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박선혜 기자.
편집국 박선혜 기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학회가 개최하는 학술대회 또는 심포지엄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용어가 '다학제 진료'다.

다학제 진료는 한 환자의 질병 진단 및 치료를 위해 서로 다른 분야의 의료진이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계는 환자 중심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다학제 진료 중요성을 역설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심장-신장-대사 증후군(CKM 또는 CRM)'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심장, 신장, 대사 질환이 서로 연결됐고 환자 예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종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한 개념이다. 이에 따라 심장내과, 신장내과, 내분비내과가 협업하는 다학제 진료가 핵심 전략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심장-신장-대사 증후군 관리를 위해 다학제 진료를 해야 한다는 학계별 목소리는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있다. 다학제 진료의 중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각 진료과가 독립적으로 환자를 진료해 선언적 수준에만 머물고 있다. 

예로, 심장-신장 대사 증후군 개념에서 보면 최근 심부전 증상이 있고 미세알부민뇨 수치가 높아진 당뇨병 환자의 경우 당뇨병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심혈관질환과 신장질환 위험을 평가하고 함께 관리하는 다학제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의료체계에서는 심장내과에서 심부전만, 내분비내과에서 당뇨병만, 신장내과에서 콩팥병만 관리해 전반적인 환자 건강을 아우르는 진료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다학제 진료에 어려움이 있는 배경에는 다른 진료과로 환자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와 다른 진료과에서 환자를 관리하는 것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인식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실제 다학제 진료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도 소통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우리나라는 다학제 진료 수가가 제한적으로만 이뤄져, 수가 측면에서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를 개선하려면 학계가 먼저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학제 진료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설득력을 얻어 향후 수가 책정 등 정책 제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협진을 위해 합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학제 진료를 해야 한다고만 각자 외치는 것은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에 불과하다. 

과거 경피적 대동맥 판막 치환술(TAVI) 시행을 두고 심장내과와 흉부외과가 갈등을 빚은 적 있다.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TAVI 시행 시 심장내과와 흉부외과가 심장통합진료를 위한 하트팀(Heart Team)을 구성해 다학제 협진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시술 주도권을 두고 진료과 간 갈등이 벌어지면서 협진이 이뤄지지 않거나 서류상 형식에 그쳤다. 이후 학술대회에서 두 진료과가 만나 TAVI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되는 등 뒤늦게나마 협진을 위한 소통에 나섰고 지금까지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진정한 다학제 진료는 선언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학제 진료가 중요하다'는 이상적인 말만 각자 외치는 것은 무의미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환자 중심 진료를 위해 각 학계가 벽을 허물고 소통과 협력에 나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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