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배다현 기자] 의약품판촉영업자(CSO)에게 영업활동을 위탁하는 제약사가 점차 늘고 있다. 최근 중소제약사뿐 아니라 규모가 큰 상위 제약사까지 CSO 도입을 결정하면서 이제 모든 제약사가 CSO를 이용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에는 CSO 신고제와 지출보고서 등 CSO 영업활동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도 정비되고 있다. 이런 제도는 제약사와 CSO 관계를 공식적으로 정립하고 CSO 활동을 이전보다 양성화하는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제약사는 의약품 개발과 제조에 집중하고, CSO가 영업을 담당하는 업계의 분업 체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사가 직접 영업 조직을 관리하던 과거와 달리, CSO를 통한 복잡다단한 위탁구조 하에서 제약 영업의 패턴도 점차 변화될 전망이다.
본지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다가올 제약·CSO 분업시대에 제약 영업의 패턴이 어떻게 변화할지, 업계는 이를 맞이할 준비가 됐는지 살펴봤다.
① 제약·CSO '분업시대' 올까···변화하는 제약 영업
② 과제 산적 CSO 제도화, 정부·업계 해법은 '나 몰라라'
"초대형 CSO 등장 머지 않아"
제약-CSO 관계 재편 가능성
CSO 업계가 팽창하면서 초대형 CSO의 등장이 머지 않았다는 예상도 나온다. 최근 CSO 법인이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데다 CSO 신고제와 대형 제약사의 CSO 도입으로 업계 인식이 변화하면서 보다 많은 인력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초대형 CSO가 등장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CSO의 영향력은 현재보다 훨씬 커지고 제약 영업사원의 입지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 활동과 수수료 책정에 있어 CSO의 입김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CSO 업계 관계자는 "주요 제약사 영업사원들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제약 영업이 개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초대형 CSO가 등장하면 영업사원들은 CSO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제약사 간 코마케팅도 결국은 판매 대행이다. 만약 매출이 조 단위까지 발생하는, 인프라가 갖춰진 거대한 CSO 법인이 등장하면 글로벌 제약사 제품의 종합병원 랜딩까지도 CSO가 책임질 수 있다고 본다"고 예측했다.
제약사 CSO 관리 책임 강화에도
관리시스템 마련은 아직
CSO 신고제와 지출보고서 공개 제도 시행으로 제약사의 CSO 관리 책임이 강화되면서 이에 따른 대책 마련도 요구된다. 개정된 약사법에 따라 의약품 판촉업무를 위탁 받아 수행하려는 자(재위탁 포함)는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며, 의약품 판촉영업자가 아닌 자에게 판매촉진 업무를 위탁하는 것이 금지됐다.
의약품 공급자는 판촉영업자에게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위탁계약서를 작성하고 5년간 자료를 보관해야 한다. 판촉영업자가 위탁 받은 업무를 다시 위탁하는 경우에는 의약품 공급자에게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또 의약품 판촉영업자(법인 대표자나 이사, 종사자 포함)는 의약품 판매질서 등에 관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모든 CSO가 교육을 이수하고 신고를 마쳤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CSO 간 재위탁은 최대 4차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업계에 따르면 많게는 7차 재위탁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한 제약사가 업무를 위탁하는 법인 CSO만 해도 수백 여개, 개인 CSO까지 합치면 수천 여개에 이르기도 한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위탁 구조를 관리하기 위해 제도가 마련됐으나 여전히 제대로 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제약사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 업체를 관리하면서 발생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여전히 1차 위탁 업체인 법인CSO만을 관리 범위로 삼고, 하위 업체 관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업체도 있다. 제약사들이 법과 제도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CSO 업체 대표는 "현재 개인 딜러가 이 회사 저 회사를 넘나드는 일이 많아 재위탁 관리가 어렵다. 제약사에서 일정 시기에만 이동 가능하도록 계약에 단서를 걸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고 있다"며 "예를 들어 경제적 지출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한 영업 딜러가 1분기는 우리 업체에서 2분기는 다른 업체에서 일하는 일이 생겨 복잡해진다. 제약사가 국가 정책에 맞는 관리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고 법인 CSO에 끌려다니니 시장이 중구난방"이라고 지적했다.
제약·CSO 분업시대 '청사진' 부재
국내 제약업계가 CSO를 본격 활용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업계에서 CSO의 제도권 편입과 관리 체계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도 오래다. 그러나 제약 영업의 주체인 제약사와 CSO,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정부 중 누구도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제약사 CSO 관리 담당자와 CSO 업체 관계자들은 제약·CSO 분업시대의 연착륙과 효율적인 영업 구조 마련 방안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답을 내놓은 이들이 많았다. 인력과 수수료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 경쟁 구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 규제에 수동적이고 임기응변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는 정부이지만 정부 역시 아직 구체적인 로드맵은 내놓지 못한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지출보고서 공개 제도와 CSO 신고제가 시행됐지만 이를 통해 제대로 된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는지, 이를 활용한 후속 조치는 무엇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에 새 제도를 기반으로 어떻게 혼탁한 시장 질서를 개선할 수 있을지 정부가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때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행되는 CSO 신고제는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는 느슨한 제도"라며 "MR 인증제나 CSO 인증제와 같이 보다 강화된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나라도 공식적인 CSO협회가 등장하고 업계가 서로 협업해 문제를 하나씩 조율하다 보면 조금씩 정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