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이준영 교수
서울의대 이준영 교수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노인인구의 건강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노년기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질환인 치매와 우울증은 개인과 가족, 나아가 국가 전체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치매는 인지기능의 점진적인 저하를 특징으로 하는 뇌질환이며, 우울증은 지속적인 우울감과 의욕저하를 동반하는 기분장애다.

문제는 노년기 우울증이 치매의 전단계로 나타나거나 치매와 동반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치매가 아니더라도 치매와 유사한 인지기능저하 증상을 보일 수 있어 두 질환의 감별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지저하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노인환자가 우울증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따라서 두 질환의 특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정확한 감별진단을 통해 각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성공적인 노년기 정신건강 관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노년기 치매와 우울증의 진단 및 치료적 접근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1. 치매의 진단: 다각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치매 진단은 단일검사로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통합적인 과정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다음의 세 가지 핵심요소(ABC)를 면담 시 아래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 C (Cognition, 인지기능):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 능력, 집행기능 등 다양한 인지 영역을 평가한다.

• A (Activities of Daily Living, 일상생활 능력): 식사, 옷 입기 등 기본적인 일상활동 수행능력의 저하 여부를 평가한다.

• B (Behavior, 이상행동 및 심리증상): 공격성, 망상, 환시, 불안, 초조, 무감동 등 치매에 동반될 수 있는 행동 및 심리 증상을 확인한다.

치매 진단검사 과정은 크게 선별검사, 진단검사 단계로 나뉘나 실제적으로는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1) 선별검사: 인지기능저하가 의심될 때 치매안심센터 등에서 시행하는 간편하고 신속한 평가다. 간이정신상태검사(MMSE)가 제일 많이 사용된다.

2) 진단검사: 선별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병원에서 정밀한 진단검사를 시행한다.

• 문진 및 신경학적 검사: 증상의 시작과 진행 양상, 과거력, 가족력 등을 청취하고 신경학적 검사를 통해 다른 신경계 질환의 징후를 확인한다.

• 종합 신경심리검사: 서울신경심리검사(SNSB-II)나 CERAD-K와 같은 표준화된 종합 신경심리검사 도구를 사용해 기억력, 언어능력, 집행기능, 주의력, 시공간 능력 등 각 인지 영역을 정밀하게 평가한다.

• 뇌영상 검사: 뇌 MRI는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인 해마 위축이나 혈관성 치매의 원인이 되는 뇌경색 등을 구조적으로 확인한다. 아밀로이드 PET은 원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의 뇌 내 축적을 직접 확인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의 조기진단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 혈액검사: 갑상선기능이상, 비타민 B12 결핍 등 치료 가능한 치매의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시행한다.

2. 우울증의 진단: 숨겨진 증상 찾아내기

노년기 우울증은 젊은 층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진단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노인들은 “우울하다”고 직접 표현하기보다 신체적 불편감이나 인지기능저하를 주로 호소하기 때문이다.

1) 진단기준: 우울증은 다음의 핵심 증상 중 하나 이상이 거의 매일, 2주 이상 지속될 때 진단을 고려한다.

• 하루 대부분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 거의 모든 일상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의 현저한 감소

이와 더불어 식욕 및 체중의 변화, 불면이나 과다수면, 초조감이나 행동지체, 피로감,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 집중력 저하,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등의 증상 중 일부가 동반된다.

2) 노년기 우울증의 비전형적 증상:

• 신체증상 호소: 뚜렷한 원인 없이 두통, 소화불량, 전신통증 등 다양한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 인지기능저하: 기억력이 떨어지고, 집중이 안되며, 판단력이 흐려지는 증상을 주로 호소해 치매로 오인되기 쉽다.

• 불안 및 초조: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거나, 반대로 매사에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3) 진단과정:

• 임상면담: 의사는 환자 및 보호자와의 심층 면담을 통해 증상의 양상과 기간, 환자의 심리상태, 생활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한다.

• 선별도구: 노인우울척도(GDS) 등 표준화된 설문지를 통해 우울증상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의학적 평가: 노인에서는 우울증이 2차적으로 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우울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갑상선기능저하증, 뇌졸중 등)이나 복용 중인 약물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신체검진과 혈액검사, 뇌영상검사를 시행한다.

3. 우울증과 치매의 감별: ‘가성치매’를 구별하는 법

노년기 우울증은 인지기능저하를 동반하는 경우가 흔해 ‘가성치매(Pseudodementia)’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성치매는 실제 뇌세포의 퇴행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상으로 인해 2차적으로 인지저하가 나타나는 상태로, 우울증을 치료하면 인지기능도 회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성치매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두 질환을 감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우울증 자체가 치매 발병의 위험인자이며, 치매 환자에게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매우 흔하기 때문에 두 질환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인지저하와 우울증상이 함께 보일 경우, 반드시 전문가의 포괄적인 평가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 치매와 우울증의 치료전략

1) 치매치료

치매치료는 크게 증상완화를 목표로 하는 약물치료와 질병의 근본 원인을 조절하려는 질병수정치료로 나뉜다.

• 증상개선제 (아세틸콜린분해효소억제제 및 NMDA수용체길항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는 인지기능에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감소하는데, 아세틸콜린분해효소억제제(AChEIs)는 이를 보충하여 인지기능저하 속도를 늦춘다.

도네페질(Donepezil), 리바스티그민(Rivastigmine), 갈란타민(Galantamine) 등이 있다. 중등도 이상 진행된 치매에는 AChEIs와 함께 NMDA수용체길항제인 메만틴(Memantine)이 사용된다.

• 질병수정치료제 (항아밀로이드항체)

최근 개발된 항아밀로이드항체 약물은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원인물질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뇌에서 직접 제거해 질병의 진행 자체를 늦추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열었다.

레카네맙(Lecanemab)은 아밀로이드 PET 검사 등으로 뇌 내 아밀로이드 축적이 확인된 경도인지장애 또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사용된다. 18개월 투여 시 위약군 대비 인지기능저하 속도를 약 27% 지연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다만, 2주에 한 번 주사를 맞아야 하고 보험이 안돼서 약가격이 비싸며 뇌부종이나 미세출혈과 같은 영상 이상(ARIA)이 발생할 수 있어, 투약 전후 정기적인 뇌 MRI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2) 노년기 우울증 치료

노년기 우울증은 치료를 통해 충분히 호전될 수 있는 질환이다. 인지기능저하가 동반된 경우, 우울증을 먼저 치료해 인지기능의 회복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진단과 치료계획 수립에 매우 중요하다.

• 약물치료: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계열의 항우울제가 부작용이 적어 1차적으로 고려된다. 노인 환자는 약물대사 능력이 저하돼 있을 수 있으므로 저용량으로 시작해 신중하게 증량해야 한다.

• 정신치료 및 사회적 지지: 약물치료와 더불어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가족과 주변인들의 따뜻한 지지와 격려는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5. 결론: 통합적 관리와 미래를 향한 제언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년기 치매와 우울증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치매와 우울증은 증상이 겹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복잡한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어느 한쪽이 의심될 때 다른 쪽의 가능성도 항상 염두에 두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하다.

치매와 우울증은 더 이상 불치나 숨겨야 할 병이 아니다. 정확한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 그리고 따뜻한 사회적 지지가 함께할 때, 노년의 삶은 보다 건강하고 존엄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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