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원의 희망 시 상급종합병원 근무 가능 발표
3차 병원 무급 간호사도 2차 병원 근무할 수 있게
세밀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정책으로 현장 더 혼란하게 만든다고 비판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정부가 세밀하게 다듬어 지지 않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우면서 병원 운영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그런데 정부가 이 공백을 매우기 위해 개원의와 봉직의 등이 상급종합병원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물론 3차 병원에서 무급 휴가에 들어간 간호사들이 2차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제안들을 발표하고 있다.
개원의와 봉직의, 희망 시 상급종합병원 근무 가능
지난달 20일 보건복지부는 전국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고, 개원의나 일반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도록 허가할 수 있다는 안내를 했다.
의료법 33조에 따르면 개원한 의사들은 허가받은 의원에서만 진료행위를 할 수 있지만, 국가나 지자체장이 요청할 경우 다른 의료기관에서도 일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4월 2일 이를 공식화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을 두고 개원의들은 "정부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한 개원의는 "개원의에게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하라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전혀 모르것"이라며 "의료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정말 상상초월"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개원의는 "경증 환자를 진료하던 개원의가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를 어떻게 진료할 수 있냐"라고 반문하며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 차원의 얘기를 막 쏟아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개원의나 봉직의가 대학병원에서 인턴이나 전공의들이 하던 일을 하라는 뜻인가?"라며 "어떤 개원의가 왜 자신의 병원을 두고 상급종합병원으로 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3차 병원 무급 간호사 2차 병원에서 근무?
어쩔 수 없이 무급 휴가를 낸 3차 병원 간호사가 2차 병원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안도 논란을 낳고 있다.
이 제안은 1일 윤 대통령이 2차 병원인 유성선병원을 방문했을 때 나온 의견이었다.
한 의료진이 3차 병원에서 무급 휴가를 보내는 간호인력을 지역 2차 병원에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면 좋겠다는 건의를 했다.
이에 윤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에게 관련 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께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가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방안 마련 등 진료 협력 강화를 지시했다"며 "정부는 조속히 대안을 마련하고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무급 휴가를 요구받는 간호사들이 2차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상충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 실장은 상충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보였다.
전 실장은 "상급종합병원 간호사의 유휴 인력이 종합병원에서 수용하는 것이라 정책이 상충하지 않는다"며 "시행하기 전에 법적으로 가능한지, 의료법상 제한이 없는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간호 현장에서는 "현장을 모르는 제안이고,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간호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시한 것처럼 되려면 간호 업무 표준화가 돼 있을 때 가능하다"며 "3차 병원과 2차 병원도 다르고, 심지어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모든 병원의 시스템이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3차 병원에 근무하던 무급 간호사가 2차 병원에 가도 신입 간호사처럼 일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라며 "대통령실은 현장을 몰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복지부 간호정책과는 제대로된 얘기를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