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23주년 창간특집호 좌담회
에포프로스테놀·리오시구앗·타다라필 등 치료제 국내서 사용할 수 없어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김경희 홍보이사, 치료제 국내 도입 필요성 강조

▲(좌부터)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김경희 홍보이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좌부터)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김경희 홍보이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희귀난치성질환인 폐동맥고혈압은 조기 진단과 치료를 통해 완치에 가깝게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다. 폐동맥고혈압 환자 절반은 돌연사로 나머지는 우심실 부전으로 사망한다고 보고되지만,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표적치료제가 개발되고 도입되는 등 치료가 발전하면서 질환 극복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전 세계' 범주에서 우리나라는 예외인 듯하다. 우리나라는 폐동맥고혈압에 관한 인식이 낮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 이미 도입된 치료제들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는 에포프로스테놀, 리오시구앗, 타다라필 등이 있다. 폐고혈압 학계는 약 20년 전부터 외국에서 사용하고 있으나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 치료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지는 창간 23주년을 맞아 대한폐고혈압학회와 함께 '폐동맥고혈압 치료제의 국내 도입 시급성'을 논의하는 좌담회를 진행했다.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 김경희 홍보이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가 좌담회에 참여했다.

<1>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국내에 못 들어 오는 이유는?

<2> 치료제 도입 위해 '폐고혈압 전문센터' 지정 필요

Q. 국내 폐동맥고혈압 치료환경에 점수를 준다면?

정욱진(이하 정): 10점 만점에 5점을 주고 싶다. 

폐동맥고혈압 치료환경을 개선하고자 대한폐고혈압연구회에서 학회로 독립한 지 약 3년이 됐고, 이제 첫발을 뗀 만큼 시작이 반이기에 이같이 점수를 주고자 한다.

국내 폐동맥고혈압 5년 생존율은 2004~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71.5%로, 국내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과거와 비교해 많이 올랐다. 

하지만 90% 이상으로 보고되는 일본보단 낮다. 게다가 폐고혈압과 폐동맥고혈압을 여전히 헷갈려하는 등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고 치료 정책도 부족하다. 폐동맥고혈압에 대한 인식을 높이면서 치료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김경희(이하 김): 비슷한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나라는 폐동맥고혈압에 대한 인식이 낮다. 폐고혈압이라는 큰 범위 안에 폐동맥고혈압이 포함됐는데 이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혈압과 폐고혈압을 헷갈려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폐동맥고혈압 이외에 좌심실 부전으로 인한 2차적인 폐고혈압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폐고혈압과 폐동맥고혈압 인식을 높이면서 치료환경도 개선해야 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Q. 해외에서 사용하지만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
▲대한폐고혈압학회 정욱진 회장.

정: 효과가 우수한데 오랫동안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폐동맥고혈압 치료제가 도입돼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2005년이다. 그런데 당시에도 이미 도입됐어야 할 치료제들이 들어오지 않은 실정이었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똑같다.

국내 도입이 필요한 치료제는 에포프로스테놀, 리오시구앗, 타다라필 등 세 가지다. 이들 약제는 각 분야에서 1등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에포프로스테놀은 세계보건기구(WHO) 기능분류 III~IV로 가장 좋지 않은 마지막 단계인 폐동맥고혈압 환자에게 사용해야 하는 

1번 타자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폐동맥고혈압 환자를 에포프로스테놀이 아닌 트레프로스티닐로 치료한 사례를 다른 나라에서 발표하면, 왜 에포프로스테놀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우리나라에 아직 들어오지 않아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하면 무시하는 분위기다.

리오시구앗은 폐동맥고혈압의 2차 약제이자 WHO Group4에 해당하는 만성혈전색전성 폐고혈압(CTEPH)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다. 리오시구앗은 약 10년 전 전 세계에 상용화됐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했다.

타다라필은 다른 약제와 조합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병용약제다. 암브리센탄이나 마시텐탄 등의 가장 좋은 친구라 할 수 있다. 타다라필을 이용한 병용요법 연구도 많이 발표됐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쓸 수 없다.

▲대한폐고혈압학회 김경희 홍보이사.
▲대한폐고혈압학회 김경희 홍보이사.

이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5년 생존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도 대단하다. 

하지만 세 가지 치료제가 도입된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생존율이 90% 이상을 기록할 수 있다. 치료제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환자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김: 예로 항고혈압제들은 기전이 비슷해도 고혈압 환자마다 효과와 이상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에 환자 특징에 맞게 치료가 이뤄진다. 폐동맥고혈압도 여러 기전의 치료제가 개발됐지만, 우리나라는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는 제한적이다.

특히 에포프로스테놀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치료제가 전 세계에 도입됐고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Q. 세 가지 폐동맥고혈압 치료제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아 환자가 힘들어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면?

정: 2019년 개최한 '치명적인 폐동맥고혈압 조기 발견 및 전문 치료 마련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젊은 폐동맥고혈압 여성 환자가 "자식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며 치료제 도입을 부탁했다. 아이가 어려 10년 이상 살아야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환자였다. 그날 자리는 울음바다가 됐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는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또 외래에서 진료받은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우심실 장애로 급사하는 사례가 있었다.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우심실 장애를 견디면 안 되고 치료해야 하는데 안타까웠다.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들이 국내에 도입돼 환자에게 사용된다면 평균 생존기간을 현재 13.1년에서 20년, 30년까지 늘릴 수 있다.

Q.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이들 치료제를 사용하고자 기다린 경우도 있나?

정: 그렇다. 폐동맥고혈압 여성 환자는 임신이 금기인데 환자 본인도 모르게 임신하거나 폐동맥고혈압인지 모르고 임신하는 사례가 있다. 폐동맥고혈압 여성 환자는 임신하면 그동안 투약하던 치료제를 중단해야 한다. 이때 증상이 나빠지면 주사제를 투약해야 하는데, 효과적이면서 안전하다고 근거가 쌓인 약제가 에포프로스테놀이다.

그래서 폐동맥고혈압 여성 환자가 임신을 원하면 믿을만한 치료제인 에포프로스테놀이 들어올 때까지 임신을 미루자고 설득한다. 환자도 에포프로스테놀이 들어와 임신할 수 있길 기다린다.

그런데 여전히 에포프로스테놀은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시간이 상당히 지나 몇몇 환자는 기다리다 임신을 포기한 상황이다.

Q. 학계 주장에도 불구하고 치료제의 국내 도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정: 도입 시기를 놓친 게 크다. 또 희귀난치성질환 환자 수가 적고 치료제 개발도 어려워 약가가 고가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는 모든 치료제 약가를 많이 깎으려고 한다. 글로벌 제약사는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특허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동안 약가를 낮춰 우리나라에 들어올 바에 이를 포기하는 것이다.

고혈압과 같이 환자 수가 많은 질환이라면 국민 의료비용 측면에서 정부가 약가를 낮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귀난치성질환은 다르다.

김: 우리나라에 치료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약가 문제가 늘 걸린다. 약가 등 희귀난치성질환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1~2명의 희귀난치성질환 의료진 의견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때 폐동맥고혈압을 정확하게 아는 전문가 의견은 듣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임기응변식으로 정책이 결정돼 치료제들의 국내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정책 수립 시 폐동맥고혈압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환자를 진료하면서 치료환경을 개선하고자 고민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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