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암요법연구회 강진형 회장

[메디칼업저버 주윤지 기자] 치열한 국제 경쟁으로 잠시 주춤한 국내 임상연구의 수준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이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로 구성된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제약사가 후원하는 연구에만 집중하기보다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재정비해 국내 임상시험 경쟁력과 신약 개발 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본지는 우리나라 임상시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대한항암요법연구회 강진형 회장(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을 만나 국내에서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을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요소에 대해 알아봤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강진형 회장(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 의뢰자주도 vs 연구자주도 임상시험 차이점은?
임상시험은 크게 '의뢰자주도 임상(sponsor-initiated clinical trial)'과 '연구자주도 임상(investigator-initiated clinical trial)'으로 나뉜다. 

의뢰자주도 임상은 제약사가 주도한다. 제약사는 자체 개발한 신약 혹은 의료기기의 효과와 안전성을 평가하며 회사의 이익을 위한 기대 목표에 따라 움직인다.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은 제약사가 아닌 의사가 주도하는 연구이며, 주로 제약사가 진행하지 않는 연구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제약사는 자사의 치료제가 경쟁사의 치료제에 비열등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면 연구를 진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의사는 이와 달리 어떠한 치료제가 생존기간을 포함해 임상결과를 개선하는지 알아야 하므로 연구자주도 임상을 진행한다. 

또한 시판된 약물이 비용-효과(cost-effectiveness) 측면에서 우수한지, 제약사가 영리 추구 목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 희귀난치성 질환에서 치료제의 효과를 평가하는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해 연구자주도 임상은 필요하다. 

- 변하는 의료 환경에서 연구자주도 임상의 역할은.
우리나라의 짧은 임상시험 역사의 초반에는 자체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의 치료제를 수입하는 데 집중했다. 

외국 제약사의 약물을 수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의뢰자주도 임상시험이 진행됐고, 이를 위해서 빠른 시간 내 임상시험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됐다.  

최근 국내 임상시험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높게 평가된 이유는 연구자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다는 점, 연구인력(연구자, 연구간호사, 코디네이터 등)의 업무처리 능력 등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국적 제약사와 다국적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 대부분의 연구를 주도해왔다. 즉 우리나라 정부나 정부관련기관이 항암제 임상연구에 대규모로 집중 투자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다국적 제약사는 임상시험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어 지난 5년 동안 국내 의뢰자주도 임상시험 수가 줄었다. 감소한 만큼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으로 메워야 하는 데 아직 그 핵심 요소가 마련되지 않았다. 

-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에 필요한 핵심 3가지는.
미국에서 의뢰자주도 vs 연구자주도 임상시험 비율이 약 60:40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90:10으로 추정된다. 균형을 잡으려면 세 가지 핵심 요소인 재원, 규정, 인프라구축이 마련돼야 한다. 

첫째, 국내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의 문제점은 재원을 담당하는 공공 주최가 없다는 것이다. 1~2000만원이 아닌 수십억원을 사비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연구를 주도할 의사는 없다. 

둘째,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의 규제를 담당하는 주최도 없다. 만약 의사가 사비로 연구를 지원해도 약물을 통관하고 수입하는 방법, 약물 부작용에 대한 치료비 보상 등 여러가지 법령과 규정에 따른 규제가 매우 혼란스럽다. 

셋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연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자본, 재정지원, 연구참여자, 정보시스템, 기관 협력 등 이를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관리하는 주최가 없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대한항암요법연구회 강진형 회장(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역할과 한계는.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장으로서 연구자주도 임상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고 임상연구를 위한 재원 조달과 투명한 관리를 위해 2017년 12월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또한 규제기관들과 대화와 협력, 운영 데이터 관리, 모니터링, 임상시험 기관, 인력 강화를 구축해서 임상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했다. 

이런 방식으로 암을 연구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이 모여 항암요법 임상시험을 지속 진행하고 있지만, 민간의 힘으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정부의 역할은?
공익적 임상연구의 필요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누가 지원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예시로 미국에서는 30~40년 전에 연구자 그룹이 설립됐다. 연구자 그룹은 여러 미국 병원들이 연합해 만들어졌으며 미국국립보건원(NIH)과 같은 정부기관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가지 연구 주제가 선정되면 국가지원으로 연구자주도 임상을 진행, 제약사도 규제에 따라 약물을 기부하는 등 연구자주도 연구에 참여할 방법이 열려 있다.

핵심은 정부의 투자인데, 결국 보건복지부 등 정책 리더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재원 마련과 주최 선정으로 정리한다면 기획은 복지부가, 재원 투자는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 등의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다. 

-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은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다. 한 다국적 제약사의 임원이 우리나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비용이 7%, 매출은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세상 어디에도 이익 없이 임상시험만 하려고 하는 제약사는 없다. 

또한 중국에서 임상시험 환경이 개선되고 있고 인구 측면에서도 다국적 제약사는 우리나라보다 중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매년 폐암 환자 발생 수가 2만 5000명, 중국은 75만 명임을 비교해볼 때 다국적 제약사의 선택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제 제약사가 설계한 연구계획서를 시행하는 것보다 직접 나서서, 힘을 들여서 자기만의 계획서를 만들고 데이터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성취감도 중요하지만, 이런 데이터가 공익적 치료 가이드라인에 기여하는 게 그 목적이다. 

연구자주도 임상시험에 관심과 생각이 있지만 재원이 없어서 진행하지 못하는 연구자가 많은 열악한 환경에서 정부는 규제와 재원 조달에 관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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