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 제약사 CP팀 대상 설문조사...정책시행에 따른 제약계 변화는?

 
과거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 최근 경제적 이익 제공 지출보고서(이하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까지 제약업계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제약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영업·마케팅과 개발부서, 최근 업무 중요도가 커진 CP(Compliance Program)팀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약업계 변화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 현장 목소리를 통해 살펴봤다.上) 지출보고서가 영업 및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下) 지출보고서가 CP팀에 미치는 영향“커피 한 잔도 안 된다”
한 대형병원 교수가 보낸 이메일 

대학병원 등 대형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접대 커피 및 도시락 주의보가 내렸다. 
지난 5월, 수도권 소재 한 종합병원 교수가 동료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내 제약사 등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로부터 커피나 도시락을 받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다. 

해당 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가 리베이트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으며, 전임의를 마치고 개원한 의사도 출석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는 제약사 영업사원을 대면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직실 등에 식음료를 놓고 간 게 리베이트로 오인된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타 병원 전공의들의 소환 소식도 접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커피나 도시락을 제공받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지출보고서 작성이 시행되면서 1만원 미만 기념품비와 식음료비는 생략할 수 있음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타 대형병원으로 확산되고 있어 영업 현장은 한층 더 위축되고 있다. 

대학병원 담당 제약사 직원은 "1만원 미만의 커피 제공도 금지하는 병원이 늘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불필요한 오해는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지만 점점 가능한 활동이 축소되면서 방문 횟수도 줄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영업사원이 거래처 의사 대신 예비군 훈련에 대리출석해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영업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자 이른바 ‘몸빵’을 한 사례다.

국내사 영업사원은 "예비군 훈련을 대신 가 달라고 요구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지만 지금과 같이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영업사원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출보고서 작성 파급력 甲…
합법인 듯 합법 아닌 '제품설명회'

 

실제 본지가 달라진 영업·마케팅 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외 제약사 40곳 CP팀을 대상으로 '지출보고서 등 정책 시행에 따른 제약업계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모든 제약사가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 지출보고서 작성 등의 정책이 제약업계에 미친 영향을 체감한다고 답변했다.

일련의 변화 중 영업 및 마케팅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책을 묻는 질문에는 '지출보고서 작성(80%)'을 꼽은 제약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개정된 '공정경쟁규약' 17.5%, '김영란법'    2.5%로 나타났다. 

국내 제약사 CP팀 한 임원은 "리베이트 쌍벌제, 리베이트 투아웃제 등의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컸지만 '운이 나쁘면 걸리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 지출보고서 작성은 기록이 남아 소나기 피하듯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약사보다 의료진이 더 신경 쓰기 때문에 이전 정책에 비해 파급력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출보고서 작성이 의무화된 이후 가장 어려워진 마케팅 기법은 무엇일까?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4.4%가 의료진 대상 '제품설명회(심포지엄)'가 힘들어졌다고 답했다.
이어 △견본품 제공 13.3% △비용 할인 8.9% △임상시험 지원 4.4% △PMS(시판 후 조사) 2.2% △해외학술대회 참가 지원 2.2% 순으로 나타났으며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4.4%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출보고서 작성 이후 가장 활발할 마케팅 기법 역시 '제품설명회'가 꼽힌 점이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8.3%)이 제품설명회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부스 참여가 가능한 ‘학술대회 운영 지원’과 ‘견본품 제공’이 동일하게 12.5%로 나타났고 △임상시험 지원(8.3%) △비용할인(2.1%)을 답한 곳도 있었다. 기타 의견으로는 강연, 판촉물 제공 등이 있었다.

국내사 마케팅 팀장은 "예전 제품설명회는 개원가 한 곳만을 대상으로도 가능했고, 일부는 제품설명회를 빙자한 영업·마케팅도 있었다"며 "이제는 지역 단위 또는 진료과별 등 단체를 대상으로 제품설명회를 진행하다 보니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많은 제약이 가해진 가운데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마케팅이기 때문에 제품설명회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제품설명회를 진행함에 있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상반기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가 지방의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에 제품설명회를 진행했는데 국내사 제품설명회 참석률이 월등히 높았던 것.

다국적사 관계자는 "품목은 달랐지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국내사와 제품설명회를 했다. 우리 참석률은 비교도 안 되게 낮았다"며 "우리는 기념품으로 볼펜과 도시락만 준비했지만 국내사는 참석한 의료진에게 미니 공기청정기를 지급했다. 국내사의 마케팅 활동이 더 자유로운 것 같다"고 귀띔했다.

 

2018년판 ‘新 암행어사’ 등장

최근 달라진 제약 풍경 중 하나는 '新 암행어사'의 출현이다.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 왕의 특명을 받고 지방군현에 비밀리에 파견돼 위장된 복장으로 암행을 했던 왕의 특명사신을 말한다. 이런 암행어사가 제약사에도 등장했다. 이들은 제품설명회 진행 시 현장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다. 제품설명회 현장에 나와 규정을 지켰는지를 체크하는데, 참석자 수를 기본으로 식대, 주류 가격, 설명회 시간 준수, 설명회 취지 등이 확인 대상이다. 올해 갑자기 도입된 활동은 아니지만 일련의 정책과 맞물리면서 사내제도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다국적사 영업직원은 "제품설명회 계획을 보고하면 점검을 나온다. 외부 대행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며 "제품 설명시간을 지켰는지, 참석자 수가 보고와 일치하는지, 회사가 설명회 자리 주체성을 갖는지, 식대와 주류 가격 등 세세하게 체크해 보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수증을 거짓으로 만들어 권고사직 당한 임원도 있어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위해 도입한 제도라고 들었다"면서도 "지나친 감시와 의심은 영업활동을 위축시키고 거래처로부터 신뢰를 잃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다국적사 직원은 "주류 등이 추가될 때마다 영수증을 체크하기도 한다고 들었다"며 "해당 부서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를 다하는 것이지만 동료 사이가 나빠질 우려도 있다. 회사에 필요한 정책이라면 현장에서의 의견을 수렴해 적정한 운영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리베이트와 악연이 더 깊은 국내사들은 CP등급 획득과 ISO 37001 인증에 열을 올리고 있다.

CP등급 획득은 지난 2015년 시작됐다. 한미약품과 동아에스티가 CP등급 AA를 받으며 자율준수 노력 의지를 보여준 이후 상위사는 물론 중소제약사까지 확산, CP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여하는 CP등급이 국내 기준을 충족하는 거라면, ISO 37001은 글로벌화에 맞춘 규정이다.

ISO 37001은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반부패경영시스템으로 윤리경영과 뇌물수수 방지 등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2016년 10월 제정, 국내에는 지난해 4월 도입됐다. 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대웅제약, 대원제약, 동아에스티, 유한양행, 일동제약, 코오롱제약, GC녹십자, JW중외제약 등이 ISO 37001 인증을 완료했다.

국내 제약사 CP팀 관계자는 "ISO가 정한 표준은 국제 협약이나 국가 표준 제정 시 폭넓게 인용돼 국제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며 "ISO 37001 인증을 통해 부패 예방은 물론 기업 신뢰도도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실무진과 사측 간 간극이 있어 보인다. CP등급 획득 및 ISO 37001 인증 필요성을 묻는 본지의 설문에서 '필요하다(28.6%)'는 답변보다 '필요하지 않다(71.4%)'는 답변이 더 많았고, '시간 및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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