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강청희 부회장,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WMA도 반대”

지난달 30일 대한의사협회가 전국의사대표자궐기대회를 개최했을 때와 같은 시각,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는 세계의사회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위상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WMA)는 전 세계 800만명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제민간의사중앙단체로, 의사의 자주성과 권리보호, 의사의 의료행위, 의과학 연구와 관련한 국제적 윤리기준 및 지침 등 마련, 의학교육, 의료인력 수급 등에 있어 최상위 국제기준 마련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의협이 주관한 이 행사에 추무진 회장이 참석했어야 했지만 궐기대회로 추 회장의 참석이 어렵자 강청희 상근부회장이 참석했다. 이미 수차례 세계의사회 컨퍼런스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강 상근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 컨퍼런스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설명했다.

 

한의사는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세계의사회는 의학과 한의학으로 구분된 우리나라의 독특한 의료체계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강 상근부회장은 “WMA는 “의학과 한의학은 엄격히 구분돼 있으며, 학문적 바탕과 교육과정 등이 상이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할 경우 의료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초래한다는 의협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의사가 의사와 동일한 교육을 받고 현대의학과 동일한 진단, 치료 등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춰 현대의학 시험을 통해 자격을 가진다면 의료기기 사용에 문제가 없지만 면허 없이 특정 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단하면 그것은 법적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일 세계의사회 오트마 클로이버 사무총장의 기자회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세계의사회는 계속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적극 반대해왔다”며 “지난해 보도자료를 통해 ‘보건의료 비용을 증가시키고 환자 안전에 위험을 초래한다’며 한국 정부를 신랄히 비판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의사회의 경고가 무지몽매한 정부를 일깨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번 기자회견을 추진하게 됐다며, 이를 위해 일본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세계의사회 컨퍼런스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도록 일정도 바꿨다고 말했다. 

클로이버 사무총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 건강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의료를 너무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라는 강도 높은 발언으로 정부를 규탄했다. 강 부회장은 클로이버 사무총장의 발언은 사전에 약속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사전 약속 같은 건 결코 없었다”며 “세계의사회는 전 세계 의사를 대표하는 기구로, 그 일원인 대한민국 의료와 의사의 심각한 위기상황에 대해 분명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해당 발언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이라는 특정 단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되서도 곤란하고, 클로이버 사무총장은 전 세계 의사와 의료를 대변하여 해야 할 말을 한 것뿐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또 세계의사회가 최근 법안이 통과된 전공의특별법에 대해서도 법의 취지와 배경에 전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열린 세계의사회 총회에서 ‘Physician wellbeing’ 관련 결의문이 채택됐는데, 이는 ‘의사의 웰빙’이 ‘환자의 안전’으로 연결된다는 인식과 함께 세계적으로 공통된 이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결의문을 통해 세계의사회는 ‘의사 및 의대생들이 직업생활의 모든 단계에서 긍정적 경험과 함께 웰빙을 해칠 수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에 노출되며 의사들은 이같은 스트레스 요인을 유발시키는 정책 및 관행을 확인 및 개선하고, 이에 대한 방어력을 갖춘 정책 및 관행을 개발하기 위해 의사협회와 협력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어 “정부가 전공의 인권이 국민의 안전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해 더 이상 전공의 처우를 외면하지 말고 수련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전공의특별법의 취지와 배경에 전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4월 Health Databases and Biobanks 선언문 개정안 발표

지난 30일 열린 세계의사회 ‘WMA 건강정보 보호 및 생체시료 관리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에서는 어떤 내용이 논의가 됐을까?

세계의사회는 지난 2002년 채택된 건강데이터베이스에 관한 선언문에 대해 바이오뱅크 등에 관한 내용을 포함, 전면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컨퍼런스에서 채택된 정책이 시대흐름과 변화된 환경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유효한 정책이 될 수 있도록 의견을 수렴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는 후문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Health Databases and Biobanks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규정하는 선언문 개정안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컨퍼런스에 참석한 세계 10개국 의학자·의학연구자들은 과학기술과 디지틀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전 세계적으로 환자의 개인정보가 양산되고 집적되고 있는 상황이 관련 연구의 급속한 증가를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을 표했다”며 “환자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안, 개인정보나 신체 시료 제공에 대한 설명·합의 방안, 그 외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토론했다”고 밝혔다.

또 “의학연구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환자 정보 안전관리와 윤리적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고 전했다.

Health Databases and Biobanks를 활용함으로써 구현되는 보건의료상의 획기적 연구 개발 가능성과 데이터 집적으로 인한 정보 유출 등의 위험성 간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윤리적 입장을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아젠다라는 게 강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윤리지침으로서의 특성상 세세한 자구 수정 하나하나에 관련 학계와 의료계 및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논의되는 내용과 결과가 모두 중요한 근거자료로서 앞으로 활발히 인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Health Databases and Biobanks에 대한 세계의사회 선언문 개정안은 오는 4월 WMA 제203차 이사회(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안건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이런 전 세계적인 흐름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영향을 받게 될까? 특히 우리나라는 모든 환자의 정보와 병력이 건강보험을 통해 한 곳으로 집적돼 있기 때문에 건강정보 관리가 타 국가에 비해 수월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는 모든 환자 정보와 병력이 건강보험 정보를 통해 한 곳에 집적돼 있고, 이렇게 집적된 환자의 정보는 활발한 관련 연구의 기반이 되고 있다”며 “의학연구는 환자의 의학적 상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개별 환자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신중하지 못한 개인정보의 이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며 “그러나 의학연구는 의약품 개발 발전과 직결되며, 의학연구의 핵심은 환자정보이기 때문에 의학연구를 장려하는 것과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