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있는 과목 전문화로 경쟁력 확보를

개방에 대한 병원계의 대응방안을 논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도
있고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다소 부작용은 있더라도
WTO 합의에 의한 개방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는 국제화(globalization) 현상의 하나로 이
해,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사회현상의 변화
 경영학계의 석학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를 인구혁명이라고 정의했
다. 인구혁명은 노동자, 농민으로만 일하던 대다수의 국민들이 신분상승을 위해 자식들에게만
은 불붙는 교육열을 발휘하여 고등교육을 시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국민의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결과 전 국민이 현명해지고 지식인화(대학교육 이수자 50% 이상,
고등학교 졸업 80% 이상)됐다. 이러한 변화는 공급자가 권한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현
명해진 고객(소비자)이 선택의 주도권을 갖게 하였으며,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완벽한 1등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 환경으로 변모시켰다.
 의료환경은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어느 나라에 좋은 약품과 의료기관이 있고 어느
곳에 훌륭한 의사가 있음을 현명해진 국민들은 쉽게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현명해진 소비자(환자)를 두려워 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정
확히 실현하는 시스템만이 21세기에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료개방도 이제까지와 달리 새로운 의료시스템만이 생존할 수 있도록 격심한 변화를 초래
할 수 있지만, 이것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여러 모순된 의료체계가 보다 합리적으
로 재정립될 기회가 될 수도 있으며 낙후된 의료체계나 의료질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절호
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하는 양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의료개방은 세계적 흐름
 개방은 세이프가드 등으로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겠지만 고립되지 않고 지구촌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따라서 정부도 지구촌의 한 부족장에 불과한데, 우리 부
족장만은 다른 나라 부족장들에 비해 무엇이든지 해주고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환상과 무지에
서 어서 벗어나는 것이 현명한 의료계의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개방은 찬성이나 반대의 문제
가 아니라 지구촌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려는 큰 흐름이기 때문이다.
 병원의 특성은 24시간 가동체제로서 우리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은 진
료에 필요한 인력과 의료설비 그리고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제까지는 전쟁의 폐허에서 새
로운 도로, 항만, 공장, 건축물들을 지어왔던 성장시대의 타성이 남아서인지 병원계는 계속 병
상이나 병원 크기를 늘리는 작업만을 해온 것 같고 포화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새로운
병상 신설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시설은 있는데 병상이 다 안차고 이용하는 환자들이 적어서 경영이 어렵다
고 야단이다.
 이제 병원계는 경쟁적으로 새로운 병·의원을 신축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을 되찾아, 기존의
시설들을 환자들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하고 구성원들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
템 구현에 힘써야 할 것 같다.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의료계도 병원 크기에 관계없이 비용에 비
해 가장 효율적인 진료시스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기술이나 설비에 있어서 1등이 될 수
있는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합병통한 효율적 시스템 필요
 이제 의료계도 수많은 승자와 패자를 낳으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의원들이 모여서 집단
개원이나 동업을 도모하듯이 병원계도 소유나 지배의 개념을 버리고 은행들처럼 합병을 통한
보다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을 이룰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게 된 것 같다.
 그러면 어떠한 의료기관이 이상적이고 소비자들은 어떠한 의료시스템을 원하고 있는가?
 첫째, 어느 의사를 만나든지 최상의 치료법을 받을 수 있는 의료의 질에 대한 균일화를 꼽
을 수 있다. 둘째, 저렴한 의료비이다. 노령화 사회의 도래와 신기술 신약제 개발에 따라 천정
부지로 치솟는 건강관리 부담이 적기를 원한다. 셋째, 접근이 쉽고, 기다리지 않으며 주차장
이 완비된 편리성이 높은 의료기관이다. 넷째, 의료정보의 공유이다. 의사만이 질병을 아는 것
이 아니라 환자도 자기가 무슨 병을 앓고 있으며 어떻게 치료해야 최적인지 정확한 설명을 요
구한다. 다섯째, 매너의 윤리성이다. 이왕이면 권위의식을 버리고 대등한 입장에서 친절하고
올바른 치료를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만족 시키려면 의원 보다는 병원이 의료의 기본 단위가 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러 의사가 모여 있는 병원에서는 의사들끼리의 회의를 통해 새로운 치료
법과 신약제의 등장을 보다 빨리 접할 수 있어서 조기 도태되지 않고 변화에 적응하여 의사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고가의 의료장비를 공동으로 구비할 수 있으므로 비용의 효율성과 양질의 새로
운 진료를 가능케 한다. 또한 단위가 커짐으로써 직원들이나 의료진들 간의 상호 견제가 되어
허위청구나 과잉진료 같은 폐해를 방지할 수 있으며 보다 윤리적인 양질의 진료가 가능하다.
 미국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많은 병원의 도산과 인수, 합병을 통해 대
변혁이 있었지만 그 후 지금까지도 합병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과목의 폐과 등을 통해 보다 더
전문화의 길을 걷고 있다. 따라서 대학병원일지라도 백화점식 경영 보다는(백화점도 의류나
식품, 가전제품 등으로 특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십화점식으로의 전환함이 국내나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며 또한 WTO 개방체제에 적응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
다.
 대학병원으로서 위상이나 체면 유지를 위해 계속 적자과목을 유지하는 것은 경쟁력 있는 과
목의 약진을 방해하거나 근무의욕을 상실시켜 함께 도태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
다.
 병원이나 대학병원도 백화점식 경영이 아니라 십화점이나 일품점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경쟁력이 없는 부문은 다른 병원에 과감히 이양하여 각자가 전문화의 길을 걸어야 하겠다. 서
로 경쟁력 있는 부분만을 키우고 경쟁력없는 부분은 상대방에 이양할 때 개방체계에서도 윈윈
의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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