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수면연구학회, 세계 수면의 날 기념 심포지엄 4일 개최
치료·관리 위해선 수면장애 신약 도입과 급여 확대 등 필요
[메디칼업저버 손재원 기자] 건강보험 급여 사각지대에 놓인 수면장애 환자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수면연구학회는 4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세계 수면의 날(3월 14일) 기념 심포지엄을 열고 국내 수면 실태와 수면장애 치료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수면장애는 신체와 뇌,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쳐 건강 악화 원인이 된다. 단순한 수면 부족도 비만이나 2형 당뇨병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6시간 이하 수면은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각각 48%와 15%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수면연구학회 신원철 회장(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수면은 단순한 '웰니스' 문제가 아니다. 수면장애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그 심각성에 비해 수면무호흡증과 기면증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수면장애, 신약 도입·급여 등재 모두 늦어
전진선 홍보이사(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수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 비해 심혈관질환이나 암 등 다른 질환 대비 수면장애 연구와 정책적 지원은 부족하다"며 "급여 대상이 아닌 치료제가 많은데다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새로운 치료옵션이 나와도 환자들이 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수면장애로 꼽히는 불면증은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국내에선 벤조디아제핀이나 비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가 많이 쓰이는데, 약물 의존성이나 낙상 위험, 기억력 저하, 수면 시간 외 졸림 등 부작용이 보고된다.
최근에는 졸피뎀 등 비벤조디아제핀 계열 Z-약물(Z-drug) 장기 복용 시 치매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수면제를 1년 이상 장기간 혹은 고용량으로 복용할 경우 치매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Z-약물 대체제로 이중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ORA) 계열 치료제가 쓰인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DORA는 △머크(MSD) 벨솜라(성분명 수보레산트) △에자이 데이비고(렘보렉산트) △이도르시아 큐비빅(다리도렉산트) 등이 있다.
그러나 DORA는 아직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획득하지 못해 실제 환자 처방은 불가능하다. 세 가지 제제 모두 국내 가교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 이사는 "DORA는 수면 중 각성 시간이나 잠복기 측면에서도 졸피뎀 대비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장기간 안전성 연구는 필요하겠지만,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적이라고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주은연 부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졸피뎀은 약효가 뛰어나지만 부작용도 큰 약제"라며 "환자에게 처음부터 졸피뎀을 주는 대신 DORA를 처방할 수 있다면 이런 부작용을 해소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불면증 외에도 수면장애 관련 최신 치료옵션이 도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수면장애 원인 중 하나인 하지불안증후군은 국내 환자가 300만 명 정도로 많은 데 비해 치료 방식이 다양하지 않다. 1차 치료제로는 알파2델타리간드 제제인 프레가발린과 가바펜틴 등이 권장되지만 두 제제 모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수면 중 꿈과 관련된 과도한 신체 움직임이나 발성을 보이는 렘수면 행동장애, 국내에서 희소·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는 기면증 치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된다.
렘수면 행동장애 치료에는 주로 클로나제팜이나 멜라토닌이 쓰인다. 그러나 클로나제팜은 중독성 문제로 장기간 처방이 어렵고, 상대적으로 부작용 위험이 적은 멜라토닌은 비급여 약제로 환자 부담이 높다.
기면증은 주간 졸림과 탈력발작(허탈발작)이 대표적 증상으로, 역시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약제가 많지 않다. 2021년 피톨리산트(제품명 와킥스)가 도입됐으나 환자 수가 적고 국내 약가가 낮다는 이유로 제약사가 지난해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올해 6월부터는 피톨리산트 처방을 원할 경우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거쳐야 한다.
김혜윤 홍보이사(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피톨리산트는 주간 졸림과 탈력발작에 모두 효과가 있는 유일한 약제"라며 "피톨리산트가 없으면 탈력발작 치료를 위해 항우울제를 처방해야 하는데, 항우울제 부작용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피톨리산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는 "솔리암페톨이나 옥시베이트 나트륨도 아직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며 "필수 치료제 접근성을 보장하고 환자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수면질환 정책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수면장애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 높지만 치료 접근성 낮아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인의 수면 실태와 수면 부족이 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점도 공유됐다. 국내 수면 문제는 주로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또 한국인은 수면 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전문의 상담이나 치료 등 의학적 해결책을 찾는 비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이사는 "성별과 연령에 따라 경험하는 수면 문제 차이가 있다"며 "남성과 젊은 층은 수면 시간이 부족하고, 여성과 노년층은 수면장애를 많이 겪는다"고 설명했다.
'2024년 한국인의 수면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숙면을 방해하는 요인으로는 심리적 스트레스(62.5%)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신체적 피로(49.8%)와 불완전한 신진대사(29.7%) 등이 꼽혔다.
김 이사는 "수면 시간이 부족할수록 질을 높이기 위한 수면 건강 관심도가 높다. 수면 환경 개선을 위한 디지털 디바이스 사용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다만 상당수가 금세 사용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효능 체감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수면실태 보고서에 참여한 사람 중 64%는 의료진 도움을 받은 적 없다고 답했고, 전문의 상담 경험은 글로벌 평균의 절반 수준인 25%에 불과했다.
김 이사는 "전문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나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수면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수면은 건강 관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주 부회장은 "2021년 6월부터 2023년 5월 사이 갤럭시 워치 삼성헬스 어플에 기록된 7억 1600만개 수면 데이터를 보면, 수면 시간이 감소하고 있지만 수면점수 효율도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며 "수면부채는 면역 저하와 비만, 심혈관질환 등 신체 건강 외에도 인지기능 저하, 기분 장애, 삶의 질 저하 등 뇌·정신 건강을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면은 개인의 문제지만, 수면부채는 사회·경제적으로도 손실을 끼친다. 개인의 생산성 저하나 의료비용 증가는 기업에도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넓게는 국가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의 경우 수면부채로 인해 연간 GDP 2.28%에 달하는 410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주 부회장은 "수면 건강 개선을 위해서는 수면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도적 지원,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이 폭넓게 필요하다"며 "특히 사회적으로 수면에 방해가 되는 술과 카페인, 빛 공해의 유해성을 경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회장은 "수면장애 환자는 치료제 부족과 비급여 처방, 급여 인정의 어려움 등 다양한 문제를 겪는다"며 "수면 문제를 가볍게 넘기기 쉽지만, 보다 나은 치료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