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도입해 '사주경계'
우리나라는 '제한 항생제' 관리 전략에 주로 의존

항생제 내성 문제가 전 세계적인 위기로 다가오면서 현대 의술은 암흑기를 거치고 있다.한때 항생제로 모든 감염을 빠르게 치료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됐지만, 항생제 내성을 가진 세균이 늘면서 2050년에는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사망하는 전 세계 인구가 연간 1000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의학계와 제약계는 항생제 내성의 위협을 막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의학계는 항생제 내성 출현을 최대한 늦추는 예방적 전략에서, 제약계는 항생제 내성에 대처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서 답을 찾고 있다.[창간 17주년 특집①]21세기 대재앙 '항생제 내성' 인류를 구하라[창간 17주년 특집②]"최적 항생제 추천하는 'AI 비서' 곧 나옵니다"[창간 17주년 특집③]슈퍼박테리아 위세...한국 '방어선'이 위태롭다

항생제 사용 감시 위해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가동

의학계는 항생제 내성 문제를 극복하고자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Antibiotic Stewardship Program)'을 각 의료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항생제 스튜어드십이란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최적의 항생제를 적정한 용량으로 적정한 기간 동안 올바른 방법으로 투여해,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환자의 치료 효과를 높이는 관리 활동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항생제 내성을 줄이고 의료비용을 절감하며 의료 질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구체적인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은 △감염 전문가에 의한 항생제 사용승인 사전심사 △항생제 사용 감시 및 피드백 제공 △특정 항생제를 지정해 사용 제한 △의료진 및 환자 대상의 항생제 사용 교육 △항생제 사용 실태 분석 등으로 구성돼 있다. 

외국에서는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적용 후 긍정적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동부종합병원에서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도입 전(2009년 4~6월) 대비 도입 후(2010년 4~6월) 변화를 비교한 결과, 항생제 처방 비용이 2만 7919달러 감소했고 의약품 규정 1일 사용량(defined daily dose, DDD)은 1000명당 63.16DDD에서 38.59DDD로 40% 가까이 줄었다(Can J Hosp Pharm 2011;64(5):314-320).

2014년 미국감염질환학회 학술대회(IDWeek 2014)에서 발표된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적용 후 5년 분석 결과에 따르면, 30일 이내 재입원율은 프로그램을 통한 제안을 따르지 않은 의사의 소아 환자에서 3.5%였지만 제안을 따른 의사의 소아 환자에서는 0%였다. 평균 입원기간은 각각 82시간과 68시간으로, 프로그램 제안에 따라 항생제를 사용했을 때 입원기간이 줄었다. 

이와 같이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이 항생제 사용 감소 및 환자 예후에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쌓이면서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으로 항생제를 올바르게 처방해 환자가 질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항생제 관련 이상반응도 줄일 수 있다"며 2014년 모든 급성기병원에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내 도입률 92.6%…사전승인 필요한 '제한 항생제' 지정

국내에서도 많은 의료기관이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으로 부적합한 항생제 처방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을 전개하고 있다. 

국내 2, 3차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감염내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국내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015년 기준 설문조사에 응한 총 54곳(응답률 55.6%) 중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을 도입한 곳은 50곳(92.6%)이었다(Korean Med Sci 2016;31:1553-1559). 앞서 이뤄졌던 실태 조사 결과에서는 2006년 95.5%, 2012년 87.5%로 보고돼, 10여년간 유사한 도입률을 보였다(P=0.064). 

의료기관에서 같은 계열의 항생제 중 처방 가능한 항생제를 제한(formulary restriction)한 곳은 2006년 23.8%, 2012년 20%, 2015년 18%로 비슷했다(P=0.787).

이와 함께 응답한 전체 의료기관은 사용을 제한한 특정 항생제(제한 항생제) 처방 시 전산 시스템으로 감염 전문가의 사전 승인이 필요했다. 항생제 사용승인 사전심사 제도를 시행한 곳은 2006년 59.1%에서 2012년 85%로 증가한 데 이어 2015년 100%에 달했다(P<0.001).

사전승인이 필요한 제한 항생제는 이미페넴, 메로페넴, 도리페넴, 어타페넴 등 카바페넴 항생제 계열이 가장 많았고 이미페넴과 메로페넴은 모든 의료기관에서 항생제 사용승인 사전심사를 거쳐야 처방 가능했다. 아울러 반코마이신, 테이코플라닌 등의 글리코펩타이드 항생제 역시 98% 의료기관에서 감염 전문가의 사전 승인이 있어야만 처방할 수 있었다. 

조사를 진행한 한양의대 김봉영 교수(한양대병원 감염내과)는 "국내 대다수 의료기관은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진행 시 감염 전문가의 사전승인이 필요한 제한 항생제 관리 전략에 주로 의존하고 있었다"면서 "2015년에 이어 현재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 현황을 보기 위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제한 항생제 사용을 사전에 심사하면서 의료기관에서 부적절한 항생제 처방은 줄어든 것으로 보고된다. 경상대병원 중환자실에서 48시간 이상 기계 호흡기를 유지한 환자를 대상으로 항생제 사용승인 사전심사 제도 적용 후 항생제 사용량을 평가한 결과, 피페라실린/타조박탐을 제외한 세포탁심, 세프타지딤, 세포페라존/설박탐, 퀴놀론 등의 대부분 항생제 사용량이 유의미하게 줄었다(P<0.05)(Korean J Crit Care Med 2008;23:25-29).

"현재 인력만으로 프로그램 운영 한계"

그러나 국내 대다수 의료기관이 제한 항생제 지정 및 사전승인 제도에만 의존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제한 항생제 사용은 조절되지만 오히려 제한하지 않은 항생제 처방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8~201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바탕으로 항생제 처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 처방량은 2008년 1000인년당 21.68DDD에서 2012년 23.12DDD로 늘었다. 이는 사전심사에 해당되지 않는 3세대 항생제인 세팔로스포린 및 플루오로퀴놀론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반면 제한 항생제인 카바페넴, 글리코펩타이드, 티제사이클린 등의 처방량은 2012년 기준 1000인년당 0.151DDD로 총 처방량의 0.65%를 차지했다(Medicine(Baltimore) 2015;94:e2100).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 보강 및 적절한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김 교수는 "제한하지 않은 항생제를 제한 항생제로 지정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모든 약제 사용을 현재 인력으로 조절하기 어렵다.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며 "게다가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어 감염 전문가 외의 의료진에게는 프로그램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항생제 사용에 대한 국민적 인식개선도 중요한 선결과제다. 

그는 "과거 상기도감염 항생제를 처방하면 진료비를 삭감하겠다고 해 하기도감염으로 바꿔 청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 항생제 내성 문제는 규제만으로 조절되지 않는다"면서 "항생제 내성 문제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비로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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