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감정촉탁 결과 패혈증 보단 원인미상 돌연사로 판단돼”

법원이 치료 도중 사망한 환자에 대해 사망 원인이 패혈증 쇼크가 아닌 원인미상 돌연사라고 판단하면서 유족이 아닌 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치료를 받다 사망한 환자 A씨의 가족들이 의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지난 2012년 6월경 가족들과 물놀이를 한 후, 왼쪽 허벅지 안쪽 부위에 통증이 계속되자 B씨의 의원에 내원했다. B씨는 A씨를 진찰한 결과, 외상이 없고 골반 및 고관절 부위에 대한 X선 촬영으로도 이상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왼쪽 허벅지 부위를 손으로 만지면 통증을 호소해 내전근 근육파열로 진단했다.

그런데 문제는 A씨가 2002년경부터 당뇨 증세가 있어 당뇨약을 복용해왔다는 것. 여기에 A씨는 병원에 잘 가지 않고 약도 거르는 경우가 많아 B씨의 의원에 내원했을 무렵에는 혈당 수치가 상당히 높게 나오는 상태였다. 당시 A씨의 혈당 수치는 428mg/dl(기준치 80~110mg/dl)이었다.

B씨는 A씨에게 진통제와 소염제를 주사하고 전기치료 및 저주파 물리치료를 시행한 후 환부에 테이핑을 하고 귀가시켰다.

귀가 후에도 A씨는 환부에 통증이 계속되며 멍이 생기면서 출혈까지 있자 다시 B씨의 의원을 찾았고 B씨는 왼쪽 허벅지 안쪽 피부 일부가 청색으로 변하고 수포가 터져 피부 표피층이 일정부분 손상된 상태임을 확인했다.

B씨는 드레싱을 하고 A씨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항생제 치료 및 혈액검사를 시행했다. 혈액검사결과 혈당수치가 586mg/dl로 측정돼 여전히 정상범위를 상회하자 A씨의 가족에게 평소 복용 중인 당뇨약을 처방받아오라고 조치한 뒤 A씨에게는 경구용 혈당강하제를 처방했다.

이후 A씨가 침대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지 않고 담배를 피우려고 돌아다니는 걸 본 B씨는 흡연을 하면 좋지 않다고 주의를 준 뒤 침대에 누워 다리를 올리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다시 A씨의 상태를 확인한 B씨는 환부에 부종이 더욱 심해지고 부분적 괴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했다가 A씨의 혈당수치가 다소 낮아진 것을 확인하고 다음날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기로 한 뒤, 간호사에게 경구용 혈당강하제 1정을 추가로 투약할 것을 지시한 뒤 퇴근했다.

그날 밤 A씨의 직장동료가 문병을 왔는데 A씨가 식은땀을 흘리고 통증을 호소하자 간호사에게 상태를 알렸고, 간호사는 B씨에게 유선상으로 지시를 받아 진통제를 주사했다. 동료들이 돌아간 뒤 A씨는 새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이동해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흡연을 한 뒤 병실로 돌아왔다.

아침에 다시 문병을 온 동료가 병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는데, 구급대가 도착했을 무렵 A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A씨의 유족들은 “두 번째 내원했을 때 괴사성근막염을 앓고 있었음에도 B씨가 이를 진단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나 전원조치를 취하지 않아 급격한 패혈증 쇼크가 발생,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B씨 의원 의료진은 A씨의 상태를 살피거나 A씨가 응급상황 시 응급호출을 할 수 있도록 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한 과실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상고된 이 사건은 원심 파기환송이 돼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아왔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B씨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의 사망 원인이 패혈증 쇼크가 아닌 원인미상의 돌연사이기 때문에 B씨의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사실조회결과, A씨에 대한 부검소견상 심근경색에 동반되는 심근의 허혈성 괴사나 섬유화 등이 확인되지 않아 심근경색을 사망원인으로 단정짓기 어렵지만 중증의 괴사성 근막염과 패혈증 소견이 뚜렷이 확인됐다고 회신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장 등 진료기록감정촉탁에 따르면 A씨는 전형적인 돌연사에 해당하며, 패혈증에 의해 사망한 경우 대부분 병세가 위중해지면서 서거나 앉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의식불명 등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병경과를 나타내는 게 특징”이라며 “A씨의 경우 사망 직전으로 추정되는 시각에 스스로 주차장으로 이동해 흡연을 하고 돌아온 이상 사망까지의 경과가 괴사성 근막염, 패혈증의 경과와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A씨가 심한 관상동맥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부정맥이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며 사망 직전의 흡연 역시 부정맥 발생의 원인으로 의심된다는 게 감정의 소견이다.

재판부는 “환송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대한 사실조회를 한 결과, A씨의 사인이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일 뿐 다른 심장성 돌연사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아니며 다른 감정의 의견은 심장성 돌연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며 “A씨의 사인이 패혈증이 아닌 부정맥이나 관상동맥 질환에서 비롯된 심장성 돌연사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 “B씨가 괴사성 근막염을 진단해 치료 또는 전원조치를 하지 않은 과실로 인해 A씨가 사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B씨의 의원과 같은 의료기관에게 모든 입원환자에 대해 응급상황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해 조치할 인적, 물적으로 준비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다만 응급상황이 예상되는 경우 B씨에게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인데, A씨는 응급상황이 발생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환자라고 보기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