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영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미드 보며 생긴 호기심 우연히 법의학 강의 들으며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아주 오래전 "그녀의 자전거가 내 안에 들어왔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광고 카피처럼 서울의대 김문영 교수(법의학교실)에게는 법의학이 그랬던 것 같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다. 그런데 'CSI 과학수사대'라는 미국 드라마 덕분에 국내에서 법의학이 한창 인기를 누릴 당시 호기심에 이끌려 몇몇 친구와 함께 법대에서 진행하는 법의학 강의를 들었다. 그것이 김 교수가 법의학자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김문영 교수ⓒ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다른 친구들이 법의학 강의 내용에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얼굴을 찌푸렸지만, 김 교수는 "아~신기하다" 또는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등 자연스럽게 강의 내용을 받아들였다.

호기심이 관심으로, 관심이 책임감으로 

김 교수는 "법의학이란 학문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스으윽 다가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며 "호기심이 관심으로 바뀌었고, 갑자기 괜한 책임감까지 들었다"고 웃었다. 
김 교수가 느낀 괜한 책임감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강의를 들으면서, 삶을 마감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법의학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니 나라도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의학 강의를 듣기 전에는 의사가 될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의사란 직업은 인격적으로 훌륭해야 하고, 책임감도 무거운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그 생각이 법의학 강의 한 번에 흔들려버린 것이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공감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법의학자라는 꿈을 갖게 된 후 김 교수는 삶의 궤도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화의대 의전원에 진학했고, 실력을 갖춘 법의학자가 되려고 병리학도 전공했다. 의전원을 다니는 내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학교를 다녔고, 교수들도 어려워한다는 조직학 슬라이드 수업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수강했다고 한다. 아마도 법의학은 뒤늦게 찾아온 천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부검을 집도한 때는 2017년 촉탁의 때. 하지만 특별한 기억은 없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검 현장은 프로들이 바삐 움직이는 현장인 데다 처음 하는 부검이라는 부담감에 감정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

좋은 법의학자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의사"

법의학자가 된 지 4년. 김 교수에게 "좋은 법의학자란"이라는 조금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그가 명쾌하게 내놓은 답변은 "해야 할 얘기와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구분할 수 있는 법의학자"였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김 교수는 "법의학자는 심증과 물증을 구분하고, 얘기하면 안 되는 것에는 침묵하는 자제력이 필요하다"며 "객관성을 흐릴 수 있는 말을 하면 안 되고, 법의학자가 모든 것을 아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법의학에 강한 애정과 애착을 보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는 법의학을 꺼린다. 오히려 김 교수 같은 의사가 매우 드물다는 게 더 맞는 얘기일 것이다. 

현재 전국의 법의학자는 고작 60여 명. 미래도 밝지 않은 편이다. 현재 1년에 의대(의전원) 한 곳에, 한 학년에 1명 정도 법의학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법의학자를 지망하는 사람이 드물다.

김 교수는 "미국 등 외국도 법의학자가 모자라는 건 마찬가지"라며 "법의학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선택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시스템이나 여건 등을 개선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을 벼리듯 마음을 벼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

김 교수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의학이 좋고, 희소성 즉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부분도 법의학의 매력이라고 했다. 또 학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도 자신이 법의학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인터뷰 끝자락 김 교수는 "화요일, 수요일 부검을 진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칼을 벼리듯 마음을 벼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 "법의학자로서 타인의 죽음에 대해 궁금해 하고, 공감하고, 관심을 갖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죽음에 무뎌지지 않는 법의학자가 되고 싶다"라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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