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물 예측불허 시대…의약품 안전관리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메디칼업저버 양영구·주윤지 기자] 암을 유발한다는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예상치도 못하게 의약품에서 검출되면서 의약품 안전관리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약품 화학식 구조에 따라 NDMA가 불규칙적으로 검출될 수 있는 만큼 기존과 다른 안전관리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과거에는 규정된 기준에 따라 불순물을 관리하면 규제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시장에서 판매하는 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정부와 업계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의약품 화학식 구조와 연관된 유해물질이 발견되기 전에 미리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년기획-① 커지는 의약품 안전관리 강화 필요성>
<신년기획-② 규제당국마다 다른 관리법...국내 기준 마련해야>

발사르탄부터 메트포르민까지…안전관리 강화 필요성↑

시작은 2018년 7월 발생한 항고혈압제 성분 발사르탄이다. 중국 제지앙화하이가 제조한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에서 NDMA가 검출된 이후 1년 만인 2019년 9월 항궤양제 성분 라니티딘과 니자티딘으로 이어졌다. 전례가 없었던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발사르탄과 라니티딘·니자티딘 등에서 검출된 NDMA는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데서 발생했다. 우선 발사르탄은 제조공정에서 기인한다. 업계에 따르면 발사르탄은 비페닐테트라졸이라는 중간체 제조 과정 중 고온에서 디메틸포름아미드라는 용매를 녹이면서 디메틸아민이 떨어져나와 아질산염과 반응해 NDMA가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달리 라니티딘은 분자구조 자체의 원인이 유력하다. 업계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모두 라니티딘에 포함된 아질산염과 디메틸아민기가 특정 조건에서 자체적으로 분해·결합해 생성되거나 제조과정 중 아질산염이 비의도적으로 혼입돼 생성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즉 발사르탄과 라니티딘은 불안정한 분자구조가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만히 둬도 NDMA가 검출될 우려가 있는, '고의성'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라니티딘 사태 이후 제약업계 초미의 관심사는 다른 의약품의 NDMA 검출 가능성이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12월 항당뇨병제 메트포르민에 대한 NDMA 검사에 착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FDA는 메트포르민에 NDMA 수치를 확인하고 향후 필요하다면 회수조치를 권고할 예정이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질 조짐을 보이면서 앞으로는 의약품 안전관리의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규제당국과 제약업계 나름대로 의약품에서 의도적이든 예상하지 못했든 불순물 검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FDA가 메트포르민에 대한 NDMA 검사를 착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당뇨병학회는 "작년 일부 고혈압약 사태가 발생했을 때 종합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미온적인 대응에 그치고 있다"며 "싱가포르에서 문제가 된 회사의 원료가 우리나라에 수입됐는지 공식적인 발표도 없다. 제약사의 자율점검을 지켜보는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관계 기관이 직접 조사한다"면서 "FDA는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 리스트를 실시간으로 홈페이지에 공지해 왔다. 식약처에서 직접 조사를 통해 국민의 우려를 해소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제약업계, 규제 당국 불신 여전

제약업계는 규제당국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구운 고기와 같은 일반적인 음식을 섭취했을 때 노출되는 양과 비슷하다는 FDA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최대 용량으로 70년간 매일 복용했을 때'라는 가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시험법마다 NDMA가 다르게 검출되는 것을 두고 신뢰도를 의심하고 있다.

식약처는 라니티딘 판매중단 조치를 발표하며 NDMA의 잠정 기준치를 1일 96ng 이하로 제시했다. 특정 의약품을 최대용량으로 70년간 매일 복용할 때 10만명 중 1명꼴로 암이 발생할 가능성을 계산해 보니, NDMA의 경우 1일 96ng이 나왔다는 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이를 두고 제약업계는 "라니티딘을 최대용량으로 매일 70년간 복용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라며 "의료기관에서는 길어야 일주일 처방을 내리는데, 식약처가 너무 앞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제약업계는 NDMA 검사법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제품마다 시험법이 다른데다, 같은 시험법으로 같은 제품을 검사해도 검출되는 NDMA 양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민간 연구소인 밸리슈어는 GC-MS 검사법을 이용한 결과, 라니티딘 1정당 최대 327만ng이 검출됐다. 이는 1일 허용기준치의 2만 6000배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식약처가 공식 권장한 LC-MS/MS 검사법을 이용해 검사한 결과 최대 53.5ppm이 검출됐다. 이를 1일 허용기준치로 환산하면 334배에 달한다. 

LC-MS/MS 검사법을 이용해도 다른 검출 결과가 도출되는 점은 업계의 원성을 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약처의 권장 검사법을 신뢰하지 못하는 시각이 업계에 팽배하다"며 "정부는 LC-MS/MS 검사법을 권장하고 있고, 앞으로 허가에 앞서 자체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기준에 맞춰 대비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의약품 안전관리가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정한다. A제약사 개발팀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에서 예측하지 못한 심각한 질병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의약품 안전관리는 절대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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