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도·환경과 달라도 너무 달라 어려움 ... "시범사업은 시도해 볼만"

 

급속한 노인 인구 증가와 높은 만성질환 유병률 등으로 현재 보건의료체계가 위협받으면서 새로운 의료제공 모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01년 이래 2016년까지 건강보험 급여비가 연평균 9.4% 증가했고, 2030년 노인 의료비는 현재 건강보험 진료비의 약 4배에 달하는 약 92조원에 이를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큰 비용을 쏟아붓고도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 조절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혈압 조절률은 45%, 당뇨병 혈당 조절률은 13%에 불과하다. 

노인 의료비 이외에도 비급여 관리 부재, 비용을 조장하는 지불제도, 공급자 중심의 의사결정 갈등 등도 새로운 모형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미국의 새로운 지불제도 방법인 ACO(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책임진료기구)와 CCO(Coordinated Care Organization, 조정진료기구) 등을 제안한다. 

오바마 정부의 책임진료기구 'ACO' 

ACO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의료개혁을 하면서 들고 나온 지불방식으로 주민의 건강향상, 의료비 증가율 둔화를 목적으로 한다. ACO는 일차진료의사와 병원 등 다양한 의료제공자로 구성된 연합체다. 1, 2, 3차 의료가 연계되고 여기에 장기요양서비스와 홈케어까지 통합하는 포괄적 의료(comprehensive care)를 핵심으로 한다. 

 

ACO 모델은 다양하다. 일차의사집단과 병원, 전문가집단이 연합체를 구성할 수도 있고 일차의사집단, 지역병원, 홈케어, 정신건강시설 등으로도 짤 수 있다. 지역과 상황에 맞게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들 ACO가 지역 환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로부터 성과급을 받는 것이다. 성과급의 기본조건은 의료서비스 질적 성과를 충족해야 한다.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의료체계, 새 판을 짜자' 토론회에서 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책임연구원은 "ACO는 의료비를 절감했을 때 정부로부터 성과급을 받는 지불체계다. 목표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받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벌금 등의 페널티를 받는다"며 "미국 정부는 ACO를 차세대 의료전달체계로 사용하도록 인가함으로써 의료를 양(volume)에서 가치(value)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CO는 CMS(Center for Medicaid and Medicare Service)에서 운영하는 메디케어 ACO와 메디케이드 ACO, 주 정부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ACO 유형이 있다. ACO는 일차의료공급자, 전문의, 병원, 장기요양기관, 약사 등 다양한 의료서비스 제공자로 구성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절감액은 인센티브로…절감 못하면 페널티 적용

몇 년 전부터 국내 의료 공급자들도 ACO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비용을 절감했을 때 매력적 요소가 있어서다. 

▲ 자료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 보고서

서울의대 김윤 교수(의료관리학)는 "ACO가 목표로 정한 비용보다 실제 지출비용이 적을 경우 절감액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받는 것이 ACO의 핵심"이라며 "많이 절감할수록 더 많은 성과급을 가져갈 수 있다. 물론 비용을 초과 지출하거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ACO 참여자들이 공동으로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 연구원도 지불보상에서 공급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췄다고 말한다. 제도 미시행 시 발생했을 총진료비 기준으로 목표비용(benchmark)을 상정하고, 이보다 절약하면 추가이익을 얻는 시스템이라 공급자 입장에서는 동기부여가 되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목표비용은 ACO가 CMS와 계약을 체결할 때 책정하고, 주로 ACO 구성 전 수급자들의 최근 3년간 입원 및 외래진료비 평균 수준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급을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짜여 있지는 않아 보인다. 모든 ACO가 질 성과지표(quality measures)를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와 서비스제공자 경험(7개), 서비스 조정과 환자 안전(6개), 예방보건(8개), 위험집단환자 비율(고혈압, 당뇨병, 허혈성혈관질환, 심부전 등 12개) 등 총 33가지로 4가지 영역을 만족해야 한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시행하는 조정진료기구 'CCO'

ACO와 더불어 거론되는 모델은 CCO다. 미국 오리건주의 CCO는 ACO의 연장선에 있는 제도라 할 수 있다. CCO에는 의료, 정신건강, 구강건강 공급자, 지역사회 구성원, 지방정부 등이 참여한다. ACO에 참여하는 공급자들이 자발적이라면 CCO에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오리건주에서 메디케이드 환자를 진찰하려면 무조건 CCO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 CCO 핵심요소는 Patient-Centered Primary Care Home(PCPCH), Oregon health plan(OHP)'s Prioritized list, 총액예산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신 연구원은 "CCO 시스템에서는 응급을 제외한 의료의 일차적 시작을 PCPCH에서 컨트롤 한다"며 "대부분 CCO 행정팀의 사전허가 없이 환자를 PCPCH 외의 CCO 네트워크 전문의에게 의뢰할 수 있으나 MRI 등 고가의료장비 이용이나 입원 치료는 사전 또는 사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CCO는 눈에 보이는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2015년 온타리오주 병원협회(OHA)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월간 입원 의료비가 2011년 87.5달러에서 2013년 82.3달러로 5.9% 감소했다. 외래 총진료비도 2011년 191.4달러에서 2013년 183.7달러로 4.0% 줄었다. 이 외에도 응급실 방문율, 만성질환으로 인한 입원·재입원율 등이 눈에 띄는 수치로 감소했다. 

미국과 시스템 다른 우리나라에 적용 가능할까

ACO나 CCO의 장점이 많다고 해도 국내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지 않아 보인다. 행위별 수가제 개편 필요성이 있지만 공급자들이 반대할 확률이 높고, 의료 이용자들도 그동안 마음대로 상급의료기관을 이용하다 제약이 생기면 불만이 생길 수 있다. 

또 보험자와 개별 공급자 간 계약 경험이 없어, 공급자들이 보험자를 믿지 못할 우려도 있다. 그동안 공급자가 홀로 혹은 경쟁적으로 생존해 왔기 때문에 다른 공급자와 연계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차 의료기관을 의료기관 네트워크 또는 집단개원 형태로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 초기 CCO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김윤 교수는 "의사들이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환자의 일상생활을 관리하거나 건강문제를 해결하고, 외부기관과 조정하는 경험은 부족하다"며 "의사들이 환자와 건강결과 그리고 효율성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림의대 조정진 교수(예방의학과)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다르다는 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으로 게이트 키핑이 잘 이뤄지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ACO의 기본은 1, 2, 3차를 묶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일 ACO라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ACO가 우리나라에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시범사업 한번 해봅시다" 

ACO와 CCO 모델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시범사업을 해보는 것은 좋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인 상태다. 

아주의대 전기홍 교수(예방의학교실)는 ACO는 오랜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비자의 선택이므로 어느 정도 효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 교수는 "지금까지 급성질환을 케어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문제가 생겼다. 노령화와 만성질환이 주를 이루는 시대에는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며 "이제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고 ACO는 좋은 대안이라 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또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국민이 현 제도에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정부는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며 "국민 스스로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 측에서도 반대하지 않지만 국민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비쳤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국민 만족도는 약 70%다. 국민은 합리적으로 의료이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이 만족하고 있어 정치권도 관심이 없다. 결국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의료전달체계의 새판을 짜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시범사업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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