명 및 부상병명에 포함된 입원이 12.8%에서 25.1%로 늘었다. 

게다가 심부전 환자의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은 2002년 4.9%에서 2020년 5.8%로 증가했다.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 중 전체 사망률은 2002년 6.5%에서 2020년 16.0%로,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률은 각 1.0%에서 5.3%로 증가세였다. 

팩트시트에서 보듯 심부전 환자는 퇴원 후에도 재입원을 반복할 뿐만 아니라 사망률도 높다. 이를 막기 위해 진료지침 기반 치료를 진행하면서 환자를 모니터링해 심부전 악화를 조기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심부전 악화를 모니터링하는 방법은 대다수가 침습적이다. 또 환자는 모니터링을 위해 여러번 병원에 내원해야 하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등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비침습적이고 안전하면서 반복적으로 정확하게 건강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심부전 바이오마커를 찾는 연구가 학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음성이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심부전 바이오마커로 왜 '음성' 주목하나?

심부전 바이오마커로 음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설은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음성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추측되면서 세워졌다. 

말할 때 조음과정을 보면 폐 안에 있던 공기가 성대를 거친 다음 구강을 통해 소리가 나온다. 심부전은 이 과정에서 공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폐를 주목한다.  

심부전은 심장이 더 이상 효율적인 순환 기능을 유지할 수 없어 심부전 증상이 발생한다. 심부전 환자는 증상이 악화되면 폐를 포함한 전신에 체액 정체 현상이 나타난다. 이에 심부전 환자 신체검사 시 흉부타진을 통해 폐 윗부분 청진 시 소리가 잘 들리지만 아랫부분은 체액이 고여 수포음이 들린다. 

이 같은 체액과다는 폐, 후두, 성대 등에 부종을 유발해 심부전 환자의 음성 특징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장구나 북에 물이 차지 않았을 때 두드리면 공명감이 풍부한 좋은 소리가 나지만, 물이 차면 청명한 소리가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또 성대 주름은 심부전에 의한 부종에 민감한 얇은 조직층으로 구성돼, 증상이 악화되면 음성이 달라질 수 있다.

국내 연구팀, 음성으로 급성 심부전 85% 정확도 탐지

이런 가설에 따라 학계에서는 심부전 악화를 미리 탐지하는 바이오마커로 음성이 유용한지 검증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가 시작된 시기는 2010년대 후반으로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긍정적 근거가 계속 쌓이고 있다. 

2017년 미국 연구팀은 급성 비보상성 심부전 환자 10명을 대상으로 매일 특정 모음과 구절을 녹음한 음성을 분석, 심부전 바이오마커로 음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J Acoust Soc Am 2017;142(4):EL401). 

2020년 이스라엘 연구팀은 음성 변화가 울혈성 심부전 환자의 입원 및 사망과 연관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J Am Heart Assoc 2020;9(7):e013359). 

연구는 이스라엘 콜센터에 등록된 울혈성 심부전을 포함한 만성질환 환자 1만 583명의 음성 데이터를 토대로 음성 특징을 추출했다. 이어 울혈성 심부전이 아닌 환자와 울혈성 심부전 환자 코호트를 통해 음성 특징을 확인했고, 검증 과정에서 음성 변화가 심부전 악화와 독립적으로 연관됐음을 입증했다. 

국내 연구팀도 음성이 급성 비보상성 심부전을 미리 탐지하는 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음을 규명했다. 이 연구는 지난해 열린 미국심장협회 연례학술대회(AHA 2023)에서 공개됐다. 

고대 구로병원 김응주·이지은 교수(순환기내과) 연구팀은 급성 비보상성 심부전 환자의 음성 특징이 입원했을 때와 퇴원할 때 차이가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는 호흡기 감염, 패혈증, 폐/성대질환,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혈청 크레아티닌 3mg/dL 초과 등에 해당하는 환자를 제외한 급성 비보상성 심부전 입원환자 100명이 등록됐다. 

연구팀은 환자에게 입원했을 때와 퇴원할 때 한국어 모음 다섯개(ㅏ/ㅔ/ㅣ/ㅗ/ㅜ)를 각각 3초간 발음하고 '대한민국만세' 문장을 다섯 번 말하도록 했다. 

녹음한 88명의 음성 데이터를 딥러닝 모델에 학습시키고 급성 심부전을 조기에 탐지할 수 있는지 12명의 음성으로 검증했다. 그 결과, 85%의 정확도로 심부전이 계속되는 환자와 회복된 환자를 분류할 수 있었다. 

김응주 교수는 "인공지능(AI)은 사람이 듣고 분석하지 못하는 것도 분석할 수 있다. AI 딥러닝으로 심부전 환자의 악화 또는 안정 시 음성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번 개념 증명 연구를 진행했다"며 "보수적으로 검증했을 때 정확도가 85%였다. 분석하는 환자 음성 데이터가 많아진다면 정확도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에서는 안정형 심부전 환자의 음성 특징을 확인해 시간 흐름에 따른 음성 변화와 건강 상태의 연관성을 평가하는 VENTURE 선행 종단연구가 시작됐다(PLoS One 2023;18(4):e0283052). 

연구는 안정형 심부전 환자가 가정에서 연구팀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에 음성을 녹음하고, 음성 샘플을 토대로 연구팀이 음성 변화와 건강 상태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이와 함께 심부전 표준관리와 체중, 혈압 등 측정과 비교해 음성 변화 모니터링이 건강 관리에 유용한지 평가한다.

현재 심부전 바이오마커로 음성을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연구가 대다수이지만, 가능성이 제기되자 발 빠르게 움직인 산업계는 AI로 심부전 환자의 음성을 분석해 악화를 조기 감지하는 앱을 개발하고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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