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한덕수 총리 "특례법 제정안, 올해 안으로 국회 통과 목표"
12일, 시민단체 "위헌 요소 있어…입증책임도 전환해야 해" 지적
이윤수 전 의장 "의료 행위는 선한 의도…민·형사상 책임 자유로워야 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9일 의료개혁 추진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계, 환자단체, 전문가와 논의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마련,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9일 의료개혁 추진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계, 환자단체, 전문가와 논의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마련,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메디칼업저버 이주민 기자] 정부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입법을 올해 안에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9일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의료소송 부담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자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며 "의료계, 환자단체, 전문가와 논의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마련,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하는 특례법에는 의료인이 책임보험에 가입하면 업무상과실, 중과실치상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반의사불벌죄가 포함됐다.

시민단체 "중상해 특례는 위헌…입증책임 전환 필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료소비자연대·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2일 경실련 강당에서 '정부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관련 시민사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료소비자연대·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2일 경실련 강당에서 '정부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관련 시민사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박호균 대표변호사는 지난 12일 '정부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관련 시민사회 토론회'에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참고해 마련된 법안이기에, 교특법에 준해 판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2009년 교특법 제4조 제1항 등에 대해 "가해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면책되도록 한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위헌 판단을 내렸다.

박호균 변호사는 "교특법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형사처벌 특례를 제외하고 있으며, 헌재 역시 중상해 특례를 규정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며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서 중상해 및 사망에 대한 특례를 규정한 것은 위헌"이라고 말했다.

또한, 적용 대상이 특정 직역만 해당하기에 평등원칙에서도 어긋난다고 박 변호사는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교특법은 전국민에게 적용되는 반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인에 국한된다. 적용 대상 측면 하나만 보더라도, 평등원칙을 위반하고 있어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박 변호사와 함께 발표를 진행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의료사고 발생 시 이를 입증할 책임을 이제는 의료인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보다 의료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자가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다.

안기종 대표는 "교특법을 참고해 마련된 법안이기에 입증책임 전환이 당연히 전제돼야 하는데, 현재 법안에는 입증 전환 규정이 없다"며 "대부분 입증책임을 환자가 지게 돼 있는데, 현실적으로 환자가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윤수 전 의장 "사망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자유로워야 해"
"의료 행위는 선한 의도…책임까지 져야 하는 것은 과도해"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이윤수 전 의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특례법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망 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며 의료 행위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한 의도로 진행되기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이윤수 전 의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특례법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망 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며 의료 행위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한 의도로 진행되기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가 마련한 특례법이 반쪽짜리라고 평가한다. 의료 행위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다.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이윤수 전 의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특례법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망 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며 "의료 사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망인데, 시민단체는 형평성을 근거로 특례법에 넣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의료 행위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한 의도로 진행되는 것이기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부연이다. 

또, 정부와 사회가 이를 포용해 주지 않으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종사할 의사는 더욱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 전 의장은 "과거 외과 의사들은 100명 중 1명만 살릴 수 있어도 과감하게 수술을 진행했다. 근데 지금은 확률이 낮은 환자를 수술한다는 건 쉽지 않다"며 "수술해서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각종 원망과 비난, 그리고 막대한 배상금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방어 진료가 아닌 소극적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최근에는 판사도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에게 합의금을 주라고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입증책임 전환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시민단체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유로 입증책임 전환을 주장하지만,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비대칭성은 사라졌다고 이 전 의장은 설명했다.

이 전 의장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많은 정보가 있어 환자가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의료인과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며 "실제로, 질병과 관련해 검색하면 각종 후기와 경험 등을 서로 공유하고 있어 정보 비대칭성은 옛말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입증하면서 특별한 게 나오지 않는 이유는 말 그대로 특별한 과실이 없기에 그렇다"고 전했다.

이렇듯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 대해 의료계와 시민단체 간 의견이 대립하고 있어 정부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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