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발전 기여위한 전진` 제정 정신 새겨야

우리나라는 언제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이 가능할 것인가? 노벨상 수상을 염원하며 2006년 신년 특집기획으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와 과학도들이 모여 매년 연구경향·결과· 방법 등을 토론하는 `린다우 미팅`에 다녀온 젊은 의·과학도들을 초청, 노벨상 수상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참석자
박용휘 성애병원 PET센터 소장, 가톨릭대 명예교수 / 사회
안지영 식약청 의료기기평가부 방사선 표준팀
조윌렴 이화여대 물리학과·나노과학부 부교수, 이학박사
주경민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조교
손병진 서울대 자연과학대 물리학부 2학년




노영수 본지 발행인 -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과학도들이 만나 특별강연과 함께 격의없는 토론을 진행하는 린다우미팅에 직접 다녀오신 귀한 분들을 모시게 돼 영광입니다. 어렵게 시간 내 주신 만큼 이 자리에서 나누어진 소중한 내용들이 노벨상에 다가가는 과학 한국의 도우미로 기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용휘 교수(이하 박) - 이렇게 귀하고 뜻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메디칼업저버 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이 서로 알고 친밀해지는 것은 반드시 시간이 함수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동안 알고 지내도 그저 그런 관계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몇번만 만나도 백년된 지기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오늘 이 모임은 바로 새해 아침처럼 아주 밝고 조화롭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1951년부터 매년 대학의 방학이 시작하는 6월말에서 7월초까지의 일주일동안 독일 남부 보덴제(Bodensee)의 린다우(Lindau)시에서 전 세계에서 수십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수백명의 학부 또는 대학원에 재학 중인 젊은 자연과학계 학생들이 함께 모여 알프스산과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최고 지성인들과의 꿈같은 학술잔치를 벌여왔는데, 늦었지만 우리도 2004년부터 과학기술부의 배려로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방담을 통해 린다우에서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생각했던 바에 대해 기탄없이 대화함으로써, 20세기의 지성들이 만들어 가꾸어낸 세계인의 유일무이한 보편언어(普遍言語) `노벨상`에 대해 새로운 감각과 미래지향적인 각도에서 조명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우선 우리가 노벨상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해 짚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포상에는 반드시 그 상이 내세우는 의미와 정신이 있게 마련이니, 노벨상의 기본정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어느 상이건 그 상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크거나 작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죠. 다시 말해 상이란 도전할 사람 외의 일반인에게는 대체로 지나가는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우에 따라 상이란 상을 타지 않은 사람에게도 무한한 의미를 갖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노벨상이라고 여겨집니다.
 알프레드 노벨에 의해 제정된 노벨상이 20세기를 넘어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의 복지와 행복과 평화와 인간정신의 드높임에 끼친 영향을 되새겨 볼때, 숭고한 시대정신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노벨위원회와 과학학술원, 사무국에는 200명이 넘는 학자와 전임직 임원들이 일년 내내 세계 각국의 학자들을 만나고, 정보를 수집하고, 논문과 저서를 검토하고, 학회에도 참석을 합니다. 이토록 치밀한 조직과 물질적 지원, 조심스럽고 세심한 판단과 과학·역사적 관점에서의 심사가 노벨상을 현재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노벨상에는 절대에 가까운 권위가 주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동양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교토대학의 야노 교수는 10년 가까이 노벨상에 대한 연구를 한 끝에 내놓은 책에서 지금과 같은 권위를 갖게 된데 대해 다음과 같은 4가지 구체적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 상금 액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이는 스웨덴 대학교수 연봉의 25배에 해당할 정도의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금액이 지나치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가장 소중하게 쓰여지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수상자의 삶의 고귀함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상이라는 점입니다. 지구촌에 현존하는 많은 상들이 국소적이고 지엽적인 것을 대상으로, 특정 그룹을 위해 만든 상도 없지 않은데, 노벨상만은 100년이 넘도록 전 세계의 한결같은 축복과 선망과 존경 속에서 계승되고 있습니다.
 셋째, 선발과정이 엄격하고 적정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선정위원들은 꼬박 1년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상자 선발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모두가 그 타당함을 인정합니다.
 넷째, 시상을 주관하는 나라가 강대국이 아닌 중립국가 스웨덴이라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생각하기에 따라 이견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이유 때문에 노벨상이 오래 지속돼 왔고 또 그 권위를 지켜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벨상은 인류사회에 절대적인 공헌을 함으로써 인간 삶의 수준을 드높이 끌어올린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알프레드 노벨의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스웨덴 국민들이 훌륭하게 이어받아 노벨상의 금자탑을 쌓게 된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상을 탈 수는 없지만, 숭고한 정신만은 배워서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윌렴 교수(이하 조) -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노벨상에 대해 우리나라가 발전했으니까 그것을 증명하는 차원에서라도 한번쯤 타야하지 않을까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노벨상의 정신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나라들을 보면 과학적 토양이 매우 탄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투자한 지 50년도 채 안 됐습니다.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개발 등에는 집중했지만 기초과학에는 등한시해왔던 것이 현실입니다. 운동선수들도 금메달만을 위해 운동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메달 따면 끝 아닙니까. 단기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해선 노벨상에 근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노벨상은 인류 전체 삶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평생을 투자하며 과학적 토양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수상자를 만들 수 있었던 토양을 깊이 새기고 개인들의 능력을 육성하는 단계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꼭 노벨상 뿐만이 아니라 관련한 작은 상들도 많이 타며 천천히 정진해 나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노벨상만을 목표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현재 중간단계가 없는 상황입니다.

 박 - 조 교수님의 말씀처럼 실제 일본에서 수상자가 나오기까지에는 근 70년이라는 피눈물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의학자 기따사또 박사와 노구찌 박사가 노벨의학상의 정식 후보로 천거된 것이 각각 제1회 노벨상이 수여된 1901년과 1914년 이었다는 사실을 보아도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가파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웨이드(Wade)의 `노벨상의 결투`에 등장하는 뇌하수체호르몬을 동시에 발견하여 1977년 의학생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미국의 소크연구소 로자 갸망(R. Guilleman) 교수와 뉴올리언스의 안드루 샬리(A. V. Schally) 교수의 첩보전을 곁들인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실화는 우리 모두의 정신무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들의 각오와 대책은 오히려 안이하고 어찌보면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그 영광에의 길은 험난하고 멀기만 합니다.
 다행히 현재 우리의 여건은 일본인이 뛰기 시작한 20세기초의 여건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봅니다. 다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점은 접근방식이 바르고 분명해야 합니다. 뒤늦게 뛰어들수록 목표의 설정 그리고 연구추진 방식이 올발라야 하고, 그것이 바로 과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신입니다.

 안지영 박사(이하 안) - 그리고 과학도들에게 학부 때부터 `린다우 모임` 같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참석했을 당시 첫 개회식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찹니다. 굉장한 충격이었죠. 린다우 경험을 한 학생과 하지 않은 학생이 노벨상을 바라보는 눈이 결코 같지는 않을 겁니다.
 노벨상 하면 너무나 크고 먼 것으로 느껴지지만 막상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우리와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열심히 하면 저런 보상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손병진 학생(이하 손) - 시상식 장에서 들었던 수상자들의 강연 요지는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학문을 통해 즐거움을 찾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상을 탄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탐구하는 환경이 조성된 가운데 그것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노벨상이어야 한다는 말은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린다우에서 수상자들의 강연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과학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는 주변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죠. 강연자 즉, 권위있는 석학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궁금한 부분을 그때그때 해결하려는 모습들을 보며 신선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문화가 매우 부족합니다. 외국학생들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이러한 차이는 초·중·고등교육의 탓도 있겠지만, 대학 이후에도 석학들과 마주하고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이 많은 자본을 투자해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석학들, 그리고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초대해 자국의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여는 것도 이러한 기회의 제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석학들과 커가는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충분하게 제공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찾아가서 질문하고 스스로 접근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기초토양을 다지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안 - 이러한 외국 학생들의 자신감은 언어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 쪽 그리고 동양권에선 인도 쪽이었습니다. 유럽, 인도 학생들은 영어를 쉽게 하는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문법과 읽기에는 강하지만 대화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어는 연구활동에 있어서도 학문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국민 전체가 영어교육에 쏟는 돈은 크지만 그 만큼의 효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이해하고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국제적 학문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경민 조교(이하 주) - 노벨상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한걸음 나아가게 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 상이기에 이러한 목표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수상자가 선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이 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우리나라는 너무 과도한 물질만능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연구가 인류의 복지와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연구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 연구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보다는, 이 연구가 과연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혹은 우리 나라의 경제에 얼마 정도의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노벨상의 의미와는 너무 거리가 있습니다. 사회에 물질만능 주의가 팽배해 있는 한, 학자들도 이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없습니다.
 또한, 노벨상은 새로운 것에 그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기존의 것을 발전시키는 연구보다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에 더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죠. 평범한 일본인 회사원이 노벨 화학상을 타게 된 것도 이분이 대단한 연구결과를 얻었다기보다는 이후의 연구에 큰 영향을 준 이론을 처음으로 생각해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보다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연구가 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가장 빨리 얻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노벨상의 의미에 맞는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우리 사회가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 황금철학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는 명백히 자본주의사회의 폐단입니다.
 돈과 권력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를 초월하기 전에는 절대로 노벨상은 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가치의 폐단을 미리 깨닫고 없애려고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알프레드 노벨이 스웨덴이 아닌 다른 강대국에 태어났더라면 이런 상이 존재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요.

 안 - 우리나라는 아직 발전단계에 있기 때문에 빠르게 결과가 나오는 것에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나 기초부터 지원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 -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구과정이 상당히 즐거운 분위기 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험결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크죠. 이 역시 앞에서 말씀드렸던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깊습니다. 사회에서 연구를 평가하는 기준이 최대한의 경제성이기 때문에 모든 연구는 빠른 실험결과를 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연구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연구비가 중단되니까요. 즐기면서 연구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박 - 상을 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상을 탈만한 업적을 내며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삼을 캐서 돈을 벌겠다고 하면 눈 앞에 있는 산삼이 보이지 않는데, 산삼을 캐서 노부모에게 드리겠다고 하면 없던 산삼이 생겨난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손 - 요즘 학교에서 선배들이나 동료들을 보면 유학만이 능사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학가서 선진연구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핵심적인 부분은 그 곳에서 기초부터 다진 서구인들이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유학생들은 이미 이뤄지고 있는 부분에 겨우 참여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어떤 분야를 배워 와서 새로이 개척해 나간다기보다는 후학들에게 `전달`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그려진 그림을 마무리해서 완성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밑그림도 그릴 줄 알아야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외국의 앞선 학문을 단순한 수용에 그칠 것이 아니라 체화를 잘 해서 우리나라 고유의 학풍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노벨상을 위한 환경 조성에 기초가 되는 부분이죠. 외국같은 경우 학교별로 학풍이 뚜렷하고, 타 대학과 연구에 대한 토론 및 경쟁도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양질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우리나라도 대학 내에서 고유의 학풍을 만들고 대학간의 활발한 토론과 선의의 경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손종관 본지 편집국장 - 지금 언급은 순혈주의와도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연구 분야에서 순혈주의가 어느정도 존재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 대학 내부에서 외부연구자와 교류하거나 협력하는 정도는 얼마나 되나요? 조교수님이 현장에서 연구하면서 직접 접한 학문 순혈주의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 - 우선 우리나라는 아직 대학별로 경쟁체제가 이뤄질만한 토대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나친 순혈주의로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상황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연구비지원을 차등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노벨상을 위해서라도 국내경쟁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 -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린다우 미팅에서 있었던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의를 참고하면 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함께 연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노벨상 수상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죠.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의 공동연구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조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대학을 살펴보면 아직도 순혈주의가 많은 것 같습니다. 비슷한 학벌을 가진 사람끼리,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끼리 뭉치고 나름대로의 세력(?)을 형성합니다.
 순혈주의는 학문의 다양성을 해치고, 공동연구의 기반을 없애고 있습니다. 다 같은 사람끼리 공동연구를 해봤자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세력의 연구자와는 공동의 분모가 없어 공동연구가 힘들지요. 이렇게 가뜩이나 연구인력이나 연구비가 적은 우리나라에서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데 또 하나의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 다양성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도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식의 도그마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고질적인 문제인 학문편식을 없애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토양을 만드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조 - 역대 수상자를 보면 비 서구인이 거의 없습니다. 즉, 아직까지는 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서 국민들이 얼마만큼 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모이는 린다우미팅에 참여하는 한국과학자, 한국정부관계자가 참 드물어요. 활발하게 참여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물론 업적이 뒷받침돼야겠지만 이런 식의 환경조성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또한, 일본의 경우 국가적으로 될 사람들을 초기부터 많이 지원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구비 지원에 있어서 파이 자체가 작아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다른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상황이에요.

 주 - 새로운 연구비가 아니라 기존에 있던 예산이 반짝 유행하는 분야로 모아지는 식이라고 볼 수 있죠.

 안 - 그리고, 연구비를 타는 곳이 거의 일정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 벽을 넘기가 무척 힘들죠. PI가 정해지면 그 밑으로 아는 사람들이 세부과제를 갖고 가게 됩니다. 과학분야의 연구비가 아직까지는 턱없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겠죠. 선진국 수준으로 가려면 과학분야의 연구비 증액이 무엇보다도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투자 없이 어떻게 결과를 바라겠습니까.

 조 - 외국의 경우 정부 뿐아니라 다양한 기관에서 연구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물리분야의 경우 노벨상을 많이 수여한 기관 중에는 Bell 연구소와 IBM연구소 등 일반 기업 산하 연구소들도 있습니다. 기업체연구소가 연구 육성하는 문화가 우리에겐 익숙치 않지만 분명 좋은 현상이죠. 또한, 탄탄한 재단에서 연구를 육성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는 연구자들의 사기진작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도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 - 학부시절 일본사람이 노벨상타는 것 보고 기분 남달랐었더랬죠. 동양에는 일본, 중국, 인도 사람 몇 명 제외하고는 수상자가 거의 없습니다. 모두 미국, 유럽이죠. 과학자들에게 결과물로 존경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상을 떠나서 관심이 커져야겠죠.

 주 - 조교수님께서 과학자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저도 말을 좀 덧붙이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이 존경받고 청렴한 학자를 존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나라는 급속한 자본주의화를 겪으면서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의 기준이 돈과 권력이 되어버렸죠.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뛰어난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더 이상 학자의 삶은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든지, 열심히 일해봤자 돈도 얼마 벌지 못한다든지 평생 공부만 해야하는 직업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결국 학문의 길을 걷는 젊은 사람들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타고 싶다면, 학문을 전공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려면 우리 사회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아야 하고, 이들이 너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기꺼이 자신의 일생을 학문에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만한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박 - 이 부분에서는 언론의 역할도 큽니다. 순간에만 치우쳐 냄비 끓듯 하는 것만 경계한다면 말입니다. 국내 텔레비전이나 일간신문을 장식하는 세계적 발견과 발명이 한달이 멀다하고 발표됐지만 그 후 구체적으로 좋은 소식으로 이어진 것은 별로 기억에 없는 것이 한국과학계와 뉴스매체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리조각도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서는 금강석같은 무지개를 띠는 법입니다.
 언제나 튼튼하고 넓은 기초위에서 여유있게 멀리보면서 연구에 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한번 실족하면 그 나락은 너무도 깊고 무섭습니다. 학교내에서 국내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그것이 진정으로 세계 수준을 한참 높이 뛰어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되씹고 또 되씹어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준 메디칼업저버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리·최은미 기자 emchoi@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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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우 미팅은]
지구촌 젊은 과학도 학문열정 북돋우는 제전

 `Meeting of Nobel Prize Winners in Lindau`는 의학, 화학, 물리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과 세계 각국의 젊은 과학도들을 초청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의를 듣고 직접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 박사과정 연구인력 또는 대학생들에게 학문적 영역을 넓히고 열정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모임이다.
 학문적인 토론 이외에도, 노벨상 수상자들과 개인적인 교류까지 할 수 있어 젊은 과학도들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삶의 자세, 학문에 임하는 태도까지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의 젊은 과학도들이 서로를 알고 의견을 나누는 기회도 제공된다.
 미팅은 1951년 독일 남부의 린다우시의 초청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여 과학도와 일반인들을 상대로 계몽강연 성격으로 시작된 것으로 최근에는 노벨상수상자와 세계적인 석학 그리고 세계 70여개 대학에서 500여 명의 과학영재들이 참석, 강연과 토론을 벌이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축제로 발전했다.
 이 회의는 매년 전공을 바꿔가며 진행되는데 2005년에는 물리학 분야를 내용으로 개최, 이학 분야를 중심으로 노벨상수상자 20여 명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과기부와 한국과학재단의 후원으로 5명이 참석했다.
 보통 오전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학생들이 조를 편성하여 노벨상수상자들과 개별토론회를 갖는 것으로 진행된다.
 2006년 화학분야, 200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을 초청하는 `Meeting of Nobel Prize Winners in Lindau`가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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