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 기자간담회 27일 개최
근무환경 열악·전문의 감소 등 지적…신약 급여 지연도 문제

대한혈액학회는 27일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국제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대한혈액학회는 27일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국제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메디칼업저버 손재원 기자] 국내 혈액학 진료 현장 어려움과 치료제 도입 지연의 문제를 알리고 보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촉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혈액학회는 27일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혈액학 분야 의료진 대상 설문조사와 건강보험 급여 지연에 대한 학회 입장을 밝혔다. 이번 행사는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5) 일환으로 열렸다. 

이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문제는 현장 의료진 부족과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등재 지연 등 두 가지였다. 이는 결국 혈액학 분야 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빼앗고, 임상 현장 상황을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혈액학 의료진, 42.3%가 미래 전망 '매우 부정' 

학회는 국내 혈액학 분야 의료진 1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근무지와 평균 나이, 근무 환경과 국내 혈액학 분야 미래에 대한 의견 등을 청취했다. 이는 학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진 첫 조사다. 

특기할 만한 점은 설문에 응한 혈액학 분야 의료진 연령대였다. 혈액내과 의료진 중 60대가 19%였고 50대로 내려오면 45%를 차지해 50대 이상 의료진 비중이 매우 높았다. 이에 의료진 고령화가 임상 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혜리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
김혜리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

김혜리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소아 혈액암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인력은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약 50명으로 생각된다"며 "지금 임상 현장에 있는 의료진은 나이를 먹는데 후배 의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혈액암 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혈액내과 분야의 높은 노동 강도도 지적됐다. 학회 조사에 따르면 주당 근무 시간이 52~80시간인 경우가 41.6%를 차지했고 80~100시간 근무도 약 30%에 달했다. 또 월별 야간 당직이 3~4회인 경우가 26.2%, 5~6회인 경우는 30.9%로 나타났다. 7회 이상인 경우도 16.1%에 달했다. 

이처럼 근무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신규 혈액암 환자를 받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특히 혈액암 관련 치료 중에서도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골수이식은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김 이사는 "골수이식 치료는 일반 입원 치료보다 훨씬 높은 경험치가 요구된다. 그런데 혈액내과 전문의 한두 명이 24시간 당직을 서면서 환자를 돌보기는 불가능하다"며 "치료뿐만 아니라 혈액암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진도 자꾸 감소하면서 계속해서 큰 병원으로만 환자가 몰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의정갈등 이후 악화된 근무 환경 등은 의료진 사직 의사나 직업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혈액암 분야에서는 의료 소송을 경험할 확률이 높고, 그만큼 진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향후 5년 내 국내 혈액학 미래에 대해 '매우 부정'이라고 답한 인원도 42.3%에 달했다. 

김석진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은 "학회 차원에서 공식적인 팩트체크와 조사를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체계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지 파악한 것도 처음이다. 현장 의료진의 고령화 문제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 수준을 보고 학회에서도 놀랐다"고 전했다. 

학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후임 전문의 양성과 진료 지원 인력 확대 △적절한 보상과 휴식 보장 △필수진료 지원 강화 △혈액진료 관련 수가 개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상당수의 혈액학 전문 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된 점을 고려해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신약 급여등재 지연, 환자 치료 접근성 저해

환자의 치료 접근성에 대한 현장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내 건강보험 급여 등재 절차가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임호영 학술이사(전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임호영 학술이사(전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임호영 학술이사(전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테클리스타맙(제품명 텍베일리)이나 엘라나타맙(엘렉스피오), 탈쿠에타맙(탈베이) 등 재발불응성 다발골수종 치료제는 미국식품의약국(FDA)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신속 승인을 받았다"며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급여 등재가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신규 기전 치료제는 기존 약제 대비 임상적으로 뛰어난 효과를 입증했지만 국내에선 급여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암질심은 장기 추적관찰과 표준치료 직접 비교 데이터가 없다는 점을 사유로 들었다. 

임 이사는 "림프종에 쓰이는 엡코리타맙(엡킨리)과 글로피타맙(컬럼비) 등 이중항체 치료제도 같은 이유로 급여 등재가 미뤄졌다"며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 생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옵션이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암질심에서는 평가의 본질인 치료제 유효성만 판단했으면 한다"며 "비용 같은 경제적인 문제는 암질심에서 다룰 내용이 아닌 것 같다. 치료제 유효성에 대한 판단이 내려져야 제약사에서도 가격적인 부분을 조율하는 등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암질심 위원회 구성 측면에서도 혈액암 분야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현재 암질심 위원 41명 중 혈액내과 전문의는 6명으로, 대부분 고형암 전문의로 구성돼 있다. 학회는 이 때문에 개별 혈액암에 대한 신약 평가 기준 전문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고 봤다. 

임 이사는 "신속 허가를 받은 신약은 빠른 급여 등재가 가능하도록 유연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고형암처럼 혈액암 분야에서도 암종별 특이성과 차이를 고려해 별도의 전문 심의기구를 구성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외에 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겠다는 취지다. 

홍경택 부총무(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 다음 세대의 젊은 의사들이 비전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혈액학 분야에서 근무하는 게 힘들지만 가치 있는 행위라는 것을 알리고 꾸준히 후배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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