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O, 일본 제약시장서 ‘전략적 영업 파트너’로 자리매김
[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국내 제약산업은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특히 내부 영업인력 유지 부담, 복잡해진 규제 환경, 전문화된 제품군 증가는 영업·마케팅 전략의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CSO(Contract Sales Organization, 의약품 판매대행)와 같은 전문조직 활용을 위한 제도가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법적·제도적 근거의 미흡함, 윤리적 논란 및 신뢰도 문제로 인해 ‘CSO=리베이트’로 대변될 만큼 변질된 상황이다.
정부와 제약업계는 CSO 신고제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은 다소 뒤쳐진 상태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자국의 제약산업 내 수요 변화에 발맞춰 CSO 활용을 전략적 경영 도구로 발전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본지는 창간 24주년 특집기사에서 30여 년의 일본 CSO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① 서른 살 일본 CSO, 제약 영업의 판을 바꾸다
② 한국 제약 영업, 새로운 영업방식 고민할 때
30년 역사 일본 CSO, 영업조직 고정비 부담에서 출발
일본에서 CSO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98년이다. 이는 영국 1983년, 독일 1993년, 미국 1995년에 비하면 다소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 CSO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제약영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했다. 실제 일본의 CSO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4억 4000만달러 수준으로 평가되며,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2% 성장해 2035년에는 약 11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일본 제약사들은 왜 CSO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됐을까.
핵심 이유는 '고정비 부담'이 출발점이었다.
1980년대부터 지속된 약가 인하 정책은 일본 제약업계의 수익성에 타격을 입혔다. 여기에 특허 만료에 따른 오리지널 의약품 매출 감소와 연구개발(R&D) 비용 급증에 따른 부담도 더해졌다.
때문에 일본 제약업계는 자체 영업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고정비에 부담을 느끼게 됐고, CSO를 적극 활용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이 CSO를 도입한 초기에는 신약 출시 시점에 맞춰 MR(Medical Representative, 의약정보담당자) 인력을 파견 받는 형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약사들은 CSO를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CSO를 통해 비용 최적화, 영업 효율화, 전문적인 인력 확보라는 3가지 이점을 한 번에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성장···제약업 풍경이 바뀌다
현재 일본 CSO 시장은 완만한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과거에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바 있다. 실제로 2009년까지만 해도 52개에 불과했던 일본 내 CSO 업체는 2020년에는 170여 개로 늘었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 CSO 시장에서 활동 중인 MR은 전체 약 6만명 중 9%에 달하는 4000~50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일본 내 CSO의 성장 배경에는 스페셜티 의약품과 바이오 의약품 시장 확대가 결정적이었다. 만성질환 치료제에서 품목들이 고도화되면서 일반 MR보다는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전문 MR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이 같은 전문 MR을 내부에서 모두 충원하기 어려웠던 만큼 자연스럽게 CSO를 활용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CSO 시장 성장의 배경에는 일본CSO협회(JCSOA)의 역할도 컸다.
2011년 출범한 JCSOA는 단순히 인력 파견 수준을 넘어 CSO를 제약사의 영업 파트너로서 위상을 갖추도록 하는데 노력해왔다. JCSOA는 MR 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윤리 및 컴플라이언스(CP) 강화, 아웃소싱 가이드라인 표준화 등에 주력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MR의 전문성을 높이고 업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먼저 MR 인정시험 제도다. MR 인정시험은 국가 자격시험은 아니지만 사실상 업계에서 표준으로 자리했다. 실제로 MR 인정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대형병원은 물론 웬만한 병원도 출입이 규제될 정도이며, 이직도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MR 인정시험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MR의 윤리적 행동에 높은 배점이 부여된다는 점이다. 영업 인력의 전문성과 윤리적 기준을 높임으로써, CSO를 단순한 영업 대행을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정보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
이에 따라 CSO 활용 방식도 한 명의 MR이 여러 제약사의 제품을 동시 담당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며 영업 효율성을 높이고, 전문 영역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도 일본 제약업계의 영업구조 재편을 가속화했다.
최근 5년간 일본 제약기업의 80% 이상이 MR 인력을 감축하고, 대신 마케팅 및 세일즈 부문에서 디지털 전환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의사들도 디지털 기기와 플랫폼 활용 선호도가 높아졌고,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일본의 MR도 실제 영업활동과 원격 디지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으로 전환됐다.
이처럼 CSO 활용에 따른 MR 역할의 변화가 요구되면서 일본은 제약업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 일환으로 2014년 지출보고서 공개 제도를 도입, 시행하며 제약사가 의료인 및 의료기관에 제공한 경제적 이익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이는 CSO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에는 CSO의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의약품 판촉 영업자 신고 시 24시간 신규 교육 이수를 기준으로 하고, 신고에 필요한 절차와 서식을 신설하는 시행규칙도 개정했다.
일본 정부는 CSO 신고제 적용 대상에 제약사를 포함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제약사도 CSO에 대해 지출보고서 작성, 보관, 제출 의무를 지도록 하고 있다.
또 리베이트 수수자의 행정처분 기준을 강화하고, 지출보고서 미작성, 미보관, 거짓 작성, 미제출 업체에 형사처벌 기준도 상향했다.
이 같은 윤리적인 영업문화 확산은 과거 'CSO=리베이트'라는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