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5일째 의료파행에 필수의료 명맥 끊어질 위기
정치 아닌 실무자 및 전문가 중심 논의체 필요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새 정부에 의료사태 해결과 전공의·의대생 복귀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의료사태 해결이 늦어질수록 의료계의 뉴노멀(New Normal)은 고비용, 저효율의 민영화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9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옴니버스파크 플렌티 컨벤션에서 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의사회는 '의정갈등 해결과 응급의료 개혁을 위한 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그들은 "지난 정부에서부터 495일째 이어지는 의료농단에 의한 의료파행이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단 한 걸음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사직한 상급종합병원들의 진료역량이 떨어지면서 중증환자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으며, 우리가 그토록 살리고자 했던 필수의료는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행정부의 중대한 직무유기이자 방임"이라며 "망가져버린 의료계와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새 정부가 이 사태를 조속히 개입하여 해결해 줄 것을 간절히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새 정부가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해제하고 실질적인 해결이 가능하도록 행정부의 결정권자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포함된 논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작년 2월 의정 갈등 사태 발발 후 중대본 운영과 함께 보건의료 위기경보 최상위 단계인 '심각'을 발령하고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이형민 회장은 "이번 사태는 중앙의 재난이 아닐뿐더러, 중대위는 100차례 회의를 했음에도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며 "오히려 지난 495일동안 의료계의 가장 큰 반발을 산 것은 중대본에서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차관이 한 발언과 활동"이라고 꼬집었다.
의사회는 잘못된 정책 추진에 대해 전임 장차관 등 책임자들이 사과하고, 정부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즉시 지명해 대화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이 회장은 "정책추진에 있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과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위법적인 강제명령을 남발하며 의정갈등을 유방한 장차관들은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 목소리 정책 반영 시스템 만들어져야
한국형 EMTALA 도입 등 제안
또 응급의료개혁의 핵심과제인 '응급실 과밀화 해결, 최종치료 및 취약지 인프라 개선, 사법리스크 면책'을 위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논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의사회는 "응급의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인 조건들로 해결책을 주장해 왔으나 아직까지 변한 것이 없다"며 "이 같은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응급실 강제수용이나 단순한 체계 개편 등의 비합리적인 조치들로는 절대 응급의료의 문제점들이 개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장의 의견이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과 논의체 구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어떤 의료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등의 큰 방향성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인 행동 방안은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다"며 "이런 사항에 사회적 합의를 들이밀면 정치적인 왜곡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실질적인 전문가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논의체 구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사법리스크 해결을 위한 한국형 EMTALA(응급의료법) 도입 등이 있다. EMTALA(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Labor Act, 연방 응급진료 및 분만법)는 미국의 응급의료 가이드라인으로, 환자에 대한 주의 의무를 진료과별·사례별로 상세히 정리해 의료사고 시 유무죄 판결의 기준이 된다.
법률을 도입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특수성을 이해하는 응급의료 전문가들이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응급실에서 대동맥박리를 발견 못한 이유로 징역형을 받는 등의 과도한 판결 이면에는 법원에 가야할 사건과 아닌 사건을 거르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악순환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응급의료가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학 부회장도 "정부에서는 초과사망자가 적거나 없다고 발표하지만, 코로나19(COVID-19) 이후부터 의정갈등을 지나면서 응급실에서 나간 환자의 배후진료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음이 체감되고 있다"며 "응급의료를 살리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