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 시행 개원가 대상자 선정 등 노인층 소외 지적...복지부 “한계 알지만...”

▲ 복지부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 홍보 포스터

정부가 의료계와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나선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우려와 달리 의료계가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면서 시행 초기만 해도 순항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던 게 사실. 

실제로 정부의 예상보다 많은 동네의원이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의원의 실질적인 참여를 나타내는 참여의사 등록은 저조했고, 환자 등록률도 기대치를 밑돌면서 초반 기세는 순식간에 사그러들었다. 

특히 현장에서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일선 개원의들은 이번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두고 ‘노인을 위한 시범사업은 없다’고 말한다.  

기대 꺾인 만관제 시범사업

지난 9월만 하더라도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순항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시범사업 참여를 희망한 동네의원은 1870여 곳으로 확정되면서 정부의 당초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이 때문에 300~500여 곳의 동네의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마련했던 환자 배급용 혈압·혈당기는 등록 한 달 만에 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시범사업은 이내 그 기세가 꺾였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5일까지 시범사업 참여의사 등록을 진행한 결과, 약 75%에 해당하는 동네의원만 참여의사 등록을 마쳤다. 25%에 해당하는 500여 곳은 등록을 포기한 셈이다.

아울러 환자 등록은 더욱 더디게 진행되면서 13만명이 등록할 것으로 예상했던 초기 예측치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노인을 위한 시범사업은 없다"기세가 등등했던 만관제 시범사업의 기세가 꺾인 이유는 뭘까? 실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일선 개원가에서는 우선적으로 대상자 선정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서울의 A내과의원 원장은 “시범사업을 위한 대상자 선정이 너무 어렵다”며 “만성질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지만 사실 그런 환자들은 시범사업에 접근하지조차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해당 원장은 “자신이 측정한 혈압, 혈당 수치를 휴대폰을 통해 의사에게 전송하고, 이를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등록하는 일련의 활동이 스스로의 의지와 성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사실 이 정도의 성의가 있는 환자는 의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만성질환 관리를 할 수 있는 환자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이 원장은 “스스로 만성질환 관리가 되지 않아 의료기관을 찾아야 할 사람을 우선적으로 대상자로 삼아야 하는 게 우선”이라며 “사실 이 같은 환자를 선정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특히 노인 만성질환자에게 불편하고 어려운 등록 시스템도 시범사업의 문제라고 말한다.지방의 B내과의원 원장은 “시범사업은 노인 환자들에게 상당히 어렵다. 사실 노인 환자들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분들도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를 원활하게 사용하시는 분들은 극히 드문 편”이라며 “노인환자에게 스마트폰, PC를 통해 입력하라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비판했다.지방의 C내과의원 원장은 “의원을 찾는 시범사업 참여 환자들은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를 두고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많다”면서 “노인 환자들이 공인인증서를 다운 받아 등록하는 등 원활하게 사용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 본 것인지 의문”이라고 보탰다.또 다른 지방의 D내과의원 원장은 “노인 환자는 완전히 배재된 시범사업”이라며 복지부와 건보공단의 주먹구구식 운영을 지적했다.해당 원장은 “당초 복지부와 건보공단에서는 전화통화를 통해 환자가 측정한 혈압, 혈당 등을 의사에게 직접 불러주고 이를 적도록 하는 것은 개인정보법 위반이라며 못하겠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시범사업이, 특히 노인환자에 대한 관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다보니 이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고 지적했다.실제로 개원가에 따르면 당초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전화통화를 통해 측정 정보를 불러주는 행위는 해당 정보가 민감한 개인 건강정보일뿐더러 전화를 통해 환자 본인확인이 불가능한 개인정보보호법을 들어 이를 금지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농어촌 등 읍면지역의 환자에 한해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했다.이 원장은 “정부 측에 시범사업 초기부터 이를 예상하고 건의했지만 그 때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말을 바꾸더라”며 “정부는 시간에 쫓겨 주먹구구식 운영을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이어 “시범사업에 대한 교육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시범사업을 진행하다보니 현장에서 애로사항을 많이 겪고 있다”며 “허술한 준비로 인해 현장에서도 시범사업이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고초를 토로했다.“차라리 일차의료시범사업이 더 낫다”일각에서는 정부가 진행하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은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과 유사한 사업으로, 현재 2차년도 사업을 진행 중이다.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은 정부와 지자체가 사업비를 절반씩 부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일차의료지원센터(현 건강동행센터)를 설치한 후,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고, 관련 수가를 별도로 부여받는 방식이다.현재 전라북도 무주군, 서울시 중랑구, 강원도 원주시에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며, 올해 6월 기준으로 180여개 의료기관, 2만여명의 환자가 참여하고 있다.서울의 한 내과의원 원장은 “스마트폰과 PC를 이용하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보다 대면진료를 통하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에 대해 환자의 반응이 더 좋다”며 “만성질환을 관리하겠다는 유사한 취지의 두 시범사업이지만, 일차의료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기관이 수가를 약 두 배 더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원장은 “전화상담보다 대면상담이 원격의료 우려도 적고 수가도 더 많이 받을뿐더러 환자와의 라뽀도 형성되는 것 같다”며 “내년에 두 시범사업의 결과가 도출되면 장단점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한계는 알고 있지만...”

정부도 의료계 현장의 애로사항을 익히 알고 있었다. 현행 규정에 따라 시범사업을 진행하려다보니 한계가 있다는 게 복지부 측의 주장. 다만, 앞으로 홍보를 더 강화해 원활한 시범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노인 환자의 경우 시범사업 등록 시스템이나 이 과정에서 필요한 공인인증서 등록 등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공인인증서가 아닌 다른 방식의 로그인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에 대한 보안규정으로 인해 우리가 최대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장애물을 넘으려면 별도의 체계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홍보를 더 강화하는 등 방안을 강구, 보다 원활한 시범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복지부는 25일부로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참여의사 등록을 마감했지만, 미등록 기관에 대해 올해 연말까지 참여의사 등록을 연장할 계획이며, 내년 2월까지 환자등록도 연장할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상당수 동네의원이 시범사업 등록과 독감 예방접종, 건강검진 시즌이 맞물려 참여율이 낮았던 것 같다”며 “시범사업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막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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